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Soo-man

문수만 (b.1962)

명지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한남대학교 대학원 조형미술학과 석사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전공


개인전

2026.10.01~10.06 Connecting the Dots (GALLERY北野坂, 고베/일본): 예정

2025.06.11~06.30 Connecting the Dots : 문수만초대전 (갤러리 자인제노, 서울/한국):예정
2025.02.27~03.04 Connecting the Dots (GALLERY北野坂, 고베/일본):예정 

2024.10.01~10.14 Connecting the Dots : 문수만초대전 (떼아트갤러리, 서울/한국) 예정 

2024.04.08~04.12 Connecting the Dots : 문수만전 (홍익대학교 홍문관 R104, 서울/한국):Ⓑ

2024.02.15~02.20 Connecting the Dots (GALLERY北野坂, 고베/일본)

2024.03.09~04.08 문수만작품전 : 소장전 (정구찬갤러리, 경기도 용인시/한국)

2023.12.14~24.01,14 Connecting the Dots : 문수만초대 창립전 (마린갤러리, 부산/한국)

2023.12.01~24.03.01 Connecting the Dots : 문수만초대전 (오포미술관, 경기도 광주시/한국)

2023.11.01~11.14 Connecting the Dots : 문수만초대전 (떼아트갤러리, 서울/한국)

2023.10.18~11.18 Connecting the Dots : 문수만초대전 (앙사나 레지던스 갤러리, 서울/한국)

2023.08.23~09.21 Connecting the Dots : 문수만초대전 (라움아트센터, 서울/한국)

2023.05.03~05.31 문수만초대전 CONNETING THE DOTS (MHK 갤러리, 서울/한국)

2021.09.10~10.14 The Immersion : 문수만초대전 (GS Tower The Street Gallery, 서울/한국)

2021.11.14~11.18 아트청주 부스초대전 (청주예술의전당, 청주/한국)Ⓑ
2021.08.05~08.08 Korea Art Fair (COEX Hall A-52, 서울, 한국)Ⓑ

2020.10.01~10.15 문수만 드로잉전 (연정갤러리, 인천/한국)

2020.04.28~05.24 Free Will (Cenacolo Gallery, 인천/한국)

2020.02.25~03.01 生命의循環 (GALLERY北野坂, 고베/일본)

2019.02.25~03.03 胡蝶之夢 (GALLERY北野坂, 고베/일본)

2018.12.12~12.17 永遠回歸3-영원회귀3 (인사아트센터, 서울)

2018.08.03~08.31 永遠回歸2-Eternal Recur (금보성아트센터, 서울)

2018.06.28~07.04 永遠回歸-Ewig Wiederkehren (운보미술관, 청주)

2018.05.22~05.27 時間の門 (GALLERY北野坂, 고베/일본)

2018.01.20~02.02 Gate of Time (갤러리지오, 인천)

2017.04.06~04.19 Fractal (모리스갤러리, 대전)

2016.10.11~10.16 陶工の翼 (GALLERY北野坂, 고베/일본)

2016.05.30~06.05 Finding Flow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 대구)

2015.02.26~03.11 도공의 날개 (현대백화점 갤러리H, 청주)

2014.05.22~06.04 Potter’s Wing (모리스갤러리, 대전)

2011.04.06~04.12 The Butterfly (가나아트스페이스, 서울)

2010.04.07~04.13 The Butterfly (갤러리이즈, 서울)

2009.09.05~09.25 Le Papillon (모리스갤러리, 대전)

2009.04.08~04.14 박제된 자유 (가나인사아트센터, 서울)

2008.10.31~11.13 Moons Marbling (갤러리소호, 대전)

2006.09.01~09.07 Iris Carnival (타임월드갤러리, 대전)

2005.04.01~04.07 문수만전 (타임월드갤러리, 대전)


부스 초대 개인전

2018.06.13~06.18 대한민국 현대미술 아트페어_개인부스초대전 (문화예술회관, 인천/한국)

2016.09.07~09.14 'Souffle du millenaire'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Église Saint-Pierre deTouques, Tourville/France)

2016.01.08~01.10 KÜNSTLERMESSE DRESDEN_개인부스초대전 (드레스덴 박람회장, 드레스덴/독일)

2015.12.28~2016.01.03 KOREALIVE-FINE ART-개인부스초대전 (D'ART SCY Gallery, Honfleur/France)

2014.09.12~09.28 Korea-Live_개인부스초대전 (Zeitenströmung, Dresden/Germany)

2013.10.10~10.14 국제아트쇼-대전 (대전무역전시관, 대전/한국)

2013.01.14~03.03 재밌는미술관전-개인부스초대전 (현대예술관, 울산/한국)

2004.09.09~09.14 부스개인전 (코엑스컨벤션홀, 서울/한국)


주요 단체전

2023.12 Petits lutins : 전병현, 백진, 문수만 (떼아트갤러리, 서울/한국)

2023.10 FOCUS LONDON 2023 (SAATCHI GALLERY, 런던/영국)

2023.08 RAUM ART FESTIVAL 2023 (라움아트센터, 서울/한국)

2023.04 화랑미술제(COEX Hall B, B-59 Zeinxeno, 서울/한국)

2022.09 FOCUS PARIS 2022 (Carrousel du LOUVRE, 파리/프랑스)

2022.02 Extra - Maximum - Minimum (갤러리 MHK, 서울/한국)

2022.02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아무것도  하지않았다 (갤러리 자인제노, 서울/한국)

2021.12 コンクリート・二・モル V (GALLERY北野坂, 고베/일본)

2021.11 ASIA HOTEL ART FAIR (센트럴뮤지엄, 서울/한국)

2021.11 문자의 기억 (문화제조창, 청주/한국)

2021.10 씨올회 정기전 (가나인사아트센터 2층, 서울/한국)

2021.10 '3인 초대전' (Gallery SOSA, 부천/한국)

2021.10 아티스트12:동강 (507미술관, 정선/한국)

2021.08 FOCUS LONDON 2021 (Saatchi Gallery, 런던/영국)

2021.07 FOCUS LONDON 2021 (Saatchi Gallery, FOLD Gallery, Fitzrovia Gallery, 런던/영국)

2021.06 FOCUS PARIS 2021 (Atelier Richelieu, 파리/프랑스)

2021.04 경기미술 컬렉션 특별전 (경기천년길 갤러리, 안산/한국)

2020.10 제18회 씨올미술협회전 (가나인사아트센터 3F, 서울/한국)

2020.10 로그아트[재미지고]아트페어 (청주문화제조창 3층, 청주/한국)

2020.08 WALKING IN THE ERA (ART MORA GALLERY, New Jersey /USA)

2020.01 제24회 일불현대국제미술전 (국립신미술관, 도쿄/일본)

2019.08 共通分母·兼容-중한당대예술교류전 (달관미술관, 웨양/중국)

2019.07 Korea Live 2019 ROUEN (Halle Aux Toiles, 루앙/프랑스)

2019.05 移动的经验-중한당대예술교류전 (紫泥堂艺术小镇五号仓美术馆, 광저우/중국)

2019.02 コンクリート・二・モル IV (GALLERY北野坂, 고베/일본)

2019.01 第23回 日仏現代国際美術展 (국립신미술관, 동경/일본)

2018.11 한중교류전 “共通分母-交感”展 (주중한국문화원, 베이징/중국)

2018.11 세계한민족미술대축제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서울)

2018.10 ICA 한일현대미술전 (충무아트센터갤러리, 서울)

2018.08 KLAF-부스초대전 (Halle Aux Toiles, 루앙/프랑스)

2018.08 원더랜드(Wonderland)-갤러리GO (갤러리지오, 인천)

2018.06 프라트 3인전 (운보미술관, 청주)

2018.06 第四届“共通分母”中韩当代艺术交流展 (成都黎日画廊中心, 청뚜/중국)

2018.05 Pentas+ Exhibition (행간과여백갤러리, 파주)

2018.04 Everything under the sun(갤러리토스트, 서울)

2017.12 <외방화사>11인 초대전 (올미아트스페이스, 서울)

2017.12 서울국제미술제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2017.11 대전국제아트쇼 (대전무역전시관 아트허브부스, 대전)

2017.11 ROTC 작가초대전 (나락실갤러리, 서울)

2017.10 한일현대미술동행전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2017.09 Art Group TER 정기전 & AIAA 교류전 (아라아트센터, 서울)

2017.07 제2회 프라트3인전 (운보미술관, 청주)

2017.05 <MILKY WAY>전 (갤러리다온, 서울)

2016.10 한중예술가교류전 (길림예술대학미술관, 장춘/중국)

2016.10 일한현대미술동행전 (효고현립아트갤러리, 고베/일본)

2016.03 Rialism 3Artists (DGB갤러리, 대구)

2015.10 한일현대미술동행전 (서울시립경희궁미술관, 서울)

2015.10 KIAF (코엑스 166부스, 서울)

2015.07 PRATH 3인전 (갤러리 미술세계, 서울)

2015.04 아트그룹터 정기전(가나인사아트센터, 서울)

2015.03 화랑미술제 (코엑스 64부스, 서울)

2014.10 한일현대미술동행전 (하리다노모리갤러리, 고베/일본)

2014.09 AIAA한일교류전 (아키다현립미술관, 아키다/일본)

2014.06 PENTAS+TANTAN전 (삼탄아트마인, 정선)

2012.02 Global & Local in Cuba (EL Trasgu, 하바나/쿠바)


작품소장

대한민국 국회의장실, 아랍에미리트 한국대사관, 독일 STULZ가문,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운보미술관, 서울대학교병원, KAIST(나노기술원), 충남대학교, 수성아트피아, 울산현대예술관, 일본 GALLERY北野坂, GOOGLE미국본사(VP)


수상

2020 살롱·블랑미술협회 회장상 (제24회 일불현대국제미술전)

2014 화랑상-일본 GALLERY北野坂 (제10회 일한현대미술동행전)

1994 특허청장표창-우수발명가 (발명진흥대회)

1993 상공자원부장관상-Good Design (우수상품디자인 선정제)


레지던시

2020 장흥 가나아뜰리에 8기

2016~2020 하이원이엔지(경기도 화성시) 창작스튜디오


현재

한국미술협회, 파주아트벙커, 씨올회, 공통분모-한중교류전, ICA-국제현대미술협회

Artist Statement

나의 여러 시리즈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몰입을 통해 자유롭고 싶은 의지의 표출’이다. 몰입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캔버스를 지배하게 만든다. 젊은 시절 머릿속 가득한 공학적 수치들로 지쳐가던 내게 마지막으로 손을 내민 것은 어릴 적 그토록 소원했던 화가의 꿈이었다. 그 꿈은 이제 현실로 이루어졌다. 예전의 치밀한 공학적 기질은 예술에 대한 끈질긴 집중으로 바뀌었고, 그 몰입의 결과 오롯이 작품이 되었다.

화면은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부품처럼 가득 차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체 보다 여백의 공간을 더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질서 속에 반드시 자유가 존재하며, 그 속에서도 여전히 규칙은 존재함을 의미한다. 질서와 규칙, 공간과 자유에 대한 표현은 화가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들이 반영된 것이다.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항상 변화에 능동적인 작가로 남고 싶다. 초창기 작품과 지금의 작품을 비교해보면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짐작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간 과정을 들여다보면 마치 낱말 꼬리물기와 같이 변화돼 왔음을 알 수 있다. 작품들의 저변부에 깔려 있는 인간들의 얽혀진 관계와 우리의 역사가 녹아 든 네러티브는 작품의 모태가 되어 변화무쌍한 외형적 탈바꿈에도 바뀌지 않는 인간의 본성과 맥락을 같이한다.

문수만 2020.11.02


The theme that penetrates many series of my works is the ‘expression of my will to be free through immersion’. The immersion enables me to dominate the canvas with infinite imagination. When I was exhausted by engineering figures filling my whole head in my early days, something offered its hand to me in the last place, which was my old dream to become a painter. The dream has come true now. The meticulous engineering disposition in the past has been changed into persistent concentration on arts, and the results of the immersion have been fully represented as works.

The canvas looks like filled with machine parts interlocked with each other. If you take a close look, however, you can see that the marginal space is regarded as more important than entities. In other words, it means that the freedom is always in the order, and it also includes rules inside. The representation of order and rules, and space and freedom is reflecting my thoughts about life as a painter.

