Lim, Youngsun
임영선 (b.1968)
1991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96중국 북경 중앙 미술학원 대학원 졸업
개인전
2016 인디프레스갤러리, 서울
2015 로얄갤러리, 서울
2013 중앙승가대학교 미술관
2012 가나 컨템포러리, 서울
2011 가나아트 갤러리, 부산
2010 313갤러리, 서울
2009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2006 부산 시립미술관, 용두산미술관, 부산
2002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부산
1995 중국당대미술관, 중국, 북경
주요 그룹전
2018 대한민국 미술의 길- 촛불혁명과 평화의 창/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017 키워드 한국미술 2017:광장예술- 횃불에서 촛불로 /제주도립미술관
2017 광화문 촛불역사전 / 광화문 광장
2016 전태일전/ 아라아트 갤러리
2014 시대의 얼굴, 가나아트센터
2014 세월호 추모전/ 망각에 저항하기, 안산 예술의 전당
2013 고갱 그리고 이후 “이상적 융합-환상과 현실사이의 모순”, 서울시립미술관
2013 사유의 공간, 가나아트센터, 서울
2012 힐링, 가나아트센터, 서울
2012 만다라를 찾아서, 국민대학교 박물관, 서울
2012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 기획전, “여기 사람이 있다”, 대전시립미술관
2012 가족전, 양평군립미술관
2012 채용신과 한국의 초상미술, “이상과 허상에 꽃피다”, 전북도립미술관
2011 한국 현대미술의 스펙트럼, 카오슝시립미술관, 대만
2011 유토피아 유감, 아트 스페이스 루, 서울
2010 코리아 투모로우, 세텍 컨벤션센터, 서울
2010 부산비엔날레 “진화속의 삶”, 부산시립미술관
2010 빛 2010 하정웅 청년작가 초대전, 광주시립미술관
2010 지역네트워크 프로젝트, 부산시립미술관
2010 노란선을 넘어서(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전), 경향갤러리
2010 지역네트워크 프로젝트, 아르코 미술관
2010 현대미술로 해석된 리얼리즘展, 경남도립미술관
2009 찾아가는 미술관 “태양과 바람의 이야기 展” , 국립현대미술관
2009 화가의 초상,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
2009 Inter City , 부산 시립미술관
2009 지리산 남도문화의보고, 신세계갤러리
2009 빛 2009 하정웅 청년작가 초대전, 광주시립미술관
2009 감각의 몽타쥬- 미술시네마전, 서울시립미술관
2009 창원 아시아 현대 미술제, 성산아트홀
2009 지금 우리, 신세계센텀시티 미술관
2009 마법에 걸린 미술관전, 김해문화의 전당
2008 작업실의 아이들전, 부산시립미술관
2007 묘합전, 더 갤러리
2006 도心속 동心전, 가나아트, 홈플러스갤러리
2006 미술과 놀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06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하여, 전국 순회 문화예술전
2006 일상의 억압과 소수자 인권전,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2005 초특가! 부산 투어 패키지, 부산시립미술관, 프라임병원, 서남대학, 부산, 일본
2005 어린이를 위한 재미있는 미술전,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2005 갑오세 갑오세,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2002 몸에 관한 사색전, 대구문화예술회관
2002 봄의 향기, 커뮤니센터 갤러리, 시카고
2002 시각의 목소리전, 그레이스퀘어 갤러리, 뉴욕
2002 “United Colors" , 링컨센터, 뉴욕
2001 명상적회화, 소호갤러리, 뉴욕
2001 “가족”두벌갈이, 대안공간 풀
1999 일상적 담론을 벗어나서, 용두산미술관, 부산
1998 현대판화미술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1996 한국성 모색전, 인사갤러리, 서울
1992 아침 낮 밤 그리고 새벽, 관훈미술관, 서울
1992 전국 청년미술제, 전국순회전
1992 교육현장전, 그림마당 민
1991 12월전, 그림마당 민
1991 전국 청년미술제, 전국순회전
작품 소장
부산시립미술관 / 대전시립미술관 / 아라리오미술관 / 가나아트센터/ 노무현 재단/ 넥슨 / 상원사 등
기타 활동
아시아 오지 미술벽화 프로 젝트 / 캄보디아 네팔 티벳 등
고 노무현 대통령 영정제작 노무현 대통령 대형 걸개그림 제작
고 백남기 열사 영정제작
고 이소선 열사 영정제작
문재인 대통령 인물화 제작
Artist Statement
빛을 찾아서....
