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ng, Minhee

양민희 (b.1984)

국립제주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미술학부 서양화 전공 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2024 제6회 초대전 ‘열시 일분 (10:01)’ (갤러리41, 서울)

2023 제5회 초대전 ‘그리고 그리다’ (문예회관 제1전시실, 제주)

2022 제4회 초대전 ‘홍연(紅聯)’ (프린트베이커리 센텀시티몰, 부산)

2022 제3회 개인전 ‘홍연(紅連)’ (델문도 뮤지엄, 제주)

2020 제2회 개인전 ‘달의 기억’ (예술공간 파도, 제주)

2019 제1회 개인전 ‘연월(戀月)’ (문예회관 제3전시실, 제주)

 

단체전

2023 ‘낭만시대’ (컨벤시아갤러리, 인천송도)

2023 융(融), 섬의 연대기 (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 제주)

2023 교환전 (아트스페이스폴라포, 서울)

2023 Breeze in Jeju (앙데팡당, 제주)

2023 시  시  시 : 세 개의 의미, 하나의 울림 (이중섭 미술관 기획전시실, 제주)

2023 LASP with The SHILLA (신라면세점, 제주)

2023 N번째 변곡점 (갤러리 소공헌, 서울)
2023 064 JEJU, 당신이 여기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AMC갤러리, 서울)

2022 BTBA(Born To Be Art) (갤러리 몬도베르, 서울)

2022 EMPIRICAL LANDSCAPE (제주 드림타워 갤러리라운지, 제주)

2022 BTBA(Born To Be Art) (갤러리 소공헌, 서울)

2022 The Beginning (프린트베이커리 더현대서울, 서울)

2021 시간과 공간의 기억 (갤러리 레미콘, 제주)

2021 시대의 자화상 (델문도 뮤지엄, 제주)

2021 아트페스타 In 제주 ‘산지열전’ (산지천갤러리, 제주)

2021 제주, 창원 청년작가 교류전 ‘Over Come’ (창원대학교 박물관 조현욱 아트홀, 창원)

2021 샛보롬 미술시장 (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 제주도립미술관, 제주)

2021 MZ Art, New open (갤러리 ED, 제주)

2020 나를 찾아줘 -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세탕라움, 제주 / 델문도 뮤지엄, 제주)

2020 제주의 물 (제주대학교 박물관 기획전시실, 제주)

2020 일상에 예술을 담다 (김만덕기념관, 제주)

2020 아트제주스페이스 개관전 ‘섬의 유토피아(Utopia’s Utopia)’ (아트제주스페이스, 제주)

2020 ‘아트바이러스(Art Virus)’ (경민현대미술관, 경기 / 이월드 83타워 전시장, 대구)

2019 우리집에 그림하나 (김만덕기념관, 제주)

2019 ‘마니또’ 展 (예술공간 파도, 제주)

2019 서귀포시 교육발전기금마련전 ‘카르페디엠:오늘을즐겨라’ (기당미술관, 제주)

2019 ‘Blah!Blah’ 일상의 소리 (메종글래드호텔, 제주)

2019 기해년 신년기획전 ‘도새기 해가 떴습니다’ (이중섭미술관 기획전시실, 제주)

2018 혼디사는세상 (김만덕 기념관, 제주)

2018 제24회 제주미술제 (문예회관, 제주)

2018 쪼끌락 미술시장 서귀포 사랑 (기당미술관, 제주)

2017 '그대 있어 행복한 세상' (기당미술관, 제주)


아트페어

2023 ARTFORMOSA (에슬라이트 호텔, 대만)

2022 서울아트쇼 (삼성동 코엑스 A Hall, 서울)

2022 아트:광주:22 (김대중컨벤션센터, 광주)

2022 뱅크아트페어 (인터컨티넨탈 코엑스, 서울)

2021 아트제주 (메종글래드 제주호텔, 제주)

2021 국제호텔아트페어 (인터불고호텔, 대구)

2020 아시아프(ASYAF)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2019 아트제주 (메종글래드호텔, 제주)

2018 아트제주 ‘제주작가 특별전’ (메종글래드 호텔, 제주)


수상

2023 제29회 제주우수청년작가상 (제주문화예술진흥원, 제주)


방송

2024.03.04. KBS1 네크워크 공동기획 문화스케치 ‘달, 마음을 비추다. 화가 양민희’

 

전시기획

2022 ‘인류세 시대, 평화의 이름으로’ (제주국제평화센터 기획전시실, 제주)

 