I want to be remembered as an artist who is always proactive for changes without settling down in the same spot. If my works in the early stage are compared with the current works, it might be difficult to guess that they have been drawn by the same artist. However, the middle process shows that they have been changed just like a word association game. The narrative including humans’ entangled relations and our history in the base part of those works, becomes the matrix of works, so it is in the same context with humans’ nature that does not change despite the ever-changing external transformation.

Moon, Soo-Man 2020.11.02.


review

1. 

상징적 우주의 메아리

이선영(미술평론가)

작가가 영감을 받은 도자기나 담배함 같은 옛 물건들보다는 크지만, 세계를 담기에는 턱없이 작은 원형의 캔버스에는 세계를 압축하여 재현한 상징적 우주가 있다. 에밀레 종에서 유래한 소리나 울림을 표현한 작품이 포함되어 있으니 압축 재생이라는 말도 어울리리라. 원형 구도를 가지는 그의 작업은 많은 것들을 하나로 융합시키지만, 세목들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세목들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여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략은 유한 속에 무한을 담는 문수만의 방식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Simulacre’와 ‘Fractal’ 시리즈가 주를 이루고, ‘Cloud’, ‘Coherence’, ‘Bronze Mirror’ ‘Gate of Time’ 등이 나왔다. 큰 것은 지름이 2 미터가 넘는 원형 캔버스들은 원 속에 또 다른 원들을 배치하면서 하나의 우주 안에 있는 또 다른 우주들을 보여준다. 마술의 원(magic circle)처럼 그어진 하나의 원형 안에 다시 접어 넣은 또 다른 소우주들은 서로 공명하면서 의미를 증폭시킨다.


그가 주로 감흥을 얻는 자연과 문화재급의 유물은 정교함이 특징적이지만, 또 하나의 원천은 최초의 전공인 엔지니어적 정밀함이다. 이전 시대에 장인은 예술가이자 기술자였고, 개념화가 많이 진전된 현대미술에서도 제작과정은 작품의 독특함을 가능하게 하는 주된 요소이다. 서울 근교의 공장 한 켠에 자리한 그의 새로운 작업실은 예술과 자연, 그리고 기예를 나누는 인공적 경계를 무화시키는 작품의 산실로 적당해 보인다. 문수만의 작품은 옛 유물을 포함한 자연 등, 세계를 모사한 것이기에 ‘시뮬라크르’이며, 모사의 방식에 있어서 대우주와 소우주를 일치시킨다는 점에서 ‘프랙털’과 연관된다. ‘거울’이라는 소재는 어떤 법칙 또는 규칙이 무한 반사되는 메커니즘과 관련된다. 소리의 경우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멀리까지 퍼져 나간다. ‘시간의 문’을 통과하고 있는 작가에게 이전작품에 명확했던 선적 경계는 흐려지는 경향도 보인다. 그것들은 ‘구름’처럼 가장자리가 모호하다.


‘원본 없는 복제’(들뢰즈)로 정의되는 용어 ‘시뮬라크르’가 그의 주요 시리즈의 제목이 된 것은 백자와 청자, 분청사기 등 그가 선호하는 옛 유물의 색감과 질감, 그리고 무늬를 참조한 것에서 왔다. 미술사가들은 시작과 끝이 선처럼 이어지는 역사적 규범을 적용하여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도공들을 추적하고 싶겠지만, 극소수의 훼손되지 않은 유물과 파편들은 그것들이 대부분 이름 없는 도공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다만 시대의 양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는데, 그 또한 개인의 독창적인 산물은 아니다. 작가는 배치를 통해서 이전의 것들을 변주한다. 이미 존재하는 형태와 상징은 배치를 통해 변화한다. 새로운 배치로부터 재현이 아닌 생성이 이루어진다. 대부분 입체 위에 새겨졌을 무늬가 원형캔버스에 옮겨지면서 생겨난 빈공간에 작가가 개입할 여지는 많아진다. 그 공간은 더욱 넓어져서 참조대상으로부터의 자율성을 구가하게 될 것이다.


둥그스름한 캔버스는 그의 작업에 내재 된 ‘영원회귀(永遠回歸)’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품는다. 작은 원들이 큰 원안에 빼곡이 자리한 작품 [Simulacre(241804)]는 회귀의 과정이 무한함을 알려준다. 자연 또한 무한히 회귀한다. 죽은 듯하다가도 이듬해에 다시 피는 꽃, 다시 생겨나는 나비 같은 동식물은 진화라는 대역사에 참여하는 가운데, 매해 다시 발생하는 개체들로, 문수만의 작품에서 원과 원 사이, 원의 안팎에 자리한다. 물론 용이나 봉황같은 가상의 생물체 또한 포함된다. 이 가상생물체들은 무(無)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기존 동물들의 부분에서 따온 복합체들이다. 가령 문수만의 작품에서 패턴으로 나오는 돼지 코는 용의 코이기도 하다. 이전 시대의 자연 및 자연의 과정을 담은 물건들에는 자연의 이치와 닿고자 한 불교같은 종교(또는 정신체계)의 도상으로 남아있으며, 관객에 따라서는 이러한 기시감을 좋게 또는 나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기존의 상징적 의미가 너무 두드러지지 않게 처리한다.


그의 작품에서 상징은 하나의 의미로 환원되지 않고 다가(多價)성을 가진다. 도자기 풍의 외관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동양적인 것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근대이전의 서구의 세계관인 ‘존재의 대연쇄’을 떠올리는 층층의 구조 또한 전능한 존재로부터 비롯된 신성한 질서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작품 [Simulacre(231804)]에서 나타나듯, 그의 최근 작품에서 명확한 경계는 사라져간다. 구름 모양의 언덕 위에 버드나무가 자라고 그 사이사이로 새들이 날아다니는 미지의 세계 가운데에는 이 모든 지상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을 태양같은 존재가 자리한다. 방사되는 빛은 식물의 잎처럼 보인다. 지상에서 최초로 빛을 접수하는 것은 엽록소가 있는 부위이다. 그것이 단계별 과정을 거치면서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를 가능하게 하고 이러한 격세유전적인 과정을 통해 관객 앞에 걸려있는 예술작품도 가능해진다. 작품 [Simulacre(201804)]와 [Simulacre(181804)]에서 경계를 흐리게 하는 것은 마치 짙은 안개나 구름이 낀 듯한 우주이다.


보통 부정확한 것이 정확하게 되는데, 그의 작품은 거꾸로다. 문수만의 작품에서는 더 많이 작업한 것이 더 부정확하다. 80% 할 때까지는 경계가 완벽하다고 한다. 그러나 물감을 뿌리거나 사포로 갈거나 하면서 정확한 형태를 흐릿하게 한다. 이전의 청자 작업이 완벽주의에 집착한 스타일이라면, 요즘 작업은 좀 더 열어두고자 한다. 열린 체계로의 진화이다. 갈아내면서 작가가 상감기법으로 심어놓은 형태를 다시 찾아 나간다. 빈티지 스타일로 뿌옇게 보이는 부분들은 사실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덮여있는 것이다. 사각형으로 된 유일한 작품 [Simulacre(091803)]를 제외하면 ‘시뮬라크르’ 시리즈의 기본구도는 원이다. 청자나 백자를 닮은 색감 때문에 둥근 형태는 천구(天球)를 떠올린다. 문수만의 작품에는 이러한 구들이 크기와 위치를 달리하며 수많은 비눗방울처럼 자리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연적이기 보다는 필연적인 연쇄망을 이룬다. 선이 명확하든 아니든 대칭적인 구도가 대세이다.


아서 러브조이는 [존재의 대연쇄]에서 근대가 무신론을 통해서 텅 비워 놓은 공간 이전 단계를 복구한다. 그에 의하면 근대 이전 세계는 명백한, 이해하기 쉬운 단일한 구조를 가졌고, 명확한 형태일 뿐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물체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완벽한 형태라고 생각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별들을 그 표면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우주 구성단위인 천구이다. 플라톤 이래, 원은 자기충족적인 완전함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이러한 형이상학적 원리는 자아와 우주를 일치시켰다. 문수만의 작품이 세계와 나의 통일이기도 한 만다라 형상이 떠오르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프랙털’ 시리즈에서 질서정연하게 구축된 것들이 카오스로 되돌아가는 국면은 만다라가 지워질 때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티벳의 승려들은 색색의 모래를 바닥에 뿌려가며 만다라를 짓고 그것을 다시 허물곤 한다.


영원한 회귀가 가능하기 위해 이전 세계는 허물어져야 하는 것이다. 티벳 승려들의 모래 장난처럼 보이는 행위는 우주적 행위로 고양된다. 문수만 또한 정교한 상징적 우주를 구축하고 해체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백이다. 공백은 내포적 다양성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지워진(또는 덮인) 부분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일 것이다. 새나 나비가 날아다니는 그 공간이 하늘이라면, 요즘 작품에 드리워지고 있는 구름들은 체계보다는 과정을 강조한다. 구름은 그 안에 결정체를 비롯하여 여러 단계의 물질을 품고 있다. 문수만의 정교한 상징적 우주는 체계적이지만, 이 체계 또한 생멸하는 것이다. 여러 겹의 원으로 이루어진 공간 중간계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작품 [Cloud(011707)]는 바탕 면이 밝아서 그런지 형태들이 명확하게 보이지만, 나비들이 가득한 모습은 나비들만큼이나 나비들이 움직일 공간의 넉넉함을 말한다.


작품 [Cloud(071803)]에서 물고기들이 있는 공간 또한 그러하다. ‘예술은 점이 아니라 선’이라고 말하는 작가에게 고정된 점(定點)은 부풀어 올라 구름이 되었다. 구름이 몰려오는, 또는 구름 그 자체를 닮은 작품은 조화롭지만 움직임 없는 우주가 아니다. 구름 시리즈에서의 나비나 물고기는 구름과도 같은 순환 현상을 예시한다. 프랙털 시리즈에서는 어떤 형태도 고정될 수 없을 만큼의 강한 흐름이 느껴진다. 중심과 주변의 밀도와 색이 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푸른색 계열인 프랙털 시리즈는 일단 물결처럼 보이는데, 이 물결은 형태와 과정이 합쳐진 것이다. 여기에서의 물은 강처럼 흐르기 보다는 샘처럼 분출한다. 이러한 공간적 상상은 시간 또한 선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솟아오르는 것으로 상상하게 할 것이다. 그 모두는 ‘재현이 아닌 생성’(들뢰즈)을 위한 조건이다. 프랙털 시리즈에서 걸쭉한 질감은 분화구에서 분출되는 용암처럼도 보인다.


그는 이 형태에 대해 ‘마그마의 분출, 퍼지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마그마가 분출되면 중심이 비게 되고 다시 중심부로 빨려가는 움직임이 생겨나는 것에서 착안했다. 자연은 빈 곳을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에 밀도와 농도의 차이에 의한 움직임이 발생한다. 프랙털 시리즈는 대개 지름 1미터 내외로 물질과 에너지의 집약도가 매우 높다. 그것은 기존의 질서가 녹고,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단계를 말한다. 코스모스의 이전과 이후의 단계는 카오스인 것이다. 사고에 있어서 시간의 도입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 뿐 아니라 그 현실이 생멸하는 조건 또한 보게 한다. 둥글게 보이는 태양 또한 더 자세히 찍힌 사진을 보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문수만의 프랙털 시리즈는 사물의 변화를 야기할 에너지의 흐름을 가시화한다. 또한 움직임의 가상은 있지만 실제로 움직이지는 않는 프랙털 시리즈는 에너지가 굳은 것이 물질임을 알려준다.


그것은 우주부터 공장의 기계까지 모두 관통되는 법칙이다. 필립 볼은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임계질량에서 이어지는 사건들]에서 열을 ‘서로 충돌하고 있는 원자들의 무질서한 운동’(벤저민 톰프슨)이라고 정의하면서, 열의 흐름에 의해서 기체가 팽창(가열)하거나 수축(냉각)되어 피스톤을 순환시키는 카르노 순환장치가 발명되었다고 말한다. 필립 볼에 의하면 19세기 엔지니어들에게 더 나은 엔진을 만들기 위해 등장한 분야(열역학)가 이제는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가장 장엄하고 근본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문수만의 프랙털 시리즈는 열역학처럼 변화의 과정을 전면화한다. 열역학은 생물체부터 증기기관까지 종류와 차원을 달리하면서 관통된다. 프랙털 또한 규모를 달리하며 구조가 반복되는 현상이다. 필립 볼의 시적인 표현에 의하면, 프랙털은 ‘역사의 사건들이 얼어붙어서 만들어진 지도인 셈’이다.


