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g, Tae Hoo

(b.1991)

학력

2017  University of Southampton, MA Fine Art 석사 졸업

201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20  《와일드카드》,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갤러리777, 양주

2018  《달과 메아리》, 창작공간 달, 서울

2018  《요란한 자장가》, 사이아트 스페이스, 서울


주요 단체전

2026 《늘, 봄봄》, 뮤지엄 호두, 천안

2025 《회화, 교차된 시대의 흔적》, 뮤지엄 호두, 천안

2025 《세상의 모든 드로잉》, 뮤지엄 호두, 천안

2025 《존재의 감각》, 갤러리FM, 서울

2025 《작은풀밭》, AARM, 서울

2024  《불시착 315》,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천안

2022  《오늘의 회화》, 아트스페이스 라프, 서울

2022  《NYAM (Nowon Young Artist Map)》, 경춘선 숲길 갤러리, 서울

2022  《화가별장》,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갤러리 777, 양주

2021  《여섯 번째 시간(hora sexta)》, 아트스페이스 언주라운드, 서울

2021  《777레지던스 입주작가 상설전》,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양주

2021  《YYA(Yangju-city Young Artist)》,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

2020  《노원문화재단 신진작가 지원사업: Nowon Young Artist Exhibition》, 상계예술마당, 서울

2020  《갤러리 시선 개관 2주년 기념전: 지난 2년 Selected》, 갤러리 시선, 서울

2020  《갤러리 시선 3인 공모전》, 갤러리 시선, 서울

2019  《제10회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 수상자전》, 겸재정선미술관, 서울

2018  《보가트: 내 안에 나를 마주하다》, 인디아트홀 공, 서울

2018  《피플스 초이스 프로젝트 2018》, 사이아트 스페이스, 서울

2017  《MA show》, 윈체스터 예술학교, 윈체스터, 영국

2017  《MA interim show》, 윈체스터 예술학교, 윈체스터, 영국

2017  《Small Faces, Showcase Gallery》, 사우샘프턴, 영국

2016  《Half-baked》, 윈체스터 예술학교, 윈체스터, 영국


프로젝트

2022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X극단여행자-다원예술프로젝트: 《경양식돈가스》,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양주


레지던시

2026          가나아뜰리에×(재)화성시문화관광재단 : 레지던시 지원 - 「모든예술31 화성」

2024-2026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천안

2020-2022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양주

2018-2019  창작공간 달, 서울


수상 및 선정

2019  제10회 겸재 내일의작가 최우수상

2020  노원문화재단 신진작가 지원사업

2019  통의동 보안여관 작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DoLUCK 06 지원사업

2018  사이아트 스페이스 피플스 초이스 프로젝트 2018 공모 선정


작품소장

서울특별시청 문화본부 박물관과

겸재정선미술관



Education

2017 MA Fine Art, Winchester School of Art, University of Southampton, Southampton, UK

2015 BFA in Western Painting, College of Fine Arts,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Solo Exhibitions

2020 Wild Card, Gallery 777 Yangju Arts Studio, Yangju, Korea

2018 The Moon and the Echo, Art Space DAL, Seoul, Korea

2018 Uproarious Lullaby, Cy Art Space, Seoul, Korea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26 Always, Spring, Museum HODU, Cheonan, Korea