작품소장

제주드림타워복합리조트, 제주경찰청, ㈜아트제주, 델문도 뮤지엄, 텔레스코프 제주, 브로딕 제주, 갤러리 레미콘, 한국화랑(한국갤러리) 외 개인소장

 

Artist Statement

지친 삶을 살아가다 잠시 여유를 갖게 돼 올려다본 하늘에 그리운 이를 떠올리게 하는 달이 떠 있었다. 달의 둥근 외형은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고 은은한 달빛은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했으며 나와 내가 속한 세상에 아직 그 사람의 흔적 또한 남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우리에게는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만나고 싶어도 오지 않는, 그래서 같은 공간에 존재했었지만 그리움으로만 다가서야 하는 가슴에 뜬 달과 같은 사람 말이다.

 

<연월(戀月)>에 등장하는 섬은 풍화와 침식에 의해 깎여 오랜 시간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존재로서 나 자신의 심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소재로 표현하였다. 섬의 마띠에르(matière)는 모델링 페이스트(modeling paste)라는 재료를 통해 쌓아 올리고, 때로는 긁어내고 깎는 표현방식으로써 상처받은 나 자신의 마음이었고 이러한 행위는 내 치유의 표현이 되었다.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바다는 내가 속해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그리움의 대상인 달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잔잔한 바다를 주로 작업을 하지만, 거친 파도를 표현함으로써 내가 속한 세상이 언제나 평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2021년부터 시작한 <홍월(紅月)>을 비롯한 붉은색의 시리즈들은 그리움을 이야기하던 전 작품보다 조금 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집중하기로 한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죽음을 늘 입에 달고 살던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우울했던 삶을 지나 시시각각 변하는 여러 감정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 감정을 작품의 주조색으로 나타냄으로써 색에 상징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홍월>에서 붉은색은 강한 생명력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삶에 대한 강인한 욕구를 드러내고 원초적인 의미를 살려 태초의 제주섬의 탄생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붉은 용암이 타오르며 모든 것을 녹이고 불태우지만 새롭게 탄생하도록 하여 생명력이 움트는 것을 색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이 갖는 삶에 대한 욕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표현방식에서 <홍월>은 <연월>과 동일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연월>은 풍경의 전체적인 표현이지만 <홍월>은 풍경의 일부인 대지를 집중적으로 확대하여 표현하였다. 이는 대지가 인간의 생명 존재를 상징하는 것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써,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전통적 개념에서의 생명과 회귀, 또는 윤회에 관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품 <몽중(夢中)>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을 그린 작품으로 지형(地形)을 주로 그린 <연월> 시리즈와 다르게 바다를 중심으로 표현하였다. 작품에서 바다는 자아를 둘러싼 사회를 형상화한 것으로 인간관계를 비롯한 모든 사회적 의미를 포함한다.

Rivew

무의식의 달, 그리고 그 경계 지대에서

전은자(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

 

인간의 기억은 살아가면서 인상으로 남겨진 것들을 의식 속에 저장했다가 다시 생각해내는 기능을 갖는다. 그러므로 과거에 있었던 순간순간의 작은 인식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의 풍경으로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어떤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고 어떤 기억은 생생하게 남는다. 또 결코 잊을 수 없는 어떤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어 심리적 불안감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깨어있는 한 계속해서 생각을 한다.

 

우리 인간 모두는 시간 여행자이다.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일생 동안 지나온 시간, 그리고 나이를 먹을 때까지 겪어야 했던 지난날의 회상은 시간이 남겨놓은 흔적으로서 개인의 인생행로에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누구는 예술가로, 누구는 회사원으로, 또 누구는 다른 직업의 이름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수많은 인생길 중에서 화가의 길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사회발전 정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예술을 직업으로 선택하기가 여간 망설여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의 삶은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생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라도 더욱 전업 작가로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지역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물질적인 상황, 정신적 관계들로 이루어진 수많은 파도의 물굽이를 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술가가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회는 경제적인 수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높은 지성적 수준이 함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예술가의 길을 간다는 것이 대단한 용기가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힘든 길을 가는 만큼 그들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선망(羨望)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예술가는 현실에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므로 그 누구보다 더욱 뚜렷하게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념을 넘어서는 예술 표현의 자유가 있는 사회일수록 사람들의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건강한 사회일수록 복지가 늘어나고 예술 표현의 자유가 확장된다.