작품 [Coherence(031707)]는 소리의 전달이라는 또 다른 에너지의 방식과 관련된다. 청동의 느낌이 나는 이 캔버스 작품은 ‘에밀레 종을 펼친 것’이다. 화면 가운데에 봉황이 자리하고,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무늬들이 방사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13세기에 만들어진 에밀레 종 소리의 비밀은 종의 단면이 틀려서 치면 두 가지 파장이 나오고 큰 파장과 작은 파장이 서로 간섭하여 맥놀이 현상을 만들어낸다고 알려져 있다. 그 울림 소리가 너무나도 신비하여 갖가지 추측도 나왔지만, 사람을 녹여서 만든 종이라는 전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악기에서 사람 소리를, 사람 소리에서 악기 소리를 들으려는 사람들의 추구는 계속되었다. 작품 제목인 ‘coherence’는 맥놀이와 관련되며, 작가의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인 오디오 기기 관련 특정 상표 이름이기도 하다. 소리가 나지는 않는 이 작품은 파동의 형상화를 보여준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괴델 에셔 바흐]에서, 음악을 ‘허공을 날아다니는 진동의 연속’과 ‘두뇌 속의 정서적 반응의 연속체’로 정의한다. 그러나 저자는 정서적 반응에 이를 수 있기 전에 일단 진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동에 대한 형상화는 음과 관련된 이 작품 뿐 아니라, 재귀순환적(recursion)인 문수만의 작품에 편재한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에 의하면 재귀순환적인 구조란 ‘그물구조로 둘러싸인 구조’를 말한다. 가령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이다. 원 속에 원, 그 안에 또 다른 원들이 중층적으로 배열 된 ‘프랙털’적인 문수만의 작품은 ‘순환적이 되어서 무한역행(infinite regress)으로 치달을 것’(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이다. 순환적인 자기복제가 끝없이 이루어지는 프랙털과 음이 전달되는 과정은 동형적이다. 재귀순환은 ‘동일한 사태가 상이 한 층위들에서 한꺼번에 출현하는데 근거’(더글러스 호프스태터)한다.


수학자와 미술가 음악가가 모두 등장하는 책 제목 [괴델 에셔 바흐]는 음악이나 미술에서 발견되는 재귀순환성이 원자에서도 발견된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핵 구성 물질은 양자와 중성자, 중성미자와 파이 중간자, 쿼크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방울 속의 방울 속의 수십억 개개의 방울들로부터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만들어진다. 가운데 꽃이 마치 태양처럼 자리하고, 중간계에 풀, 물고기, 새 등이 함께 있는 작품 [Gate of Time(041803)]은 색감 때문에 따스한 느낌을 준다. 그와 짝패를 이루는 작품 [Gate of Time(051803)]은 서늘한 느낌이다. 푸른색 선이 더 지워지면서 시공간의 저편으로 사라지려는 듯하다. 마거릿 버트하임은 [공간의 역사]에서 빅뱅의 순간에 물질뿐 아니라, 공간과 시간 역시 태어났음을 말한다. 이러한 공간개념은 우주론적 서사를 낳는다. [공간의 역사]에 의하면 빅뱅이 양자, 중성자, 전자와 같은 기본 소립자들을 생기게 했다면, 인체의 살과 뼈를 이루는 원소들, 즉 탄소, 질소, 산소 등은 바로 항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수만의 작품에서 공간은 물론 그 이후에 생겨난 생명도 모두 ‘시간의 문’을 통과한다. 동심원 형태의 거대한 캔버스는 팽창하는 공간감을 표현하며, 때로는 시공간을 통과하는 문 같은 느낌을 준다. 둥근 형태는 공간뿐 아니라, 시간을 관통하는 여행을 할 수 있는 구멍(화이트홀, 블랙홀, 웜홀 등)들에 대한 상상과 연결된다. 현대 우주론에서 시간은 공간의 다른 차원으로 간주 된다. 그래서 이러한 4차원의 복합물은 시공간(spacetime)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이번 전시에서 실험적으로 선보이는 거울 관련 작품은 차원의 이동에 대한 상상과 관련된다. 작품 [Bronze Mirror Design-Front and Rear View]는 프랙털 시리즈에 나오는 촉감과 시뮬라크르 시리즈에 나오는 무늬를 하고 있고, 반은 비워 놓은 작품이다. 작가에 의하면 그것은 ‘청동거울의 설계도면’으로, 그는 한 장의 설계도면에다가 두 개의 면을 병렬했다. 오른쪽은 거울의 전면이고 왼쪽은 거울 뒤의 문양이다.


작가는 거울의 앞과 뒤를 동시에 보여주는데, 그것은 거울 이편과 저편을 나누는 일종의 문턱(threshold)을 생각하게 한다. 거울은 ‘시간의 문’에서의 구멍들처럼 이곳과 저곳을 연결 시키는 또 다른 문으로, 이러한 상상력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같은 기묘한 동화에도 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저편을 생각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사고이며, 작품을 상징적 우주로 보는 작업에 스며있다. 사빈 멜쉬오르 보네는 [거울의 역사]에서 거울에 비친 상은 거울 너머에 존재하는 비물질적인 다른 세계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고, 사람들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를 넘어서라고 말한다. [거울의 역사]에 의하면, 거울은 기호와 유추를 통해 나아가는 길, 보이는 것의 한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다른 곳을 증명하는 간접적인 여정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보네는 빛과 반사상의 형이상학이 펼쳐지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의 예를 들면서, 여기에서,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상이며, 영혼은 신성한 것의 반사상이라는 관념이 있음을 말한다.


보네에 의하면, 플라토니즘의 전통에서 거울은 유추와 위계의 체계 안에서 매개의 역할을 수행한다. 거울은 존재의 연쇄 망으로 이루어진 문수만의 상징적 우주에서 유비의 매개자가 된다. [거울의 역사]는 플라톤적인 낙원, 즉 대칭과 상응의 세계에서 신비한 대칭은 인간으로 하여금 우리의 일상적 현실 뒤에는 그에 상응하는, 그보다 더 나은, 보이지 않는 짝이 존재한다고 믿게 한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거울을 넘어 반대쪽으로 가려는 꿈은 바로 다른 쪽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구에 부응한다. 그것은 안과 밖을 조화시키려는 희망을, 그리고 현실의 무게와 죄의식의 압박을 벗어난 세계에서 결정적으로 환영과 상상 쪽에서 살아가려는 매혹적인 희망을 반짝거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울 이편과 다른 세계인 저편으로의 여정이 쉽지는 않다. 거울을 통과하는 앨리스는 그냥 저편으로 순조롭게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험의 여정에 돌입하는 것이다. 거울 이편에서 저편으로의 여정은 출구를 찾기 어려운 미로로 나타난다.


복잡한 선으로 이루어진 문수만의 작품은 만다라와 비교되며, 만다라 또한 미로를 상징한다. 진리에 이르는 길일 미로에서 시간은 중요한 변수가 된다. 문수만이 영감을 받는 오래된 유물들은 시간이 남겨 놓은 흔적들이 있다. 그의 작품에서 흐릿해지는 선들, 또는 처음부터 흐릿하게 표현한 선들은 단지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보다는, 단지 길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에 머문다. 묻어놓은 도상들을 갈아내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이 발견되기도 할 것이다. 최소 열 겹이 넘는 층을 가지는 작품에서 길은 만들어질 뿐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은은한 분위기의 작품 [Klopfen(031803)]은 어느 작품 못지않게 정교하지만, 촘촘하게 새겨진 무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작가가 한정한 영역 내의 시공간을 밀도 있는 도상으로 채우는 상징적 작품은 신비롭지만, 텅 비워 놓은 중심이 암시하듯 결정적인 의미는 없다. 다만 끝없이 나아가는 길(道)이 있을 따름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해석의 한계]에서 소우주와 대우주를 상호적으로 결합하는 융합 관계에서 신비주의적 기호현상을 본다. 에코에 의하면 신비의 지식은 위에 있는 것은 아래의 것과 비교될 수 있으며 그 역도 가능하다.


이렇게 우주는 모든 것이 다른 것들을 의미하고 다른 것들에 반사되는 엄청난 유리방으로 인식된다. 미셀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말하듯이, 유비적 사고는 끝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근대과학은 유비적 사고를 거부했다. 과학적 관측은 타원궤도인데, 완벽을 고수하는 유비적 사고는 원궤도를 고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학문인 과학도 유비적 사고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으며 예술은 더욱 그렇다. 상호작용의 미로에서 궁극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에코는 신비주의적 비밀은 텅 빈 비밀임을 말한다. 신비주의적 사고에서 세계는 기호의 그물망으로 덮여있지만, 그러한 기호에서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은 생략되어 있다. 그것은 기호가 결코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호의 불투명성은 현대미술이 재현주의를 거부할 때도 부각되었다. 지워진 면적이 점차 늘어나는 문수만의 작품은 기호의 불투명성을 암시한다. 그것은 고정된 조화가 아니라 요동(fluctuation)치는 우주의 결과이기도 하다. 예술적 작업의 의미와 목적도 인생의 의미와 목적처럼 모호할 것이다. 다만 후기 구조주의로 대변되는 현대의 철학은 이러한 표류의 상황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



2. 

시간의 문을 통과하는 자연과 문명의 행렬

이선영(미술평론가)

보이지 않는 중심을 둘러싼 둥근 원, 그 원 속의 또 다른 원들이 있는 문수만의 작품은 정적인 가운데 움직임이 있다. 끝과 끝이 이어진 원 자체가 정중동(靜中動)이다. 전시된 모든 작품에 일관되게 적용된 원형 구도는 차이 짓기를 위한 동일한 바탕을 이룬다. 우연 또한 필연이라는 맥락에서 힘을 발휘한다. 마찬가지로 질서가 있는 가운데 무질서가 있다. 그가 잘 그리는 나비까지 포함한다면, 무거움 속의 가벼움 또한 추가될 수 있으리라. 문수만의 작품은 이렇게 상반된 가치들이 밀고 당기는 역동적인 장을 이룬다. 둥근 작품들에는 중심이 있는 자리가 있을 뿐, 어느 한 점으로의  환원은 없다. 그리고 다양한 중심들 사이에 분포하는 형상들이 작품들 간의 차이를 만든다. 반복과 차이 속에서 무한 회귀하는 작품들은 전시 작품의 한 제목처럼 [시간의 문]을 통과한다. 복잡한 작업공정이 깔려 있는 그의 작품에는 시간성이 깔려 있었으나, 2018년의 첫 전시 작품에서 시간성은 더욱 드러난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청동거울 유물의 이미지가 있는 [시간의 문] 시리즈는 거울의 뒷면, 즉 공간이면서도 시간성을 암시한다. 거울은 인간을 상상의 요구에 맞춰 고착시키지만, 거울의 표면이 아니라 이면을 염두에 두는 것은 시간의 축 속에 자아를 배치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유물은 현장에서 발굴되고 박물관에 보존된 이후에는 부식의 과정이 완화된다. 시간성에는 변수가 많이 개입된다. 작가 역시 어느 순간에 이 낡아지는 과정을 멈추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에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의 말로는 ‘망치기 직전까지’ 간 작품도 꽤 있었다. 이전 작품처럼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더 쉬울 정도였다. 그것은 완결된 과정을 열어놓는 것에 해당한다. 필연적인 맥락에 우연성을 도입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긁히고 부식된 형태, 파묻혀지거나 우연적으로 드러난 형태들을 비롯하여, 시간성을 암시하기 위해 더 많은 공정이 추가되었다. 빈티지 청바지가 그냥 청바지보다 더 많은 수공이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문수만의 작품은 오래된 문화재처럼 정교하고도 분위기 있는 사물로서의 면모를 획득한다. 작가가 매혹되는 것도 자의와 자유를 구별하지 못하는 일단의 현대미술은 아니다. 그러나 시뮬라크르적 속성을 띄는 그의 작품은 현대성의 한가운데에 있다. 미술계에 시뮬라크르에 대한 주제의 작품이 적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설득력 있기 위해 갖춰야할 정교함을 수반한 작품이 흔치는 않다. 작품이 문화재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완벽한 것을 더욱 완벽하게 하는 것은 시간 아닐까. 순간 속에 완결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작품들은 이제 지속의 단계에 들어섰다. 원 가운데 또 다른 원들, 그 사이로 촘촘한 바퀴살들이 뻗은 [시간의 문]은 마치 태양처럼 보인다. 그것은 인간 이전에도 있었고 인간 이후에도 있을 영겁회귀의 궤도를 돈다. 이러한 우주적 차원의 사건은 지상에서도 반복된다. 원들 사이의 공간 속에 꽃이 펼쳐져 있는 작품들은 지상에서 영겁회귀의 직관적 모델로 식물을 떠오르게 한다. 식물학자들은 한겨울의 나목이 죽은 듯 하다가도 다음해 다시 꽃을 피우며, 인간들로 하여금 부활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고 말한다.