2025 Painting, Traces of an Intersected Era, Museum HODU, Cheonan, Korea

2025 All the Drawings in the World, Museum HODU, Cheonan, Korea

2025 The Sense of Existence, Gallery FM, Seoul, Korea

2025 Small Meadow, AARM, Seoul, Korea

2024 Emergency Landing 315, White Block Cheonan Art Residency, Cheonan, Korea

2022 Painting Today, Artspace LAF, Seoul, Korea

2022 NYAM (Nowon Young Artist Map), Gyeongchun Line Forest Gallery, Seoul, Korea

2022 Villa of Painters, Gallery 777, Yangju Arts Studio, Yangju, Korea

2021 Hora Sexta, Artspace Eonju Round, Seoul, Korea

2021 YYA (Yangju-city Young Artist), Jang Ukjin Museum of Art, Yangju, Korea

2020 Nowon Young Artist Exhibition, Sanggye Arts Center, Seoul, Korea

2020 Gallery SISEON 2nd Anniversary Exhibition: Selected of the Past Two Years, Gallery SISEON, Seoul, Korea

2020 Gallery SISEON 3-person Exhibition, Gallery SISEON, Seoul, Korea

2019 10th Gyeomjae Tomorrow’s Artist Award Exhibition, Gyeomjae Jeongseon Museum of Art, Seoul, Korea

2018 Bogart: Facing Myself Within, Indie Art Hall Gong, Seoul, Korea

2018 People’s Choice Project 2018, Cy Art Space, Seoul, Korea

2017 MA Show, Winchester School of Art, Winchester, UK

2017 MA Interim Show, Winchester School of Art, Winchester, UK

2017 Small Faces, Showcase Gallery, Southampton, UK

2016 Half-baked, Winchester School of Art, Winchester, UK



Projects

2022 Yangju Arts Studio × Theatre yohangza – Multidisciplinary Arts Project: “Gyeongyangsik Pork Cutlet”,

   Yangju Arts Studio 777 Residency, Yangju, Korea



Residencies

2026             Gana Atelier, Yangju, Korea

2024–2026 White Block Cheonan Art Residency, Cheonan, Korea

2020–2022 Yangju Arts Studio 777 Residency, Yangju, Korea

2018–2019 Art Space DAL Residency, Seoul, Korea



Awards & Grants

2019 Grand Prize, 10th Gyeomjae Tomorrow’s Artist Award

2020 Nowon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 Emerging Artist Support Grant

2019 DoLUCK 06 Artist Incubating Program, Tongui-dong Artspace Boren Inn

2018 Selected Artist, People’s Choice Project 2018, SAI Art Space



Collections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Museum Division

Gyeomjae Jeongseon Museum of Art

Artist Statement


 

나는 알을 깨고 나오지 못했다.


얼핏 보면 지금 시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세분화된 세상 속에서 개인은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조용히 짓눌린다. 숫자로 사람을 재단하고, 빠르고 효율적인 것만 가치 있다고 말하는 흐름 안에서 감정은 자꾸 뒷자리로 밀려난다. 슬픔은 비효율적이고, 분노는 비생산적이고, 황홀은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나는 그래서 오히려 감정을 그린다. 이 시대가 쓸모없다고 치워버리는 것들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단하고 투명한 무언가가 나를 감싸고 있는데, 그게 정확히 어디서부터인지는 모르겠고, 안에서 밖이 다 보이는데 나갈 수는 없다. 인간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될 수 없는 존재다. 사회적 자아와, 그 틀을 벗어나려는 본능 사이의 충돌. 그 긴장이 내 작업의 출발점이다.


나는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한다. 그런데 이 사랑이 때로는 족쇄처럼 느껴진다. '나'라는 존재에는 이 몸, 이 마음, 내가 걸어온 궤적이 전부 딸려 오고, 나는 그것들을 벗어던질 수가 없다. 이 얼굴, 이 목소리, 이 기억들. 전부 나인데, 전부 나를 붙잡는다. 한계가 싫은 게 아니다. 다만 평생 이것만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숨이 막힐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존재들을 바라본다. 동경이라고 해도 좋고, 질투라고 해도 좋다. 새가 날개를 펼치는 걸 보면 저 몸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말이 달리는 걸 보면 저 다리로 땅을 차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몸,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삶.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소년이었던 적이 없다. 나와 닮았지만 다른 세계를 사는 남동생을 보면서, 저 몸으로 세상을 걸으면 어떤 기분일까를 진지하게 상상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를 페르소나로 화면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내 남자 버전 같은 존재. 내가 될 수 없었던 또 다른 나.