 

 

달의 멜로디

 

양민희 작가가 지친 삶에서 만나는 상징적인 대상은 달(月)이다. 달은 수억 수천 년 동안 그렇게 그 자리에서 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작가에게 달은 그리움의 상징이다. 달은 그리운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작가는 자신의 마음을 달에 투사시켜 그것으로부터 정신적인 위안을 받는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부모로부터의 결핍, 관계에서의 위축과 소외로부터 오는 스스로의 고독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만들어낸다. 현실에서 결핍된 욕망들은 새로운 꿈을 만들어내는데 양민희 작가에게는 그 상징이 달로 나타난 것이다. 작가는 달을 차례로 연월(戀月), 홍월(紅月)이라 이름하고, 다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중(夢中) 상태로 이행한다.

 

양민희 작가에게 달은 인생살이의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 그리움의 상징적 대상이 된 연월, 삶의 존재 이유를 다시 찾아 나선 붉은 색깔로서의 홍월, 사회적 관계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의 몽중이 그것을 대변한다. 이 세 가지 작품 시리즈는 모두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의 여과된 삶의 경험으로서의 정신적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리트머스를 통과한 마음의 풍경인 셈이다. 이 마음의 풍경은 아픈 만큼 성숙한 한 여성 화가의 인생 경험의 기록과 다름없다.

 

 

연월(戀月)

 

양민희 작가가 스스로 밝혔듯이 작품 연월에서 달 아래 섬이 있는데 달을 쳐다보는 듯한 섬은 의인화된 작가 자신으로, 오랜 시간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존재가 된다. 달 또한 작가의 그리움의 대상이자 그리워하는 마음의 크기이기도 하다. 달은 하루하루 크기가 변하여 형태를 달리하는데 이런 변화는 작가의 마음 상태의 변화와도 같다. 달이 그리움의 상징으로 변화할 때 달 아래 있는 섬은 온갖 인간 세상에서 겪은 관계들의 상황으로 변화한다. 그것은 삶의 모습이며, 그 모습은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으로 나타난다.

 

사람마다 그리운 사람이 있다. 작가의 그리움은 달빛처럼 해안으로 향한다.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 고요한 명상의 바다처럼 오로지 달의 존재에 의지하여 차분하게 비치는 묵시의 바다는 작가 자신의 마음 상태와 같다. 바다는 안정된 마음처럼 때로는 평원과 같고 때로는 감정 자체가 동요하는 물결이 되어 거친 파도를 일으킨다. 사람도 바다처럼 슬프고 기쁘고 우울하고, 감정에 따라 마음의 격랑을 겪는다. 그러나 달은 늘 지상을 내려다보며 그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한다.

 

연월은 달이 중심이 되어 지상(작가)을 관조(觀照)하는 미학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관조란 아름다움을 통찰하는 힘이다. 작가가 오로지 내면의 힘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체득하는 것이 바로 양민희 작가의 관조의 미학인 것이다. 작가 자신이 스스로 다친 마음을 치유하고자 하는 환영을 만든 것이다. 연월의 풍경은 작가의 내면이 되고, 상징적인 달은 작가의 마음에 다시 떠올라 하나의 방어기제로써 사랑에 대한 결핍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색채는 작가의 심리상태를 나타낸다. 색채는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 홍월에 이르면 갈색 톤이었던 연월이 붉은색으로 변하고, 관조하는 장소도 바다보다는 땅(지질)으로 옮겨진다.


 

홍월(紅月)

 

붉은색은 생기를 느끼게 한다. 강한 색채는 섬의 역사를 말하는 지질의 색상이다. 더욱 거칠게 느껴지는 마띠에르는 섬의 속성을 말한다. 양민희 작가의 관조가 마음 안에서 마음 밖으로 이동한 듯 보인다. 홍월은 도상적으로 더욱 비구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연월이 전체적인 풍경이라면, 홍월은 그 풍경의 부분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공간은 점점 분할되고 색채의 콘트라스트는 강렬하다. 마띠에르는 거칠어져서 투박함마저 느끼게 한다. 붉은색으로 막혀서 거의 하얗게 고여 있는 바다가 화면을 분할 하는데 더욱 추상성이 강조된다. 붉은색과 흰색의 대비는 마음의 안과 밖의 상태처럼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인다.

 

생기(生氣)는 활력과 같다. 우리 인간에게 생기는 살아가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말하는 데 바로 생명의 힘인 것이다. 대지의 활력은 곧 마음의 활력이다. 붉은색의 홍월에서는 적극적으로 희망의 상태를 되찾는 듯한 느낌과 작가의 정신력에 대한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제 달은 상징으로부터 멀어졌다. 향하는 시선이 달(그리움)에게서 대지(희망)로 바뀐 것이다. 마침내 하늘의 달이 땅의 활력, 즉 현재의 생으로 이동한 것이다.