문수만의 작품에서 꽃들은 유기적인 형태를 가지지만, 짝을 맞춰 대칭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것은 자연의 내재율을 반복한다. 그에게 자연은 단지 외관이 아니라 과정이며, 이러한 과정에는 리듬이 있다. 살아있는 심장을 가진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직관적으로 리듬에 대한 선호가 있다. 작가는 기계적 패턴의 반복이 아니라 생명의 율동을 흉내 내는 것이다. 작품들 간의 관계도 리드미컬하다. 전시장 벽에 걸린 바퀴처럼 둥글둥글한 형태들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움직이는 듯한 환영이 있다.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동일한 밀도와 강도를 유지하고 있는 다른 지름을 한 작품들은 전시장 벽에서 가상의 원근감을 형성한다. 가령 작은 것은 멀리 있는 것, 큰 것은 가까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것들은 좌우로도. 그리고 전경과 후경 사이로도 움직이는 듯하다. 그것들은 제자리에서 돌 뿐 아니라, 좌우로도 전후로도 움직인다. 행성이 자전을 하면서 항성을 공전하듯이 움직임은 여러 차원에서 동시적이다. 여기에서 공간은 시간화 된다.

그의 작품에는 수많은 층이 있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발굴된 유물같이 흐들흐들한 시간의 겹을 각인한다. 밑에서 올라오는 것도 있으니 시간의 지층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그것들은 단지 시공간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만은 아니다. 오래된 껍질을 사라지면서 새로운 속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품 속 위아래 층들의 관계는 본질적으로는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회화인 작품에 잠재적 운동감을 부여한다. 어떤 것은 떠오르고 어떤 것은 가라앉는다. 둥근 형태는 질서감이 있지만, 겹과 층 속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선들은 질서감을 와해시키는 요소이다. 반듯한 형태들은 먼지로 화하고 있다. 엔트로피(무질서도)는 증가하고 있다. 두들겨서 만든 작품이라는 의미를 담은 [Klopfen]은 중간층에 대칭적으로 배열한 8개의 원을 포함하여 원 속의 원을 반복하는데, 가장 큰 원인 작품의 외곽은 원들의 세계에 내재한 안정감을 와해시킬 수도 있는 힘이 작동한다. 작품 [Simulacre(041708)]은 그러한 힘이 전체를 장악한다.

작품 [FRACTAL(081612)]에서는 성난 파도처럼 휘몰아친다. 작품 [Simulacre(041708)]는 금색 문양이 들끓어 오르는 거친 바탕 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있지만, 향후에 문양을 이루는 그 선들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작품 [Simulacre(061709)]에서 원 속의 원들 사이에 날고 있는 학이 있는 공간은 평평하지 않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To Father(021609)]는 인간의 역사 또한 자연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유물 같은 느낌을 잘 살린 이번 전시 작품은 권력이나 죽음이라는 주제를 포함한 보편적 인간사는 결국 자연과 비슷함을 암시한다. 근대의 낭만주의자들은 그들이 열광했던 폐허가 자연화 된 역사임을 인식했다. 오늘날 첨단과학은 자연의 설계도를 재배치하여 새로운 역사를 쓰려고 한다. 인간의 규칙은 자연의 법칙을 모사한다. 자연은 자연 그자체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자연은 그자체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의해 매개된다. 문화의 정점에 있는 것은 예술이다. 지금도 그 유적지가 있는 수원의 화성에서는 재연 행사가 종종 열리곤 한다.

어딘가에는 그 모델—그러나 이전시대의 이름 없는 도공들은 무엇을 ‘원본’으로 작업을 한 것인가—이 있지만 조금씩 변형시켜 다른 것으로 만드는 문수만에는 정조대왕의 행차도처럼 의례(儀禮)의 속성이 있다. 의례는 단지 없어져야할 구태나 부조리는 아니다. 사회자체가 의례의 속성을 띄고 있다. 예술에서 의례적인 것은 장식이다. ‘새로움의 전통’인 현대미술 역시 이전의 관례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변주를 통한 유희를 즐기는 문수만의 작품 또한 장식과의 관련 속에 있다. 그러나 장식 같은 기계적인 반복이나 고정된 기법과는 거리가 있다. 다만 장식에 고유한 완벽한 기교와 그에 따르는 ‘유혹적 측면’(장 보드리야르)은 남아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깃들어있는 그의 작품은 일단 관객에게 놀라움을 야기하는 것이다. 의례는 최초의 모델을 반복하지만, 최초는 불확실하다. 원본 없는 반복은 그의 작품이 복제가 아닌 시뮬라크르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시작도 끝도 없는 둥근 구도는 시뮬라크르의 적절한 이미지라고 생각된다. 시간의 켜를 둘러 쓴 둥근 구조는 유한의 구도를 벗어난다. 모사의 과정에서 재료에 대한 교란은 자주 일어난다. ‘원본/복제의 이원 항을 해체하는 시뮬라크르’(질 들뢰즈)는 순수에 대한 가상을 버린다. 문수만의 작품은 그림이면서 도자기 같고, 도자기 같으면서도 금속 같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자인데도 청자 빛이 감도는 작품이 있다. 자연 또한 조금씩 달라진다. 가령 그가 잘 그리는 나비는 어떠한가. 더 이상 실제의 나비를 안보고도 그릴 만큼 익숙한 그의 나비는 자세히 보면 아름답기보다는 징그럽다. 너무 자세해지면 실제가 아니라 환상같다. 나비가 아니라 나비 그림이니까 환상적 환영(illusion)이라고 해야 할까. 재료나 기법의 변주 또한 확실하다. 작품 [To Father(021609)]에서 원본은 그림이지만, 작가가 디지털로 복원시킨 이미지들은 이중 상감기법으로 표현되었다. 그 기법은 도자 작품에서 쓰이곤 하지만, 그는 어두운 바탕에서 빛나는 동 색깔의 물감으로 그렇게 했다.

작가는 캔버스에 물감으로 금속 같은 표면을 재현한다. 금색을 미리 칠하고 겹겹의 작업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최종의 질감은 금속성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은 정조가 비극적으로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찾아가는 행렬도를 원본으로 삼아 원의 구도 속에서 재탄생시킨 것이다. 가로 15미터의 스펙터클한 구도를 원형으로 재배치했다. 스펙터클하고 기념비적인 작품을 일종의 그릇에 담은 셈이다. 김홍도와 화원들에 의해 제작된 원본이 선적이어서 좌우로 열려있다면, 문수만의 작품은 그 대열을 둥글게 오므리면서도, 장장 1800여명의 사람들과 800여 마리의 군마가 동원되었다는 거대한 대열의 느낌을 보존한다. 선적 구도가 둥근 구도가 되기 위해 대상들 간의 간격은 조절되었다. 군사들을 외곽에 더 촘촘하게 배치했다. 마치 망원경으로 역사를 보는 듯한 모습이다. 먼 공간을 앞으로 당겨오는 둥근 틀은 시간을 당겨오는 것이다.

[정조대왕의 화성능행도]에 대한 관심은 작가가 드레스덴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기념비적인 복원 예술 작품 [군주들의 행진]의 영향을 받았다. 유럽에 그러한 보물이 있다면 한국에도 있다는 자의식의 발로이다. 누군가한테는 죽은 전통이나 진부한 클리셰처럼 간주되는 백자나 청자는 그에게 영감을 준다. [Cloud] 시리즈는 청자의 문양을 원안에 펼쳤다. 하늘을 나는 학들이 있는 작품 [Cloud(051709)]는 원으로 상징되는 무한을 새가 날고 있는 하늘과 중첩시킨다. 그러나 시간의 켜를 둘러쓴 그것은 티클 하나 없는 하늘이 아니다. 구름이라는 제목은 담배를 즐겨했던 운보 김기창의 담배함에서 시작되었지만, 최초의 공예품과 달리 정형화될 수 없는 측면이 강조되었다. 인간은 담배연기 입자의 운동이나 구름의 가장자리를 확정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의 수레바퀴처럼 생긴 작품 [Cloud(041708)]에서 바퀴살에 해당하는 부분은 직선이 아니라 식물 같은 유기적 선이다.

문수만의 작품은 고풍스럽지만, 동시에 현대 과학의 혼돈(chaos)이나 복잡성(complexity), 프랙털(fractal) 이론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 이론들에 내재된 서사가 엄격한 인과론에 근거한 고전과학을 넘어서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예술의 서사와 중첩되는 부분도 있지만, 원래 공학도였던 작가의 이력과도 무관치는 않은 듯하다. 향후에 무엇을 하든 자신의 모태 언어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의 ‘구름’은 대칭을 이루면서 매우 안정적인 구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안정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순간의 고정일 뿐이다. 그것은 엄격한 기하학에 있는 정적인 균형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된 균형에 대한 비유이다. 제임스 글리크는 [카오스 이론; 무질서 속의 질서]에서, 고전 기하학에서 다루는 형태는 선분, 평면, 원, 구, 삼각형 그리고 원추 등인데, 그것들은  실재를 강하게 추상화한 것으로 플라톤적인 조화의 철학에 강한 영감을 주었다고 말한다.

예술가들은 그 도형들에서 이상적인 미를 발견했고 천동설을 주장하던 천문학자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우주론을 정립했다. 그러나 복잡성을 이해하기에는 그 도형들이 잘못 추상화되었음이 드러났다. 과학은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원이 아니라 타원의 중요성을 밝혀냈으며, 지구는 우주의 중심도 아니고 평평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문수만은 ‘지구는 평평하다는 식의 생각’은 나름대로 순수하다고 평가한다. 제임스 글리크는 새로운 기하학은 둥글둥글하지 않고 우툴두툴한, 또 매끄럽지 않고 거칠거칠한 우주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구멍이 많고 움푹 파이고 잘리고 꼬이고 서로 엉켜있는 것의 기하학이었다. 문수만의 ‘구름’들 속에 있는 기하학은 이러한 이론이 암시하는 거친 기하학에 해당된다. 우리는 양떼구름과 뭉게구름 등을 구별하지만, 구름이란 단 한순간도 고정되지 않는다. 역동의 시대에 구름이나 안개의 이미지는 자주 등장하곤 한다. 모든 고정된 것, 정지된 것을 극도로 거부했던 철학자 미셀 세르나 질 들뢰즈를 열광시켰던 윌리엄 터너의 그림을 떠올려 보라.