왜 나는 자꾸 달리고, 질주하고, 날갯짓하는 장면을 그리는 것일까. 아마 내가 작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하게 굴러가는 세상에서 한 사람은 톱니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나도 매일 그런 혼란과 불안 앞에 선다. 나의 취약한 성정은 동경하는 호방한 기질과 늘 부딪히고, 그 괴리가 표현의 욕구로 올라온다. 내가 그리는 존재들은 전부 유한하다. 하지만 그 유한한 몸으로 날고, 달리고, 온 힘을 다해 움직이는 찰나만큼은 눈이 부시다. 나는 그 순간을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역동적인 존재들을 화면에 크게 놓고, 그 에너지가 배경과 공기까지 장악하도록 붓질을 밀어붙였다. 붓질은 형상을 만들면서 동시에 흩뜨리고, 물감의 두께와 속도가 겹겹이 충돌한다. 색은 색상 대비와 높은 채도끼리 부딪히게 놓고, 화면 전체가 바람이 부는 것처럼 운동하게 만들었다. 미끄러질 듯 잡히지 않는 감정을 붓의 속도로 붙잡았다.


나는 회화의 표면이 나르시스가 들여다본 연못의 수면 같다고 느낀다. 다만 나르시스는 거기서 자기 얼굴 하나만 보았지만, 나는 여러 개의 얼굴을 본다. 내가 그린 새, 내가 그린 말, 내가 그린 소년, 내가 그린 개, 내가 그린 바람과 나무. 전부 다른 존재인데 모두 나를 닮아 있다. 붓질의 흔적에는 그리는 동안의 감각과 몸의 기억이 남고, 그것들이 고여서 나를 비추는 수면이 된다. 그런데 거기 비친 건 지금의 내 얼굴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었던 것들의 얼굴이다.

그리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어느 순간 내가 그 존재가 되어 있다. 장자가 말한 것처럼, 내가 새를 그리는 건지 새가 나를 그리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지점이 온다. 그 몰입 속에서 그림 속 새는 나 자신이 되고, 동시에 온전히 새이기도 하다. 내가 그린 소년은 남동생이면서 나이고, 말은 내 안의 질주이면서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말이다. 캔버스 위의 존재들은 점점 또 다른 자화상이 된다.


회화 연작으로 악타이온 신화에 나오는 사냥개를 그린 적이 있다. 사슴으로 변한 주인을 물어 죽이는 개. 거기에 나 자신을 투사했다. 그런데 그려놓고 보니 그 개들이 신화 속 존재가 아니라, 마치 정말로 나와 함께 살았던 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모습 같기도 하고, 나와 별개로 살아 있는 존재 같기도 했다.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만든 형상이 나에게 진심으로 되돌아온 순간이었다. 그때 알았다. 회화는 단순히 무언가를 그려 놓는 행위가 아니다. 그린 것이 나에게 되돌아와 나를 바꾼다.


결국 회화는 나에게 눌려 있던 것을 꺼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빠른 붓질과 격렬한 색의 부딪힘은 현실로부터의 저항이고, 살아 있다는 증거다. 이 작업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걸 다른 에너지로 바꾸는 긴 시간이다. 고독하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이 몸부림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릴 때 신화 속 영웅에 자신을 겹쳐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었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나라는 한계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너머를 꿈꾸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내 그림이 그런 마음 앞에 서는 거울이 될 수 있으면 한다.


회화를 통해 알을 깰 것이다.

Review



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독립기획자 배은아

 

안녕하세요. 정태후 작가님,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봅니다. 작년 그러니까 2024년 10월의 마지막 주였던 어느 가을 주말 늦은 시간에 천안에 있는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에 지인의 초대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오픈 스튜디오의 마지막 날이라 열려 있는 몇몇 스튜디오만 방문하고 돌아가려던 차에 작가님이 저를 스튜디오로 초대했지요. 그렇게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던 작가님의 스튜디오에는 거대한 푸른 화폭 속으로 돌진하는 말들, <푸른달>(2024-5)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한 마리의 새가 <허공의 틈>(2024-5) 사이 천둥 번개를 뚫고 날아가고 있었고, 그리고 입구 쪽에 한 소년이 메뚜기 자세를 하고 <도약>(2024)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이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형상들이 떠나고 남은 제 기억의 언저리는 어떤 태초의 에너지가 지나간 흔적, 강렬한 색과 붓질, 찰나의 몸짓이 만들어내는 생명력으로 가득 했습니다.