 

땅은 실질적으로 살아가는 세계이다. 촉감으로 알 수 있고, 발을 디딤으로써 존재의 현실적 에너지와 맞닿는다. 생각으로 세상을 보기보다는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현실 세계와 마주한 것이다. 모든 것이 현실의 실존에 의해서 결정되고 경험되기 때문에 직접적인 오감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이제 용암 대지는 존재의 중심에 있다. 그 대지는 양민희 작가의 정신 세계인 것이다. 문학적인 서사가 사라지고 미술 고유의 성격이 강조된다. 오로지 형태와 색채, 화면분할과 구성만으로 시각력을 회복하고 있다. 군더더기가 없이 주저하고 망설일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사라진 것이다. 미술의 힘은 명확한 시각적 전달력에 있다. 홍월 시리즈는 이전의 재현으로부터 벗어나 시각적 전달력이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몽중(夢中)

 

몽중의 주체는 파도이고 장소는 바로 해안이다. 해안은 바다와 용암 지대가 만나는 경계에 있다. 경계란 문지방과 같다. 문지방을 중심으로 안과 밖, 여기에서 저기, 현실에서 비현실, 과거와 현실, 혹은 현실과 미래, 삶과 죽음의 영역으로 나뉘기도 한다. 해안을 중심으로 바다와 땅의 경계가 되는 것처럼 경계는 또 다른 경계의 시작이 된다. 양민희 작가의 경계에서는 큰 변화가 있다. 물(바다)과 땅(여)이 만나는 지점으로서 이곳에서는 파도가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암석이 부서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응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계는 변화의 시작이고 다른 상태로의 돌입을 암시한다.

 

몽중은 꿈의 진행을 말한다. 꿈도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꿈은 무의식의 파편들이기 때문에 현실에 기반하여 꿈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몽중은 현실의 부재가 아니라 현실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양에서 잔잔한 바다가 섬, 즉 용암을 만나면서 몽중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세계란 이상세계가 아닌 현실의 세계이다. 욕망을 모두 제거할 수가 없는 현실 세계에서 작가는 그것을 예술적 창의성으로 소진하고 있다.

 

부서지는 파도는 ‘깨부순다’, ‘깨뜨린다’, ‘잔잔함을 일깨운다’는 의미를 갖는다. 일종의 행동과도 같은 적극적인 시도인 것이다. 몽중은 바로 이러한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 파도가 부서지면 어떤 효과가 발생하고, 어떤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는지, ‘던짐’, ‘던져 봄’을 통해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실험해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몽중’은 무언가 시도하지 않았던 현실을 뚫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나선 느낌이다.

 

인간은 항상 새로운 꿈을 꾼다. 꿈의 실현은 현실에 기반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예언처럼 그것을 얻기를 바란다. 몽중은 바닷물이 뭉쳐서 파도로써 부서져야만 다시 바닷물로 흡수되듯이 나와 우리는 하나의 인간 공동체 안에서 개인으로서 존재함을 나타낸다. 몽중은 현실과 비현실을 사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작가의 사유하고 할 수 있다.

 

 

회화는 그린다는 것을 말하는 데 양민희 작가에게 처음으로 ‘소조 회화’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소조 회화란 소조(塑造), 즉 붙여서 만들어가는 조각 기법을 말하지만 양민희 작가의 제작 기법이 실제로 조각처럼 붙이고 깎아서 만드는 조각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소조라고 하였다. 거기에 다시 회화의 기법인 구도를 잡고 색을 칠하고 마무리함으로써 소조+회화의 혼성적인 공조(共助)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예술은 창작이라는 이름의 무한한 길을 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실험정신이라는 행위가 따르게 된다. 예술은 새로운 것을 여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매력이 거기에 있다. 그러나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 것은 형식만큼이나 같은 비중으로 중요한 것이 정신의 사유 활동이다. 사유를 통해서 작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것이 그들에게 유용하고 즐거운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양민희 작가의 작품에서 보여준 상징으로서의 달은 그녀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난 작법의 일환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크건 작건 간에 자신만의 말못하는 트라우마가 있다. 그것이 은유로든 상징으로든 잠재되어 있다면 그것은 표현이라는 매개적 행위에 의해서만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미술이 치유의 힘을 갖게 되는 것은 표현 행위 속에서 묻어나오는 무의식의 그림자를 드러냄으로써 쾌유한 상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양민희 작가가 소조 회화를 처음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도발성이 있지만 여전히 그 기법이 갖고 있는 물리적인 작용의 난이도 해결은 앞으로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