문수만의 작품에서 하늘이 공간이라면, 거기에 떠있는 구름이나 새(또는 곤충)는 공간이기 보다는 시간이다. 시간이란 탄생과 소멸에 관련된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카오스에서 시간을 본다. 들뢰즈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카오스를 무질서나 무(無)가 아니라 희미하게 떠오르다가 이내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는 모든 형태들의 무한한 속도로 정의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카오스는 모든 가능한 미립자들을 포함하며 일관성이나 지시 관계, 그리고 결과도 없이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져버린다. 그것은 모든 가능한 형태를 이끌어내는 잠재태로서의 공백을 말한다. 문수만 역시 잠재적인 것에서 현실적인 것을 끌어내려고 한다. 그의 둥근 작품들은 자연이나 예술의 비밀이 담긴 보물창고의 다이얼처럼 계속 돌아가면서 열림의 순간을 기다린다. 그 속도는 정보혁명 시대의 기술 혁신들보다는 느릿하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Simulacre] 시리즈는 예술과 과학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방식이 있다. 선적 문양으로 꽉 찬 작품 [Simulacre](071709)]는 경계 없는 자연을 모델로 한다. 작품 [Simulacre](061709)]을 이루는 여러 경계는 바깥부터 흐릿해진다. 문수만의 작품은 물리적으로 단단하지만 그것이 내포하는 바는 유동적이다. 차가운 고체가 아니라 뜨거운 액체나 기체의 이미지이다. 선적인 질서는 에너지에 의해 급격하게 변화한다. 에너지는 선적인 질서를 혼돈에 빠트린다. 하늘과 구름은 소용돌이친다. 이러한 공간에서 시간은 어떻게 흐를까. 과학철학자 미셀 세르는 [해명]에서 자신의 혼돈의 이론을 고전적인 선적 이론과 구별한다. 시간이 복잡하고 예기치 않게 복합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강조하는 미셀 세르는 날씨와 시간은 같은 단어 ‘temps’에서 유래함을 지적한다. 난류와도 같이 유동적인 문수만의 큰 소용돌이 속에 작은 소용돌이를 보여준다. 그것은 프랙털 시리즈도 마찬가지이다.

정적인 조화와 동적인 연속이 함께 가는 문수만의 작품은 체계를 가지지만, 그것은 딱딱하게 구조화되지 않난다. 그의 체계는 ‘모든 체계가 묶인 에너지’(미셀 세르)라는 점에서만 체계적이다. 그 촘촘함 덕분에 견고한 방패처럼도 보이는 작품 [Simulacre](081709]는 큰 원(대우주)과 작은 원(소우주) 사이의 영역에 가득한 넝쿨 식물들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끝나는지 모르는 소용돌이 같은 역동감이 있다. 또한 그것은 작가말대로 ‘인간적 삶의 차원에서 복잡하게 얽힌 관계나 네트워크 세계’ 등을 떠올린다. 미셀 세르는 [헤르메스]에서 소용돌이는 율동적이고 동시에 지향성을 띤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원형으로 돌면서 달아나는 소용돌이는 상황에 대한 비유가 된다. 세르는 이 근본적인 소용돌이가 없다면 어떤 것도 형성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카오스에서 시간이 도래한다. 그러나 문수만의 작품 속 카오스는 보이지 않는 패턴을 깔고 있다.

작가는 이 시리즈에 대해 ‘시뮬라크르’처럼 ‘프랙털’이라는 단도직입적인 제목을 붙였다. 가장자리로부터 가운데로 몰려드는 역동적인 힘이 우툴두툴한 표면으로 드러나는 작품 [FRACTAL(081612)]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용암이나 고갈되지 않은 에너지로 변화무쌍한 표면의 운동을 지속하는 바다를 떠올린다. 그것은 막사발의 우툴두툴한 면(매화피)에서 왔다. 전통은 자연과 더불어 작가에게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는데, 그가 참조하는 도자기의 문양을 그림으로 만들 때 차원의 변주가 일어난다. 입체가 평면으로 가면서 빈공간이 생기는데, 그 빈 공간을 채우는 방식에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부서진 상태’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온 ‘fractal’은 시간의 문을 통과하며 부서지고 있는 외관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의 내적 원리이기도 하다. ‘두들겨서 만들었다’는 의미를 가지는 [Klopfen] 시리즈에서도 물고기 비늘을 반복하는 공간, 원 속의 원들은 유사함을 반복한다. 담배연기와 구름, 난류 등에도 불규칙성 속의 규칙성이라는 프랙털 형상이 잠재해 있다.

필립 볼은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임계질량에서 이어지는 사건들]에서 큰 규모에서 나타난 구조가 점점 더 작은 규모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현상, 즉 프랙털이 1980년 초에 물리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런 패턴들이 자연의 유기적 형태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잎 새는 나무의 가지를 반복한다. 그것은 가지들이 매우 높은 효율로 허용된 공간을 채우기 때문이다. 공간을 채우는 효율을 수학적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프랙털 차원이다. 필립 볼에 의하면 배율이 달라도 형태나 모양이 비슷하다는 사실은 프랙털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제임스 글리크는 [카오스 이론; 무질서 속의 질서]에서 자연의 불규칙한 패턴과 무한히 복잡한 형상에 대한 탐구에는 지적인 교차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체 유사성(self-similarity)이라고 말한다. 자기 유사(類似), 또는 자기 상사(相似)성이 있는 문수만의 작품에서 원, 또는 원 속의 원을 채우는 것은 이러한 프랙털 곡선이다.

문수만의 작품은 프랙털 이론이 암시하듯이 복잡하면서도 거기에 숨어있는 조직적인 구조가 있다. 자체적으로 유사함을 의미하는 프랙털은 대칭적이다. 물론 제임스 글리크가 주목하는 대칭성은 좌우 또는 상하 대칭이 아니라, 대규모와 소규모 간의 대칭이다. 문수만의 작품에도 규모간의 차이가 있다. 가령 작품 [cloud(051709)]에서 원 안의 원들의 세계가 그것이다. 작품들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구름 또한 나무나 산맥, 그리고 눈송이에 나타나는 배열처럼 프랙털 적이다. 이 모든 형상들은 ‘동력학적 과정이 물리적 형태로 구체화된 것’으로, ‘회귀, 즉 패턴 안의 패턴을 의미’(제임스 글리크)한다. 무엇보다도 그것들은 ‘유한한 공간 내에 있는 무한한 길이라는 역설적인 결과’(제임스 글리크)를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예술이 지향하는 바—‘예술은 무한을 복원시키는 유한을 창조하고자 한다’(들뢰즈)--이다. 또한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무한을 갈망하는 종교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문수만의 작품에서 보이는 애매한 차원 또한 프랙털 이론과 공유된다. 요시마사 요시나가는 [과학과 철학, 두 개의 거울]은 1975년 만델브로트가 주목한 ‘자연계에 존재하는 리아스식 해안의 해안선과 수목의 형, 꼬불꼬불 흐르는 강과 쭉 이어져 있는 산’ 등의 예를 든다. 저자는 지구상에 있는 산들의 경관이 가진 프랙털 차원은 약 2.1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평면이상이지만 입체 이하의 것이다. 다시 말해 2차원 이상이지만 3차원 이하이다. 문수만의 작품에도 이러한 애매한 차원이 있다. 그는 도자기같은 입체를 ‘그림’으로 그리지만, 정확히는 만들지만, 그림처럼 납작하지는 않다. 그의 작품의 두께는 두텁고 조형적으로 처리가 돼있으며, 어떤 작품은 가장자리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작품 틀은 투명하지 않다. 거기에는 물질적 불투명함이 있다. 체계는 에너지에 의해 교란되고 에너지는 또 다른 체계를 형성한다. 프랙털 도형처럼 분기된 시간들이 공간을 채우는 문수만의 작품에서 ‘시간의 문’은 하나가 아니다. 여기에서 역사를 포함한 시간은 ‘복잡한 다양성’(미셀 세르)을 따라 흐른다. ⓒ     



3.

생성을 위한 존재의 자리

이선영(미술평론가)


보편화된 분업이 생산력과 더불어 인간의 소외를 증대시켰다는 역설은 근대에 대한 비판의 몸통을 이루는 서사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혁명으로 누군가는 개혁으로 대안을 내놓곤 했지만, 진보 또는 발전의 양면성은 여전히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모순이다. 극단적 분업에 의한 파편화된 상황을 극복하는 일상적 방법은 기껏해야 노동 이외의 시간인 여가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여가를 채우는 소비는 소외된 노동을 지탱시킨다. 이러한 악순환, 또는 악순환에도 진입하지 못하거나 탈락된 유예된 인생에게 예술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분업화된 노동과 달리, 예술은 개인의 상상은 물론, 꿈과 무의식, 젖 먹던 힘까지도 요구하는 총체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밑도 끝도 없는 예술적 과정은 누군가에게는 고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즐길만한 것이 될 수 있다. 총체적 활동으로서의 예술은 얼마 전 대구에서 열린 문수만 개인전 주제인 ‘몰입’(Finding Flow)을 자아낸다.

성공한 벤처 사업가였던 30대를 뒤로하고, 40대에 미술을 시작한 그는 누구보다도 예술의 힘을 믿고 의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수만이 뒤늦게 속하게 된 한국의 미술계는 그러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물론 그는 그러한 ‘객관적’ 비전과 상관없이 작업을 지속할 인물로 보이지만 말이다. 한 해에 비엔날레만 몇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릴 정도로 제도적으로 비대해진 미술계도 파편화된 작품을 파편적으로 반영할 뿐이다. 미술에 대한 메시지들에는 전체가 담겨있지 않다. 매달 나오는 잡지들에 수록된 작품 사진은 작품의 전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이에 대한 설명은 충분치 못하다. 하다만 작품, 쓰다만 글이 가득하다. 각자의 영역에서 생산된 것들은 온전히 향유되지 못한다. 이러한 파편성이 지속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배후의 권력 때문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작가가 작품에 모든 것을 쏟는 것은 무모한 출혈 행위이며, 미진한 작업들을 돋보이는데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권력이라는 것이 분명해 지고 있다. 어딜 가도 돈과 줄 이야기만 한다.

패션쇼에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괴상한 의상들만 즐비하다면, 관객은 패션의 난삽함을 탓할 것이 아니라, 누구도 안보고 안 사 입을 것이니 내 맘 대로라는 식의 무대를 가능케 하는 이면의 권력을 봐야할 것이다. 편향된 정보를 자의적으로 늘어놓는 발신자들 덕분에 미술은 점점 더 소수자의 것이 되고 있다. 문수만의 작업은 작품 규모에 상관없이 밀도와 강도가 높은 응집된 스타일을 가지는데, 그것은 부조리를 자연화 하는 권력과 거리가 먼 곳에 있는 작가의 전략 아닌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동전 한닢처럼 어디선가 또르르 굴러 올 법 한 둥근 작품들은 그 하나하나가 충만하다. 단편으로서 충만한 작품은 작가 자신을 비롯한 어떤 ‘배후의’ 권력 없이도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게 할 것이다. 오는 10월 일본 고베의 GALLERY 北野坂(키타노자카)에서 열리는 개인전 ‘도공의 날개’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작가의 게임 원칙에 의거해 만든 단편에 많은 것을 접어 넣는다.

꽃이나 나비, 심지어는 허공이나 균열 같은 섬세한 소재를 배에 바르는 외장재로 단단하게 갈무리된 그의 작품은 닫아 놓음으로서 열리는 역설이 있다. 완벽한 것만이 ‘더불어’가 가능하다. 각각의 단편들은 한 줄기를 잘라낸 단면처럼 시리즈 별로 유사한 상을 가진다. 줄기가 통시적이라면 단면은 공시적이다. 어떤 줄기의 단면 같은 모양새는 자족성과 연속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그것들은 과거와 미래를 가지면서도 충만한 현재를 누린다. 그것들은 존재하면서도 생멸(生滅)한다. 잘라낸 단편 같은 작품은 최대한 함축적 순간을 담음으로서 공간예술이 시간을 처리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그러한 방식은 부분을 부분으로 방치하지 않고, 부분 속에 전체를 담을 수 있게 한다. 관객은 이러한 불연속성 속에서 연속성을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은 꽃이 하나 가득 펼쳐 있고, 어느 것은 나비들이 하나씩 있으며, 어느 것은 허공과 빈 균열만이 있다. 접시를 닮은 둥근 캔버스는 허공을 담는다.