 

그리고 그해(2024년) 겨울이 지나고 올 봄에 사무실로부터 비평 요청을 받았습니다. 지난 겨울 박종호 작가의 소년들을, 그들의 얼굴과 마음을, 그리고 말들을 보살피며 우리에게 ‘유년’이란 무엇일까, 어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 소중하고 애처로운 한 시절이었기에 쉬이 털어내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어쩌면 정태후 작가의 소년, 그리고 유년의 감수성을 통해 어떤 다른 여정을 시작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후 작가님은 저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그 중에서도 첨부해주신 스위스 애니메이션 작가 조르주 슈비츠게벨(Georges Schwizgebel)의 단편 애니메이션 세 편 (<78회전 78 Tours>(1985), <회화의 주체 The subject of the Picture>(1989), <파멸로의 여행 The Ride to the Abyss>(1992))이 기억에 남습니다. ‘화면 위에 붓질이 쌓이며 형상과 시각적 양식을 만들어내는 방식뿐 아니라, 붓질이 시간과 움직임 속에서 공간과 서사로 전개되는 표현 방식에서 항상 영감을 받고 있다’고 덧붙여 주셨지요. 애니메이션은 애니미즘(animism)에서 유래한 말로, '살아있는(animated)'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작가님은 종종 이미지의 주술성을 강조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모든 생물에, 그러니까 그것이 동물이건 무생물이건, 자연현상이건 이미지이건 거기에는 영혼과 생명이 깃들여 있다고 믿고 있는 듯했고, 그리고 그 이미지에 작가로서 자신을 투영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의 회화에서 새는 자유의 파장으로, 말은 심장을 뛰게 하는 속도의 상징으로, 소년은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메뚜기 떼처럼 생명력의 집단적 진동을 일으킵니다. 마치 슈비츠게벨의 이미지들처럼, 평면의 무한회전으로 반복되는 파장 속에 이미지의 의미는 탈락되고 그 원초적인 창작의 열망과 실존의 역동만을 남깁니다. 그 찰나의 강렬함 속에서 그림 속 이미지는 이야기보다 빠르게, 언어보다 깊게 살아 움직이려고 요동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난(2025년) 여름 갤러리 FM에서 기획된 3인전 ≪존재의 감각≫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스튜디오가 아닌 화이트 월에 걸린 정태후 작가의 회화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돌을 던지는 아이의 형상, <돌>(2024)으로부터 청각적인 진동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마치 한 아이가 피리를 불고 있는데, 그 소리가 대기로 흩어져서 바람을 만들고 있는 듯했지요. 물가의 돌을 보면, 누구나 한 번 즈음 돌을 던지고 싶어 집니다. 그것이 유년의 추억일 수도 있지만, 어떤 소심한 마음에 뻥 뚫린 호수나 바다 앞에 서면 혹은 높은 곳에 올라가 우뚝 서게 되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요. 유한하고 미미한 내가 거대한 자연 앞에서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 — 존재를 남기려는 본능적인 충동 같은 것이 겠지요. 그 돌의 파문이 만들어내는 파장은 마치 한 번의 붓질로 시작해서 거대한 세계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행위와 같습니다. 저는 감히 이 그림이 작가님이 그림을 그리는 혹은 회화를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대한 화폭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하고 싶은 강인한 의지 말입니다.