티벳의 아이들의 얼굴에는 자연이 담겨져 있다. 수 없이 스쳐지나간 바람의 흔적과 대지와도 같은 피부, 붉게 탄 뺨에는 태양의 빛이 그대로 녹아 있는 듯했다. 튼 살 위로 태양 빛이 비추면 숨구멍 사이가 마치 파도의 물결처럼 빛나 보였다. 눈동자 속에는 광활한 대지가 숨어 있고 그렁거리는 눈물에는 마치 히말라야의 눈이 녹아내리는 듯한 영롱함이 배어 있었다. 오체투지 순례를 함께 해온 아이들의 피멍이 든 이마에는 선명한 땅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 배 한 배 수없이 땅과 입맞춤한 흔적이 시퍼렇게 새겨져 있다. 히말라야 해발 5500미터 고도에서 만난 태양 빛은 얼마나 강렬했던가!
그 빛이 땀구멍 사이로 태양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수없이 작은 점들을....
히말라야의 겨울 추위와 고지의 더위를 견디며 합장한 두 손에는 일체 중생을 향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담고 있었다.
인류가 위대한 면(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바로 이 아이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겨우 5-6살 10 살도 안 되는 아이들이 너무나 당당히 히말라야의 앞에 서 있었다. 찬란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감동이 전해져 왔다.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와서 꼭 안아 주고 싶었다.
나는 내가 직접 만난 이 아이들의 모습을 역사에 꼭 남기고 싶었다. 이 숭고한 아름다움을 표현 할 수 있다면 .... 강렬한 인상을 잊지 않으려고 수없이 보고 또 보았다.
작업실로 돌아와 대형 캔버스를 놓고 (나는 무명의 오지 아이들을 기념비적인 모습으로 남기고 싶었고, 관객들이 그림속 아이의 존재를 올려다보고 아우라와 존경심을 느끼기를 원했고, 숭고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대형 작업을 원했다) 아이들을 그릴려고 할 때면 긴장감에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티벳의 아이들의 얼굴에 담겨져 있던, 태양빛과 바람과 대지의 흔적을 어떻게 표현 할 수 있을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얼굴 모습을 해체 시켜 보기도 하고 세포 사이사이를 흐르는 공간을 찾아보기도 했다. 결국 나의 작업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빛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바람의 흔적을 찾고 땅의 흔적을 찾는 길이었다.
태양빛으로 찬란히 빛나던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하기에는 기존의 형식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 빛은 반드시 공간 속에서만 존재 할 수 있었다. 공간이 있어야 숨 쉴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빛과 바람이 살아 있었다. 수없이 생과 멸을 반복하는 무상과 공의 이미지를 찾고 싶었다.아이들의 얼굴에서 흐르는 빛이 땀구멍 사이를 돌아 수많은 색으로 변화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빛이 그러하듯이 바람이 그러하듯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변하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 터치 한 터치 아주 미세한 붓으로 공간을 찾아 나간다. 빛과 바람을 만나기 위해서 ....
때로는 수많은 터치들을 새어 보기도 했다. 한번은 백번씩 백번 만 번을 새어보다가 잊어버리기도 했다. 완전한 몰입의 시간 속에 나는 없었다. 고요하고 평정의 상태를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아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4미터 정도의 큰 그림을 그릴 때는 작업대에서 내려와 멀리 나와서야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긴장된 순간이다. 가장 떨린다.
빛을 찾아보고 공기의 흐름도 살피고 눈의 빛이며 모습 표정 하나하나 살펴본다. 사람의 얼굴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예민한 존재인지 자칫 방심하면 쉽게 상처가 난다.
환한 미소를 담은 아이들이 생생히 살아 날 때면, 감사의 마음이 든다. 내게 인연이 되어준 아이들에게... 그 시간들에게 감사한다.