끝과 끝이 이어진 둥근 틀은 무, 또는 무한을 담기에 적당한 상징적 형식이다. 그것은 무한을 담는 유한으로서의 성상이나 예술의 속성을 극대화 한다. [陶工] 시리즈에서 작가는 공백에 대한 저항(또는 공포)이 있는 관객을 위해 얼룩이나 명도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균열로 가득한 청자색 허공을 보여주는 작품 [Filling empty-2]는 만물이 유래하는 어떤 표면을 튕겨서 갖가지 지형을 만들어내는 신적 행위를 떠올린다. [調香] 시리즈와 [脈]은 중심에서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향기나 소리 같은 힘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한 에너지가 물질화되면 작품 속 그것처럼 산과 계곡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산과 계곡을 비롯한 ‘모든 단단한 것은 언젠가는 에너지’(미셀 세르)였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다른 시리즈에서 나타나는 나비의 맥처럼 생명체에도 편재하는 에너지의 그물망이다. 문수만의 작품에서 맥은 크랙같은 미세한 방식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온도와 압력의 영향을 받는 미세한 균열은 연결되어 있던 것의 단절을 암시한다. 단절은 연결을 암시한다. 그의 작품에서 단절되어 보이는 굵은 맥들은 그 아래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Finding Flow] 시리즈는 다양한 청자 빛 바탕에 꽃의 형상을 배치하고 때로 중심과 외곽 사이의 공간을 복잡한 문양으로 채워 미로에서의 방황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만다라 같다. 둥근 캔버스는 정지된 가운데 움직임을 내포한다. 그러나 바퀴살의 중심처럼 가운데는 고요하다. 때로 작품 [調香-04]처럼 작품 중심에서 모든 것이 생겨나거나 빨려 들어가는 회오리가 잠재한다. 작지만 무한의 공간을 담은 듯한 작품에서 비어있는 중심의 역할은 크다. 장 살렘은 [고대 원자론]에서 우주를 무한하다고 본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소개한다. ‘회오리에서 생겨나는 세계들의 수가 무한하다’는 에피쿠로스의 테제는 비어있는 중심에 잠재적 움직임이 있는 문수만의 작품에도 적용된다.

고대 원자론자들에 의하면 하나의 세계(cosmos)가 형성될 때 온갖 종류의 원자들의 회오리가 우주에서 떨어져 나왔다. 원자론자들은 우주를 물체들과 허공으로 이뤄져 있다고 보았다. 물체들의 수와 허공의 크기도 역시 무한하다. 원자론자들에게 우주는 ‘전체적으로 무한하며 그것의 부분 집합인 물질과 거대한 허공도 역시 무한하다’(루크레티우스). 이 무한한 우주 내에서 온갖 종류의 결합과 배치 덕분에 원자들은 바로 이 세계를 조성한다. 식물의 형상이 있는 [Finding Flow] 시리즈는 마치 바퀴살 같은 잠재적 움직임이 발견된다. [陶工の翼] 시리즈에는 식물이 바퀴살 모양으로 배치된 작품도 있다. 바퀴살의 중심에는 움직임이 없다. 이 중심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자’(아리스토텔레스)인 것이다. 이 맥락에서 보자면 [陶工の翼] 시리즈에서 중심에 있는 나비는 고정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원둘레를 따라 ‘영원히 회귀하는’(니체) 움직임의 중심이며, 이 중심은 반복과 차이의 운동을 거치며 조금씩 변화한다.

생태계에 미묘하게 반응하는 나비들 역시 인간과 함께 공(共)진화할 것이다. 격세유전적인 나비들이 있는 [陶工の翼] 시리즈는 문수만의 특기인 나비 그리기가 잘 발휘된 시리즈다. 작업 초창기부터 시작된 나비라는 도상은 자연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품 속 나비들은 형식을 동일하게 유지함으로서 세부의 차이를 극대화한다. 그것은 하나를 통해 다양성을 극대화하는 펼치는 방식이다. 둥근 캔버스에 한 마리씩 있는 것들을 한꺼번에 보고 있노라면, 나비가 한번 날갯짓을 할 때마다 무늬가 바꿔 입는 듯하다. 그리고 그 날갯짓은 자신이 속한 시공간 역시 변화시킬 것이다. 나비의 날갯짓은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면서 저 멀리에 있는 시공간까지도 ‘나비 효과’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 힘찬 맥이나 미세한 크랙은 그러한 여파를 형상화한 것이다. 작가는 자연의 다양함을 시뮬레이션 한다. 확대경을 포함한 이런저런 기구들이 있는 작업대 위에는 나비 사진이 붙어 있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나비나 나비 사진을 보고 그리지 않는다.

문수만의 작품은 정교하긴 하지만 재현이 아니다. 재현으로는 그 같은 다양성과 유희가 가능하지 않다. 확대경으로 보면 촘촘히 그려진 솜털들도 기이한 느낌을 주지만, 다양함의 인상을 주도하는 것은 나비의 날개 부분이다. 그는 특정한 나비를 이미지로 고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비가 발생하고 변태할 때 행해졌을 과정을 모방한다. 붓질은 모종의 물결을 낳고, 이후 세필이 더해져 나비의 무늬로 결정화된다. 나비라는 대상은 물론 그것이 자리 잡는 배경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연적 요소가 작용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나비는 환상에 가깝다. 환상이기에 그토록 선명하다. 나비라는 지시대상은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단초이다. 초창기 작업에서 수집 상자를 떠올리는 하얀 바탕은 균열이 있는 도자기나 부식된 청동 같은 색과 틀로 변화했다. 미세한 균열이나 부식된 금속 같은 표면연출은 인위적 배경 또한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 같은 면모를 부여한다.

여전한 것은 나비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형태와 실물 같은 착각을 주는 그림자의 존재다. 하얀 사각형에 갇혀있던 아름다움과 다양성의 상징은 무한을 상징하는 색과 형태 위에 안착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컬렉션처럼 한 가운데에 존재한다. 안보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몰입했던 소재인 나비는 자신의 분신이며, 이 분신은 무한 속의 유한을 상징하는 바탕 한가운데 자리한다. 나비 날개의 색과 무늬 또한 무한하다. 작가는 무한 속에 무한을 접어 넣는다. 규모가 작다고 해서 이러한 무한성이 약화되지는 않는다. 문수만의 작품의 특징은 규모와 상관없이 강도와 밀도가 유지된다는 점이다. 이 전시의 모든 원형 캔버스는 이전의 사각 캔버스처럼 이미지를 담는 중성적 바탕이 아니라, 그자체로 상징적 효과를 발휘한다. 그의 작품 속에는 정지 속에 움직임이 있듯이 침묵 속에 소리가 내재한다. 초창기 나비가 자리했던 정사각형 캔버스나 현재의 둥근 캔버스는 음악 애호가이자 ‘재미삼아’ 만들어봤던 CD의 형식일 가능성이 있다.

상표만 붙이면 판매도 가능할 법한 그의 수제 CD는 그의 그림처럼 원본 없는 복제(시뮬레이션)의 산물이다. 원은 물론 정사각형 캔버스는 미술사적으로 성상 같은 독특한 경우에나 활용되곤 하였으며, 그림에서는 보편적이지 않는 프레임이다. 음악 애호가로 하여금 음악이 지속되는 시간 동안 황홀감의 체험을 안겨줬을 음악 디스크는 시간을 공간화, 물질화 한다. 대칭적인 안정감을 확보하고 있는 둥글거나 정사각형의 틀은 완벽함에 대한 이미지다. 미술사나 연금술 전통의 이미지에서, 정사각형을 감싸는 원이나 원 안의 정사각형 속에 완벽한 인간을 상징하는 도상들이 종종 발견된다. 완벽함에 대한 느낌은 그 기원이 종교나 기술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심미적 체험이다. 심지어 독재자도 그러한 심미적 체험에 빠지곤 한다. 그것은 물신적 소유욕을 자극하여 음원이 보편화된 시대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매체로 남아있다.

문수만의 작품에서 원형의 디스크와 그 디스크를 담는 정사각형 프레임은 무의미한 시공간을 질적으로 도약하게 하는 완벽한 시공간에 대한 상징이다. 원형이나 정사각형 위에 새겨진 이미지는 음악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독특한 공(共)감각적 체험을 자아낸다. 둥근 틀은 다양한 청자 빛을 품은 하늘이자, 정신, 그리고 자아라는 중층적 상징이다. 나비가 자신의 분신이라면 자아 안의 또 다른 자아라 할 수 있겠다. 그것은 이데아와 같은 완벽함을 지향한다. 시오반 로버츠는 한 기하학자의 생애를 다룬 저서 [무한 공간의 왕]에서, 만물을 수(數)로 간주한 피타고라스의 후계자를 플라톤으로 본다. ‘신은 언제나 기하학 원리를 적용한다’고 말한 플라톤은 이데아적인 기하학 형상들로 원, 구, 정사각형, 정육면체 등을 들었다. 그것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물리적 세계와는 독립적인 그들이 속한 보다 높은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어졌다.

문수만의 작품에서 원이나 정사각형 프레임은 이데아처럼 논리적인 엄밀함이나 절대적인 순수함을 지향한다. 모사와 창안이 복합된 나비, 그리고 도자기나 청동기에 새겨진 무늬같은 이미지들, 그리고 이를 감싸고 있는 둥근 틀은 상징적이다. 에른스트 카시러는 [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에서, 우리는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식에 의해 구성된 문화 세계 속에 살고 있으며, 이 문화세계는 일정한 생성 법칙으로 구성된 다양한 상징형식들의 체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카시러가 정의한 상징의 개념으로 그의 작품을 보자면, 자연(나비, 창공)이나 인공(도자기, 청동기)같은 감각적인 것은 상징을 통해 정신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획득하고, 정신적인 것은 다시 상징을 통해 감각적인 세계로 나아간다. 상징을 통해 근대 이후 갈갈이 찢어진 자연과 예술이 다시 만난다. 문수만의 작품에서는 기술 또한 이러한 만남에 포함된다.

그러나 과거 이력이 어떠하던 간에 그는 현재 캔버스 위에 유화나 아크릴로 작업하는 화가이다. 예술이 무한을 다루는 방식은 철학이나 과학과 차이가 있다.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과학이나 철학 못지않게 예술도 사유하긴 하지만, 그것은 정서와 지각들을 통한 사유라고 본다. 저자들에 의하면 과학과 철학과 예술 사이에는 무한한 상응들로 짜여 진 직조 망이 구도들 사이에 자리한다. 각 개념들은 다른 개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진동의 중심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는 서로 잇닿아 일어나거나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명한다. 문수만이 다양한 가능성을 탑재한 캔버스 표면을 툭 쳐서 균열을 내고 보이는/보이지 않는 맥을 통해 공명을 꾀하듯이 말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예술의 고유함을 유한을 거쳐 무한을 되찾는 것이라고 본다. 예술의 방식은 철학이나 과학과 다르다. 저자들에 의하면 철학은 무한에 일관성을 부여함으로서 무한을 구원하고자 한다. 반대로 과학은 지시 관계를 얻기 위해 무한을 포기한다.

그러나 예술은 무한을 복원시키는 유한을 창조하고자 한다. 문수만의 작품에서 들뢰즈와 가타리가 개념화하는 바의 ‘무한을 되돌려주는 구성’은 무한대를 향해 열려져 있는 표면에서 발견된다. 둥근 캔버스의 표면과 나비의 표면, 그리고 변형을 꾀하는 듯 이상야릇하게 배치된 갖가지 무늬의 관계망이 그러하다. 그의 작품에서 공간은 보일 듯 말 듯 한 얼룩부터 꽉 찬 무늬 등 다양한 밀도를 가지지만, 빈 공간(허공)은 필수적이다. 그것은 변형을 준비하면서, 완벽함이라는 미명아래 작품을 유한한 형식체계로 환원될 수 있는 가능성에 거리를 둔다. 여기에서 운동은 비슷한 시각상을 가지는 틀과 도상들 사이 뿐 아니라, 중층적 상징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여기에서 상징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하며 공명한다. ‘맥’이라는 개념과 형상이 그 예이다. 그 맥이 펼쳐지는 장은 자아이자 하늘인 둥근 캔버스이다. 여기에 선명한 상징은 소우주와 대우주의 상응이라는 사유이다.