 

다시 한번 작년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에서 보았던 푸른 청록의 말의 정동과 올 여름에 갤러리에서 보았던 메뚜기 떼와 함께 사라지는 소년, <실존으로(메뚜기 떼)>(2023), 그리고 다시 올해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에서 보았던 테니스 치는 사람들, <서브, 리턴, 볼 키즈>(2024)을 떠올려봅니다. 작가님의 그림은 더 이상 내적 자아의 해방을 위한 출구가 아닌 작가와 관객 사이가 연결되는 플랫폼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관객은 이제 이미지의 서사를 따라가는 외부의 관객이 아닌 그림 속 이미지의 에너지를 통해서 작가 내면에 초대되는 내부자가 됩니다. 원초적인 동물성, 요동치는 대기, 그리고 빠르고 순간적인 동작들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강렬한 색체와 함께 일어나는 시각적인 동요는 보는 이로부터 심리적인 변화를 일으켜 함께 그림 속으로 몰입하게 하거나 혹은 거부하게 합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신기하게도 작품이 살아있다는 느낌은 때로는 불편하게 때로는 친근하게 작동됩니다. 어떠한 기법이나 주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가 작품에 전달하고 있는 어떤 믿음 그리고 간절한 바램이 그림을 살아나게 합니다. 이러한 경험이 아마도 작가님이 말씀하신 회화의 주술성이 아닐까요?

 

그런데, 여전히 궁금한 질문이 있습니다. 작가님의 에너지가 품고 있는 원초적인 욕망, 그 원형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을 그림에 담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붓의 회화적 기법을 실험하기 위함 일 수도 있고, 현재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그리는 행위를 통해 어떠한 해방을 수행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물론, 이 모두는 모두가 뒤섞여 따로 분리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수행적 회화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활동 초기에 작가님은 회화의 주제로 자신의 남성성(Animus)을 드러내 줄 수 있는 소년을 등장시킵니다. 작가님은 유년기에 남동생과의 애착 관계에 대해 언급하셨었지요. 여성이라는 자신의 신체 속에 내재되어 있는 남성성을 남동생의 존재 속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그렇게 자신과 닮은 남동생과 동일시하면서, 남동생을 통해 자신의 남성성을 대신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의 내면의 남성적 자아는 그림 속 타자의 정체성을 통해 발현되면서, 모성애라는 개인적인 맥락이 드러남과 동시에 주변의 사물 서사를 통해서 제 3의 상상의 세계로 확장됩니다. 그림은 더 이상 태후씨의 정체성을 질문하지도, 개인의 해방을 주장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객체가 되어 관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그림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그 파릇파릇한 유년이 보입니다. 그 유년은 매우 높고 강한 이상과 실존적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언젠가 소녀였을 때 부과되지 못했던 자유에 대한 갈망, 때때로 자신의 남성성을 분출할 수 있을 대상을 찾아 떠난 모든 감수성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독서에 몰입하는 소극적 신체 속에 황야를 질주하는 내면적 남성성의 설레는 대립에서 발생한 무수한 상상의 이미지들을 간직하세요. 유년기 거대한 두 축의 고독이 서로를 지탱하고 보호하고 의지할 수 있었던 강인함을 기억하세요. 어쩌면 젊은 작가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그 앞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해야 하는 부담감 속에 분명할 수 없는 유년과 같은 소재는 소심해 보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유년은 우리 인생의 첫 깊은 고독이고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해서 행하는 첫 내면의 작업입니다. 그 무엇도 될 수 없기에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상상의 시절이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유년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지요. 어떠한 상실과 극복을 통해 우리의 영혼과 함께 자라나니까요. 누군가에게는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그림이 되어 살아있고, 그 시와 소설과 그림이 우리에게 다시 새로운 생명을 줍니다. 저는 작가님이 그 복잡하게 얽힌 자신 만의 유년과 함께 제 2의 성장을 하시길 바랍니다. 다른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유년을 스스로의 영웅담으로 써 나가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유일하게 작가님 만이 정태후의 그림과 함께 할 수 있는 순간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서로의 경계를 그어놓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랑으로 말입니다.

 


 


 

2025년 10월 30일

 

배은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