2018 어느 여름날
Review
꿈꿀 권리 - 임영선의 <on the Earth>에 대하여
캄보디아의 난민촌에서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잇는 아이들, 관광객을 상대로 강에서 바나나를 파는 아이들, 사막화되고 있는 몽골 초원을 지키는 마지막 유목민의 아이들, 중국 오지의 사라져가는 소수민족 마을의 아이들...잊혀져가는 마을, 변방의 가난한 동네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지만 이 아이들은 당당하고 낙천적인 눈동자를 하고 있다. 어른들이 도시로 떠나고 남은 마을을 지키며 돈을 벌기 위해 하루종일 일하고 있지만 이 아이들의 삶은 단지 어둡지만은 않다. 임영선은 아시아의 가난한 마을에 사는 아이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기록하지만 사회고발성 다큐멘터리 같은 시선으로 아이들을 보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아이들의 현실 속에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짝 꿈의 공간을 끼워놓으며 이들의 일상이 아름답게 돋보이도록 조용히 응원한다. 꿈과 현실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희망은 현실을 벗어난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 누군가에게 꿈과 동경의 공간인 곳이 누군가에겐 생존과 현실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 두 공간은 서로 섞이고 스며들어서 꿈과 현실 사이에 펼쳐진 고단하지만 단단한 희망의 장소를 새롭게 엮여 낸다.
각박한 생존의 현장인 쓰레기장은 색색의 화려한 스카프로 넘실대고 쓰레기봉지를 든 아이들 위로는 더없이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소녀의 미소가 허름한 마을길을 물들이고 남루한 옷을 입은 자매는 햇볕에 탄 검은 얼굴을 드러내며 해맑게 웃는다. 크고 맑은 아이의 눈에는 친구들의 꿈이 비친다. 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단순한 호소 대신 작가는 이 아이들의 세계가 얼마나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아시아 변방 마을의 아이들’이라는 소재는 꿈과 현실이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색다른 방법이 된다. 꿈꿀 권리, 그것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매일 매일의 나날에 충실한 사람들에게 비로소 주어지는 권리이다.
200호에서 500호에 이르는 커다란 캔버스에 기념비적으로 그려진 아이들의 사이즈는 이들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고, 일반적인 유화물감의 사용법과는 좀 다르게 정교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칠해진 붓질은 사실주의적 기법이 자칫 가질 수 있는 부담을 덜어내면서 화면을 밝고 반짝이게 만든다. 가난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지만 동시에 이들의 세계는 밝고 가볍게 표현되어 있다. 작가는 부분적인 묘사는 치밀하게 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여백을 많이 남겨 화면을 시원하게 하고 상상의 여지를 남겨둔다. 배경은 거의 그려져 있지 않거나 최대한 단순화되어 있으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아이들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인물과 배경은 서로 섞이고 녹아들면서 땅과 사람이 하나의 풍경으로 완성된다. 작가는 흰색이나 파스텔톤으로 밑칠을 한 캔버스 바탕이 드러나도록 물감을 위에 얇게 펴발라 투명한 효과를 높였다. 세밀한 터치가 많이 들어간 배경은 반짝거리는 물의 표면이나 햇볕에 빛나는 조약돌처럼 보인다.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대담하면서도 정밀한 묘사력이 이런 효과와 맞물려 화면을 힘있게 만들어준다.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주로 정면을 보고 서 있거나 앉아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풍경들이 오버랩되는 세로 작품들과, 자전거를 타거나 등을 보이고 뛰어가는 등 좀더 다양한 포즈가 등장하고 배경에 푸른 하늘이 등장하는 가로 그림들. 전자가 아이들의 당당한 모습을 강조하면서 크게 그려진 인물과 작게 그려진 풍경의 대비, 단순한 배경과 정교한 묘사의 대비를 통해 시원한 기념비적 느낌과 미묘한 몽환적 효과를 함께 갖고 있다면, 후자는 좀더 암시적이고 시적인 느낌이 들며 더 깊이있는 울림을 갖고 있다. 묘사방식이나 색채사용이 더 복잡하고 정교해졌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여전히 투명하고 맑다.