상응은 범주의 혼돈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소원해진 인간의 대안적 사유이다. 인간의 위치가 가치가 어느 때보다도 흔들리고 있는 이 시대에 참고할만한 것이 상응이라는 고래의 유비적(analogy) 사유이다. 신학에 보편적인 유비적 사유는 동양 사상에도 낯설지 않다. 문수만의 작품에서 이러한 상응은 무한에 대한 사유를 매개로 펼쳐진다. 에른스트 카시러는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에서도 쿠자누스를 인용하면서, 신에 맞서는 두 가지 형태의 상대적 무한함을 설정한다. 그중 하나는 우주를 통해 드러나며, 다른 하나는 인간 정신에서 드러난다. 전자에서는 우주가 어떠한 공간적 한계도 가지지 않고 무한한 넓이로 확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절대적인 무한성이 구현된다. 시간과 그것의 무한한 지속에 관한 앎, 그 지속을 중지시키고 사유를 통해 확인 가능한 계량으로 환원시키는 앎 또한 그러하다. 동심원 또는 동심원이 잠재되어 있는 문수만의 둥근 캔버스는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처럼 소우주와 대우주의 간의 상응을 이룬다.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에 의하면, 르네상스 시대에 인간은 우주에 대하여 그리고 자아는 세계에 대하여 둘러싸이는 동시에 둘러싸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르네상스의 인간은 신과 무한한 우주에 대해 감싸면서 감싸이는 관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충만한 단편이 아니라 불완전한 파편의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전인(全人)적 사고이다. 현대에 가장 지배적인 방식, 즉 극단적인 분업을 통해 생산력을 높이는 과학기술은 인간 자체를 말소해 간다. 긍정적인 의미든 아니든, 과학 기술은 휴머니즘과 무관하다. 물론 근대의 과학혁명을 거친 이 시대에 르네상스식의 계층적 우주는 상징적 차원으로만 유효하다. 이 상징적 우주는 존재만큼이나 생성을 중시한다.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에 의하면, 철학에는 서로 엄격히 구분되는 두 서술 수단, 즉 존재의 영역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성의 영역을 위한 것이 있다. 카시러에 의하면 항상 존재하는 것, 즉 항시 자기 자신과 동일하며 항구적으로 불변인 것에 대해서만 엄밀한 지식이 가능하다.

반면 생성하는 것, 즉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순간순간 변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식에 의한 그와 같은 파악이 불가능하다.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넉넉하게 비워놓은 문수만의 작품 속 공간들은 존재의 자리 뿐 아니라, 생성을 촉구한다. 청자 빛 하늘을 담은 원형 캔버스는 하늘이라는 변화무쌍한 실재를 담는다. 장 살렘은 [고대 원자론]에서 만일 모든 것이 꽉 차있다면 운동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원자론자들을 소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원자론자들은 허공이 없다면, 운동은 있을 수 없고, 허공이 운동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생성은 무에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이전 세계의 잔해들로부터 온다. 문수만의 작품에서 생겨나는 입자들과 사라지는 입자들이 함께 유동하는 듯한 고풍스러운 도자기나 청동기 표면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생성을 강조한다. 시뮬레이션/생성은 재현/생산과 대조된다. 그의 작품은 한국적 또는 동양적 바탕과 형상을 취하지만, 자연을 자신 속에 포괄한다는 점에서 동양과 서양의 사유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





4.

『文水萬 개인전ㆍ나비의 꿈』을 보고


화랑에는 일본 교토와 나라의 거리 풍경, 인물 등을 취재한 펜화와 수채화 작품과 함께 文水萬의 Life Work인 나비의 자태를 빌린 시간의 덧없음과 생명의 신비가 원형 캔버스에 그려져 담겨있다.

특히 <영원회귀ㆍ쌀>의 3점의 연작에는 文水萬의 인생 철학이 표현되어 있다.

수많은 쌀알이 수십 수백 유동적인 원형을 구성하고 있다.

마치 끝없는 것처럼.

동양인에게 주식인 쌀은 대지가 가져다주는 생명의 양식이기도하다.

그리고, 검정, 빨강, 파랑의 각 색채로 이뤄진 원형의 작품군은 한국의 역사와 풍토, 인간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거침없는 시간과 헤아릴 수 없는 공간을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색을 제한하면서 원형에 공들인 표현의 작품군에는 文水萬의 진지한 제작 자세가 시공간에 대한 추구로 구현되어 있다고해도 좋을 것이다. ⓒ


2019.2.27


전 이타미시립미술관장

BB PLAZA 미술관 고문

사카우에 요시타로


5.

표면의 가장자리에서 발생하는 사건들

이선영(미술평론가)


성인키보다 큰 둥근 캔버스들은 작가가 작업을 하면서 누렸을 ‘몰입의 즐거움(finding flow)’(전시부제)을 준다. 몰입이란 단순히 대상과의 밋밋한 대면을 넘어서, 깊이 빠져드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없어지는 질적 전화의 단계이며, 예술적 산물 중 최상의 선물일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전념만으로 가능하다. 종교나 향정신성 약물도 그런 것을 가능케 하겠지만, 예술은 새로이 창조된 감각적인 대상을 매개체로 한다는 차이가 있다. 몰입적인 작품에는 파편화된 노동과 다른 총체적 작업, 일상적 문화와 다른 예술, 소소한 쾌락(pleasure)과 다른 열락(jouissance), 그리고 피상적 소통과 다른 전염이 있다. 밀도가 강할수록 전염력은 커지며, 주어진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문수만의 작품에서는 그것은 일단 규모의 차원에서 관철되지만, 작은 작품들 역시 그 밀도감에 의해 비슷한 효과를 준다.

한눈에 들어오는 규모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그 세밀함에 빠져 관객이 머무는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작품 속에 간혹 등장하는 실제 크기의 나비에 감정을 이입시킨다면, 둥글거나 사각형의 평면은 더욱 광활하게 다가올 것이다. 큰 작품 역시 작품 제작 단계에서부터 관철된 강도가 느껴진다. 사진으로만 보면 이런저런 청자백자 접시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의 작품은 작은 접시를 사람 키 크기로 확대시킨 것이 아니라, 작은 접시를 채운 무늬의 밀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큰 화면으로 관객의 눈앞에 펼쳐놓은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도자기를 완상할 때의 그런 아기자기한 느낌을 넘어선다.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는 도자기의 한 요소를 전면화함으로서 새로운 심미적 차원을 여는 것이다. 가령 도자기에 묘사된 푸른 하늘을 나는 학의 모습은 그릇의 한계를 벗어나 더 넓은 평면 위로 날아다닌다. 그 또한 착시이고 상상이지만, 규모가 달라짐으로서 색다른 체험이 야기된다.

그것이 가능한 우선적 이유는 최초 참조대상의 밀도를 유지, 확장하는 변형의 기술에 있다. 통상적으로 몰입을 지향하는 작품은 특정한 대상보다는 전체적인 환경의 연출에 더 주력하지만, 문수만의 경우 개별적 작품에 주목한다는 점이 다르다. 연극적 효과를 지향하는 몰입적인 작품은 시각성 외에 다른 감각들이 총 동원되곤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다른 감각들은 작품 [調香]에 나타나 있듯, 대상 내부로 접혀 들어가 있다. 물론 전시장에서는 여러 작품들이 어우러져 총체적인 효과를 자아내지만, 작품 하나하나의 국면 또한 몰입적이다. 그것은 냉정한 거리감을 두고 하나하나 파악해 나갈 수 있는 심미적 체험을 야기하면서도, 지금 여기와 다른 별천지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직면한 대상 안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정신적 여행(trip)이 가능한 작품들에서 최종적 산물과 과정을 대립시키는 이분법은 무너진다.

그의 작업실에는 둥근 캔버스가 제일 작은 것(지름 36.5cm)에서 제일 큰 것(210cm)까지 켜켜이 겹쳐져 16개가 하나의 세트로 보관되어 있다. 마치 인형 속에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차있는 러시아의 목각 인형 마트로시카 같은 방식으로, 운송 및 보관의 용이 점 외에, 우주 속에 또 다른 우주들이 이어져있다는 세계관을 표현한다. 여기에서 대우주와 소우주는 상응(相應) 관계에 있고, 무한한 계열을 이루면서 서로를 비춘다. 그러나 작업과정이 공개되지 않는 한, 그의 작품이 캔버스에 그려진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다. 둥글거나 길쭉한 형태들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청자나 백자, 금속공예품과 같은 사물의 표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전시장은 작품을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만져보고 두들겨 보는 관객들 때문에 난감하다. 그의 작품은 도자기나 금속공예에서 불가능한 규모의 표면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공예도 그림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인다.

고려시대 청자상감 운학매병 같은 국보급 도자기의 도상을 참조하였으며, 그 산물 역시 고풍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문수만의 작품은 현대미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상한 사물로 다가온다. 이러한 애매함이 현대미술을 궁지로 몰았지만, 동시에 자기 정체성이 되기도 했다. 문수만의 작품에서 반대되어 보이는 것이 하나가되는 역설은 꼬리를 물며 도는 원형 캔버스에 예시되는 듯하다. 원본이 된 도자기들은 3차원적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2차원으로 펼치면서 변형이 일어난다. 여러 형태의 도자기 위에 그려지거나 새겨진 무늬가 원에 맞게 재배치되는 차원의 변주 속에서 없던 무늬가 들어가기도 한다. 그는 도상과 도상 사이의 연결부위에 요구되는 형태를 새로 만들어 마치 원래 있었던 무늬처럼 배치한다. 김홍도의 화성행궁 행차도를 참조한 작품 [with mother]에서도 나타나듯, 넓은 공간은 줄이고, 좁은 공간을 넓히는 식의 변주도 일어난다.

이 복잡한 재편집의 과정에서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다. 미술을 전공하기 전에 기계공학과에서 기계 설계를 전공한 작가에게 미술과 과학은 자연스럽게 융합된다. 그림에만 매몰되어 있는 화가가 흔히 가질법한 기계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작업실에는 작은 형상들을 재현하는데 필요한 돋보기부터 재배치한 도상들을 정교하게 재현하기 위해 중간과정에서 필요한 시트 커팅기 등 다양한 도구들이 캔버스와 물감들 사이에 놓여있다. 그가 가진 기술적 역량은 2차원을 넘어 3차원으로 확장해 가려는 앞으로의 전망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3차원 사물에서 2차원 그림으로 변주는 물감을 이용한 상감기법을 통해 가능했다. 바탕 작업부터 문양, 바니시 처리까지 60번을 넘게 칠하는 작업공정은 작품의 표면이 그림이 아니라, 자기 같은 느낌을 주게 한다. 겹겹이 쌓인 물감을 갈아냄으로서 절묘한 무늬부터 자잘한 크랙에 이르는 선들이 단층처럼 드러난다.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새로이 시도된 것은 청자 뿐 아니라, 청동 분위기를 상감기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청자 표면 위에 분신처럼 사뿐하게 앉아있던 나비가 빠진 작품, 무늬는 없고 크랙만 있는 백자 같은 평면도 보인다. 눈으로 볼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백자 표면 형태의 작품은 원형 캔버스 틀 바깥으로 이미지들을 다 밀어낸 듯하다. 백자 표면 형태의 작품에 거미줄처럼 새겨있는 미세한 크랙은, 오래된 사물을 연출할 때 흔히 하듯 재료나 시간성 같은 우연적 요소에 기대는 방식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가 상당부분 관철된 것이라는 점이 놀랍다. 재료와 조건에 대한 오랜 실험 끝에 크랙은 자유자재로, 즉 넓게도 쪼개고 좁게도 쪼개고, 이중으로도 쪼개진다. 이렇게 깨진(또는 깨트린) 틈새로 미세한 물감을 침투시키고 물감을 갈아내면 일종의 ‘크랙 상감’이 된다. 섬세한 무늬처럼 보이는 크랙은 일일이 그린 것도 아니며, 그대로 방치한 것도 아니다.

구상적인 형태 대신에 크랙이 상감되어 있는 작품들은 마치 모더니즘 말미에 귀결된 텅 빈 캔버스를 떠오르게 한다. 청자 같은 표면을 가진 작품들은 청자를 명품이게 했던 미묘한 색조를 재현하는데 방점을 찍는다. ‘김장철 배춧잎 얼어터진 듯한’ 그런 짙은 푸름부터 ‘녹색이 들어간 우윳빛 나는 청록’까지 작가가 구현하고 또 모델로 삼는 청의 계열은 무한하다. 그에 의하면 청자색에는 빨강, 검정, 파랑 등 모든 색이 다 들어간다. 단지 비율만 틀릴 뿐이다. 이렇게 미묘하게 만들어진 색조 위에서 만이 학도, 용도 날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작품에는 팔랑거리는 나비 또한 가세한다. 나비의 그의 초창기 작업에서 정밀한 눈속임 기법으로 재현된 바 있는데, 여기에서 사각 캔버스는 일종의 수집장이 된다. 한 마리 한 마리 수집하여 날개의 무늬를 관찰하기 쉽게 펼쳐 바늘로 꽂고 학명까지 붙이면, 하얀 상자 안에 안치되어 그림자까지 떨구는 나비 컬렉션이 완성되는 것이다.