각각의 화면은 각각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작가는 그것을 하나 하나 설명하지 않으며 한 장면에 다른 장면을 오버랩시키는 기법으로 시각화한다. 앞을 똑바로 쳐다보며 당당하게 서 있는 아이들의 옷자락이나 배경에는 이들이 살고 있고 또 살아갈 고향의 풍경이나 친구들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친다. 단발머리에 맨발을 한 자매의 옷에 비친 푸른 숲, 부처처럼 합장을 한 흰 옷 입은 소녀의 옷에 비치는 푸른 하늘과 나무, 까맣고 큰 눈동자를 하고 앉아있는 소녀의 모습과 겹쳐지는, 소와 사람과 강이 어우러진 풍경...이 풍경들이나 사람들은 분명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척박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울같은 오버랩의 효과를 통해 꿈과 동경의 공간으로 바뀐다. 거울은 작가와 관객 앞에 놓여 있는 것이기도 하고 화면 속 아이들 앞에 놓여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특이한 거울은 한편으로는 대한민국땅에서 하루 하루를 챗바퀴돌며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어딘가 이국의 땅을 상상하게 해주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국의 땅을 척박하고 힘든 현실로 겪어내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발딛고 있는 땅을 아름다운 공간으로 마술처럼 바꾸는 장치이기도 하다.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의 주변에 펼쳐진 풍경은 분명 이방인의 눈에 비친 그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외부인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본다는 것을 굳이 감추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이방인이기에 작가는, 우리 관객들은, 이 풍경 속에서 오히려 매일 매일의 고단함이나 단조로움 사이로 열려서 빛을 내는 작은 틈새를 발견할 수 있고, 그 시선을 되돌려받아 완성된 아이들의 풍경은 희망으로 채색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맑은 눈으로 정면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이 아이들의 모습이 단지 캄보디아나 몽골이나 중국 같은 특정한 나라의 이국적 풍경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삶의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는 이런 독특한 교차효과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현실이 만나면 그것들은 완전히 포개질 수가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틈새에서 우리는 일상이나 현실 같은 이름 속에 완전히 용해될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설렘이나 빛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령(독립 큐레이터) / 2009
지구의 미래를 사유하는 21세기의 염화미소
임영선은 변방의 아이들을 통해서 지구의 미래를 본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주변부 소수자에 주목해서 그곳 어린이들의 현실을 바라보는 임영선의 시각은 전지구화의 이면에서 떠오르는 지역화로서의 동아시아담론이나 중화패권주의의 급부상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거대담론의 틀에 묶여있는 동시대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게 해준다. 동아시아를 두루 꿰는 임영선의 행보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겠다’는 실현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예술가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일이다. 그는 몽골이나 캄보디아, 티벳 등과 같이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의 변방 마을을 방문해서 예술적 실천을 하고 있는데, 방문 현장의 어린이들과 벽화나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가지는 한편, 한 없이 맑고 깊은 미소를 보내는 어린이들을 현지의 풍경과 오버랩해서 담아내는 회화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관찰자 시점의 방문객으로서만이 아니라 현지의 상황과 함께 호흡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그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생산한다.
다수의 예술가들이 국제교류의 장에 동참하기를 갈망하면서 국제적인 명망성을 갖춘 미술관이나 갤러리 공간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데에 골몰한다. 반면에 임영선은 동아시아 변방의 가난한 마을을 찾아간다는 점,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과 벽화 그리기 등의 예술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사뭇 다르다. 임영선의 행보에는 자원봉사자와 예술가라는 두 가지의 정체성이 섞여있다. 애초에 그가 동아시아 어린이들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인연으로부터 나왔다는 점도 의미심장한데, 그러니까 임영선은 예술작품 생산을 위해서 동아시아의 어린이들을 만나온 게 아니라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를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생각한다는 게 중요하다. 동아시아 어린이들을 캔버스에 옮겨 그리고 있는 지금까지도 임영선은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지수를 높이는 사람이다.
임영선은 낭만주의자이다. 그는 감수성 예민한 청년시기를 대학생의 신분으로 보냈다. 1980년대 후반기인 당시의 가장 큰 이슈는 조국통일과 민주주의였다. 20대 청춘 시절에 꿈꾸는 낭만주의적 사상과 정서는 세월이 흘러도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젊은 날의 꿈과 이상을 간직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낭만적 이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리 만무하다. 2009년의 노무현 서거 정국에 고인의 초상화를 그려서 봉하마을로 달려갔던 임영선이다. 대형걸개그림을 그려 봉하마을에 기증하기도 했다. 임영선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깊고 넓게 한반도와 세계의 정세에 관해 생각하는 예술가이다. 그러한 그가 한반도의 두 국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이야기하지 않고 동아시아의 어린이들을 화면에 담는다는 점은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좁은 틀에 국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의 문제를 남한과 북한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고 동아시아 공동의 미래 속에서 성찰하겠다는 것이다.
임영선은 동아시아담론을 자신의 예술적 어법으로 의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유사 이래 19세기까지 동아시아는 나름의 독자적인 틀을 가지고 흥망성쇠를 거듭해왔다. 특히 근세 수백년동안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중심이 정치와 경제, 문화의 영역에서 헤게모니를 놓지 않았지만, 20세기의 역사는 판이하게 달랐다. 거대한 힘의 상실은 새로운 양상의 전쟁과 경쟁을 낳았고, 오늘날까지도 상호간의 적대적인 태도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냉전시대를 지나면서 미국중심의 일극 패권주의에 빠져 동아시아를 공동체나 지역의 개념으로 설정하고 연대하는 일에 눈뜨지 못했다. 그나마 1980년대 후반 이후 동아시아담론이 대두한 탓에 다양한 논의가 있어왔지만 그것은 담론의 수준을 넘어 실행 모드로 이행하기에는 상당히 피상적인 것이었다. 물론 정치적인 변화와 경제적인 발전, 그리고 이에 따른 문화적 상호교류는 이전에 비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전해있다. 하지만 예술적 상상력에 입각한 국가와 국가, 도시와 도시, 나아가 개인과 개인의 상호성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일각에서는 한국은 이미 제국주의의 냄새를 풍기는 고약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나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반한류 기류가 일각의 변죽으로만 듣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물며 몽골이나 캄보디아 등의 소수자 국가들의 대중들에게 한국의 존재는 일종의 문화폭력일 가능성이 크다. 한류는 한반도 남단의 작은 나라가 생산해내는 돈 되는 문화콘텐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물결을 타고 거대자본의 힘으로 덜 자본화된 국가의 사람들의 안방에까지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자본폭력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이윤창출의 극대화를 위해 10대 아이들을 심볼로 내세우는 한국발 대중문화의 전략을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문화산업의 관점에서 칭송할 일이 아니다. 국가 간 경계를 허무는 전지구화 현상을 문화적 버전으로 실천하고 있는 한류에 대해 국가브랜드 운운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달콤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긴 관점에서 봤을 때 결코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화산업의 논리가 팽배한 시대에 작고 낮은 목소리로 동아시아 변방의 어린이들과 소통하는 임영선의 예술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임영선은 예술가적 양심에 따라 실천하는 ‘행동하는 예술가’이다. 그의 예술적 실천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의 해외 교류는 국가 간의 교류가 아니라 민간의 차원, 특히 임영선이라는 예술가 주체의 실천의지에 입각해 있다. 흔히들 예술가의 해외 활동을 국제교류라고 명명하곤 한다. 그런데 그 국제적(international)라는 말은 국가 간의 상호성을 의미한다. 그 상호성이라는 것이 국가 간의 엄연한 경계를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예술적 실천이나 소통의 문제와는 격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임영선의 행보는 국가 정체성을 대변하거나 대표하지 않는다. 그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활동하는 한 예술가로서 움직일 뿐이다. 물론 그를 규정하는 국가나 도시, 성별, 연령 등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임영선은 시대정신과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예술적 실천 모색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예술가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임영선의 회화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꿰뚫는 염화미소(拈華微笑)가 깃들어있다. 꽃을 집어 든 석가에게 미소로 화답한 그의 제자 가섭의 이심전심(以心傳心)과 같이, 임영선의 그림에는 직관적 소통을 매개하는 힘이 있다. 임영선 회화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질은 붓질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 매력을 발산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진을 바라볼 때는 전혀 다른 회화 이미지의 매력이다. 가령, 어린이를 찍은 사진을 보는 관객이 ‘저기에 어린이(이미지)가 있다’라는 인지를 가질 확률에 비해서 임영선의 그림을 보는 관객이 ‘저기에 (어린이를 그린) 그림이 있다’라는 인지에 도달한 가능성이 훨씬 높다. 어린이와 어린이를 찍은 사진 이미지 사이의 간극에 비해서 어린이와 어린이를 그린 회화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훨씬 커 보인다. 따라서 임영선의 회화는 회화적 표현의 대상인 어린이들에 대해 성찰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관찰자 자신의 시선을 의식하게 한다. 다시 말해서 객관적 거리 두기를 통해서 그 깊고 넓은 세계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화려한 붓질과 빛나는 색채의 임영선 회화에는 직관의 힘으로 시대정신을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지구의 미래를 사유하는 21세기의 염화미소가 있다.
김준기 (시각예술평론가)현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 2011
삶의 토템, 풍경, 대지 : 임영선의 작품에 대하여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세계의 오지마을에 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대형 캔버스에 기념비적인 규모로, 그러나 세밀하고 따스한 터치로 그려온 작가 임영선이 이번 전시에 들고 나온 새로운 작업들은 광화문을 그린 연작이다. 뒤집어진 배와 바다가 그려진 어느 정도 직접적인 작품도 있지만, 나머지는 광화문 이외에는 거의 확인 가능한 형상이 없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배가 그려진 작품을 먼저 보지 않았더라도, 어렵지 않게, 그 앞 광장 앞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수많은 사람들, 세월호 유족들을 떠올리게 된다.
광화문 그림에서는 아이들을 그린 붓질의 부드러움과는 대조적으로, 화면을 뒤덮듯이 거칠게 흘러내린 물감들, 비나 먼지처럼 덮이고 깎인 덩어리들의 흔적이 강조된다. 아이들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실과 꿈이 만나는 따뜻한 공간 대신, 단단한 물질성이 강조된 벽과 지붕들, 길이 등장한다. 이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작가는 먼 이국 땅에서 순수함의 장소를 찾는 대신 지금 이곳으로 돌아온 것일까?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광화문 연작과 아이들 연작 사이에는 분명한 연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먼 곳에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이곳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존재와 광화문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광화문은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논쟁의 장에 등장했던 상징적 존재이지만, 직접적인 표현은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삭제되어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묘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사건의 말없는 증인으로서의 광화문이 갖는 ‘거기 있음’의 존재감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방금 전까지 문 앞에 누웠던 사람들의 흔적인 양 화면 아래에 흩어져 있는 청회색의 물감뭉치들, 바닷물처럼 묘사된 푸른 흐름들...
그러나 그 혼돈의 와중에도,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총총하다. 이 별이 빛나는 밤하늘의 이미지는 아이들을 그린 작품들 속에서도 발견된다. 화면 가득 그려진 아이들의 커다란 얼굴은 아래 쪽에 작게 묘사된 수평적 풍경의 광활함 속으로 녹아들며, 그 풍경과 어우러진다. 광화문의 밤하늘은 아이들의 세계 속에 등장하는 밤하늘과 달리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얼핏 암울하게만 보이는 화면 속에 작은 희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세계와 공명한다.
그동안 작가는 동남 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오지마을을 여행하면서 아이들의 인물화를 그려왔으며, 몇 가지 다른 기법을 시도해왔다. 초기에는 전신상을 위주로 매끄럽게 바른 물감의 질감을 드러내다가, 점차 피부 하나 하나가 햇빛을 반사하듯이 섬세하고 능숙한 점묘법으로 얼굴과 머리카락을 클로즈업해서 묘사하기 시작했다. 이 얼굴들은 때로는 안개나 햇살 속으로 사라질 듯 아련하게, 때로는 맑은 공기 속에서 소박하지만 강인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때로는 연한 파스텔톤의 색채로 따스한 느낌을 주고, 때로는 더 채도가 높은 색으로 명랑한 감성을 보여준다. 묘사되어 있는 것은 오로지 얼굴 뿐이지만, 관객은 그 얼굴과 옷, 머리카락에 반사된 쨍하고 맑은 햇별과 바람, 그들을 둘러싼 자연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주로 200호나 300호 사이즈의 대형 캔버스에 그려지는 이 작품들은, 말하자면 일종의 기념비적인 초상화이지만, 주류적인 역사와 현실이 중요성을 부여하는 인물들의 기록은 아니다. 이 무명의 존재, 무명의 얼굴들에게 역설적인 기념비성을 부여함으로써, 작가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구축한다.
이 ‘다른 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지니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토대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이다. 아이들의 튼 살이나 남루한 옷,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굳이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아도 세계를 긍정하는 하나의 장소, 토대가 된다. 그것은 물론 시간을 초월한 형이상학적 토대가 아니다. 일시적이고 바스라지기 쉽지만, 우리 존재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서적 지지대, 말하자면 일종의 ‘토템’ 같은 것이다. 대형 캔버스에 수직적으로 그려져 있지만 아이들의 초상화들이 기념비적이고 영웅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먼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들의 얼굴은 사실상, 캔버스에 함께 그려진 풍경처럼, 수평적으로 펼쳐져 있다. 아이들의 얼굴은 풍경과 겹쳐져 있으며, 그 자체가 풍경으로 변한다. ‘대지’로서의 풍경, 그리고 얼굴. 토템으로서의 캔버스.
이 현대적인 주술의 역할은 광화문의 질감과 형상 속에서 다시 한번 반향된다. 비와 바람에 시달리면서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광화문의 묵직한 존재감과 화면의 거친 물성들은, 얼핏 아이들의 얼굴을 비추는 햇살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존재 자체가 토템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두 세계는 공통의 공간에서 교차한다. ‘토템’은 ‘페티시’와 달리 항상 공동체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 현실 속에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존재의 연관성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조선령(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 /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