문수만의 초기 작업은 재현이라는 방식이 알고 지배하고 소유한다는 방식에 기대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최근 작업에서 작가는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유한 나비들의 핀을 제거하고 청자 빛 표면 위에 풀어놓았다. 큰 수술을 이겨낸 작가에게 나비는 재현 대상만은 아니었다. 문수만에게 나비는 주체이기도 했다. 작품 싸인이 나비에 새겨져 있을 만큼 자신의 분신이다. 나비 한 마리를 정교하게 재현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해야 그려진다고 한다. 청자 표면 위에 풀어놓은 나비는 육체적으로 보다 자유로운 상태를 꿈꾸지만, 배경만 바뀌었을 뿐 그 밀도가 약해지지는 않았다. 나비는 다른 도상들과는 달리 실제 크기이며, 한 평면에 하나씩만 있다. 그것들은 보여 지기 위한 것이 아닌 날기 위한 날개를 강조하면서 그 아래로 그림자까지 떨군다. 바탕이나 나비나 똑같은 환영이지만, 차원을 달리한 환영이 공존하는 것이다.

서양의 정물화에서 꽃과 함께 그려진 곤충은 인생무상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했지만, 동양적 배경을 자연 삼아 날아다니는 그의 나비는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떠올린다. 작가는 나비가 되어서 청자나 백자를 만들었을 도공의 솜씨를 감탄하면서 감상한다. 관객 또한 나비가 되어서 이 작품 저 작품을 둘러 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단계로 변태하면서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성체로 자라나는 나비는 모더니즘의 신조가 된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이 아니라, 이미 씨앗 속에 내재된 잠재력을 차츰차츰 펼쳐나가는 차이와 반복을 실행한다. 그것은 모더니즘 이전의 문화와 예술이 자연의 법칙을 따라 수행해온 규칙이었다. 나비는 수집장이기도 한 이전의 사각 프레임을 벗어나 무한을 상징하는 평면 위에 날아다니며 그 너머를 본다. [Coherence], [Finding Flow] 등으로 붙여진 청동 상감작품은 대칭적 문양을 새긴 청동 표면 같은 모습이다.

녹슨 청동기 같은 푸르스름한 녹과 거뭇거뭇한 얼룩이 오래된 물건의 느낌이 살아있으며, 가장자리로 갈수록 표면은 울룩불룩하다. 또 하나의 작품군은 나비가 없는 청동 도자기 표면 형태의 작품들인데, 마치 우주를 담은(또는 닮은) 동공 형상의 [調香] 시리즈는 향수제조자가 향수를 만들 듯이 섬세하게 제작되었고, 다른 감각과의 조응(照應) 또한 꾀한다. 가장자리로 갈수록 진해지는 그라데이션은 마치 써클 렌즈처럼 입체감을 준다. [poter's wing]이라 붙여진 청자 표면 위에 나비가 있는 작품들은 초기작품에 등장하는 정교한 나비 외에, 다른 작품에도 나타나는 초충도의 나방 등이 청자를 하늘로 삼아 떠다니는 시리즈다. 나비가 단독으로 등장하는 이전의 작품이 정교하게 재현된 나비 안에서 소우주를 발견했다면, 둥근 청자 표면과 결합된 나비는 우주 속의 또 다른 우주라 할만하다. 나비든 자기든 그 형태는 너무 완벽하여 허무해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작가는 때로 화면에 ‘인간적인 부분’도 남겨둔다.

전시에는 원형 캔버스 외에 스마트 폰처럼 네 모퉁이를 굴린 사각 캔버스도 등장한다. 거기에는 신사임당의 초충도와 김홍도의 행차도 등을 변주한 도상들이 원이나 직사각형 구도에 맞춰 재배치된다. 10개의 직사각형 패널을 연결시킨 대작이 나오긴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독특한 인상을 주는 것은 둥근 캔버스이다. 사각형 작품에는 원형이 들어가기도 하고, 원형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둥근 틀은 사각 틀 보다 더 응집력 있고 자족적인 소우주를 이룬다. 그의 작품 [조향]에 나타나듯 둥근 형태는 최초의 폭발 이후에 팽창해 나가는 우주나 그 우주를 보는 눈의 형태를 떠올린다. A. 야페는 [미술과 상징]에서 원은 모든 각도에서 보는 영혼의 총체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정신으로 비유’(플라톤)되었다고 말한다. 꼬리를 무는 선인 원은 유한하면서도 무한하고 정적이면서도 동적이다. 이러한 양면성을 포괄하는 원은 동서고금을 통해 완전함을 상징해왔다.

그 안쪽은 신성하고 바깥은 그렇지 않은 경계가 되어, 자아, 집, 사원, 요새, 도시 등을 구축하는 모델이 되기도 했다. 종교에서 원형과 관계된 도상은 성인 머리 뒤의 후광이나 만다라 같은 것에서 발견된다. 문수만이 애용하는 원형 캔버스는 의미 깊은 상징을 담은 또 다른 상징이다. 그것은 세속적 삶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안에서 경계를 치고 대안의 세계를 구축하는 예술의 방식이다. 예술이란 예술 외부에 있는 것들과 달리, 그 안에서 만큼은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신성한 터전이다. 성(聖)은 당기면서 밀쳐내고 유용한 동시에 위험하고 죽음을 줄 뿐 아니라, 영생불멸도 준다. 엘리아데는 [종교사 개론]에서, 원형에서 신성한 공간이라는 개념을 발견한다. 그에 의하면 주변의 세속적 공간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서 이 공간을 축성했던 원초의 성현을 반복하려 한다. 둥근 원의 중심에는 우주의 중심이 투영되어 있기에, 작품은 세계 창조의 반복이며 우주의 복제이기도 하다.

엘리아데는 원형의 실현이 끊임없는 인간의 욕구라고 하며, 신성한 공간이나 낙원으로 나타나는 초월적 형태에 대한 향수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인간이 항상 세계와 실재와 신성성의 중심에 있고 싶은 바람, 요컨대 자연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조건을 초월하여 신의 조건을 회복하려는 바람이다. 엘리아데는 [이미지와 상징]에서도, 안과 밖 사이를 성/속의 이분법으로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경계로 둘러쳐진 폐쇄된 이 세계를 벗어나면 미지의 영역, 미형성의 영역이 시작된다. 한편으로는 우주화 된 공간이 있고 다른 한편 이 친숙한 공간의 바깥쪽으로 악마, 원귀, 사자, 낯선 존재들이 두려움을 주는 미지의 영역이 있는 것이다. 확립된 질서의 파괴, 원형적 이미지의 소멸은 혼돈으로의, 우주발생 이전의 미분화된 상태로의 퇴행이다. 엘리아데는 인간존재라면 모두 총체적 실재, 신성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중심, 스스로의 중심을 무의식적으로라도 지향한다고 말한다.

즉 실재의 한가운데에 천상계와의 교신이 이루어지는 세계의 중심에 있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뿌리 깊은 욕망이다. 그러한 욕망은 세계의 중심이 그토록 과도하게 활용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낙원에의 향수란 항상, 그리고 힘들이지 않고 세계의 중심, 실재의 한가운데에 있고자 하는 욕망을 뜻한다. 엘리아데는 이러한 주술적 원의 첫째 목적은 이질적인 두 공간 사이에 칸막이를 세우는데 있다고 보았다. 한편 문수만의 원형은 전래의 상징주의를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가장자리로 갈수록 울툭불툭한 형태를 부여하여 중심보다는 바깥으로 향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중심에 자리 잡은 성화된 공간 향유를 넘어, 바깥을 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열린 태도는 전통적 소재를 애용하는 작가로 하여금 고답적인 상징주의를 벗어나게 한다. 상징주의는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중심은 현대의 해체주의자들이 주장했듯이 자유로운 놀이를 방해한다.

일단 원형 캔버스는 완전한 중심모델을 구현하는데 이상적인 매체로 다가온다. 그리고 문수만은 눈, 또는 자아의 상징으로 여겨질 법 한 원형의 상징주의를 충분히 구사하고 있지만, 그 상징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한 머무름이 거부되어야 하는 이유는, 상징이라는 중심을 가정할 경우, 그 역시 재현주의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상만 재현되는 것이 아니다, 관념도 재현된다. 재현주의는 주체/객체의 이분법에 갇혀있다. 객체가 아닌 주체에 방점을 찍는 ‘표현’도 오십보백보다. 문수만의 작품에는 재현만큼이나 생성과 변형이 있고, 앞으로 후자의 몫은 더욱 커질 것이라 생각된다. 그의 작품은 자료가 많이 남아있는 국보급 대상을 소재로 하지만, 결국은 음으로 양으로 많은 변형을 거친다. 도자기의 외양이지만 도자기로서는 불가능한 규모의 실현, 차원의 변주에 따른 공간의 적극적 편집과 연결 부분의 창안, 도상과 도상의 병치, 크랙 처럼 배경에 머무는 이미지를 전경화 하는 등의 방식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문수만의 작품이 상징적이라면, 그것은 광의의 개념, 즉 에른스트 카시러가 [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에서 말하듯이, 감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연결, 즉 외부대상을 고정시키는 수단일 뿐 아니라, 이것을 통해 다시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매개로서의 상징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언어, 신화, 예술, 기술, 과학과 마찬가지로 상징 형식을 가진다. 가령 작가가 상감 청자 등에서 차용하고 있는 여러 도상들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그 도상들에는 고고학자나 역사가, 미술사가들이 ‘객관적으로’ 읽어낸 신화적 내러티브가 깔려 있을지 모르지만, 신화에서 저자는 특정되지 않는다. 신화들엔 저자가 없다. 당대의 상징적 우주를 물질로 표현한 도공들의 이름도 익명이다. 자크 데리다는 [글쓰기와 차이]에서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탐구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한 중심, 한 주제, 한 특권적 참조, 한 기원, 또는 절대적 근원에 있어서의 모든 참조에 대한 선언된 포기라고 말한다.

즉 신화의 통일이나 절대적인 원천은 없다. 신화의 발상지나 원천은 언제나 포착불가능하고 실현 불가능하다. 데리다는 신화라는 무(無) 중심적인 구조에 관한 담론은 그 자체가 절대적인 주제도 중심도 가질 수 없음을 강조한다. 신화의 통일은 단지 경향적이고 투영적인 것일 뿐이다. 데리다에 의하면, 신화의 통일은 해석의 노력에 의해 일어난 상상적 현상일 뿐이다. 중심의 부재는 여기서 주제의, 저자의 부재를 말한다. 데리다는 우리가 중심을 규정할 수 없고 총체화 작업을 완전히 철저히 할 수 없는 것은 중심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기호가, 중심의 대리가 되는 기호가, 중심이 없을 때 중심의 역할을 하는 기호가 덤으로 보충물로 추가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요컨대 중심은 비어있다. 중심을 해체하면 원형의 반영이라는 사고는 사라진다. 반영이 아니라 변형을 위해서, 그렇게도 작가는 원본이라 가정되는 자료들에 충실해왔던 것은 아닌가. 차이를 가늠하기 위해 동일성이 전제되듯이 말이다.

매 전시마다 미묘하게 달라지고 문수만의 작품들은 아직도 진화 중에 있다. 그는 만다라와도 같은 대칭을 각 작품에서 구현하지만, 정작 많은 공력을 쏟는 부분은 중심이 아니라 테두리, 또는 표면이다. 어떤 작품은 그라데이션을 통해 바깥의 밀도를 강화한다. 작가는 중심 부분과 달리 구불구불한 테두리를 도자기의 굽으로 본다. 그는 이 부분을 일본 무사의 검을 끄트머리의 용암처럼 그대로 남겨둔 부분과 비교한다. 이 부분은 캔버스 가장자리를 비롯하여 그 바깥까지 그 파장을 전달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자신의 작품이 궁극적으로 세부적인 묘사를 넘어서, ‘표면을 통해서 그 물질의 본질을 볼 수 있을까’를 묻는다. 캔버스 작업은 도자기 표면과의 유사를 낳을 뿐, 도자 재질과는 거리가 있다. 작품 옆이나 뒷면이 적나라하게 알려주듯이, 작가는 중심이나 내부 보다는 주변과 표면에 집중한다. ‘본질과 외양 또는 원형과 복제라’(들뢰즈)는 이원 항은 하나의 차원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하나의 차원이 몰입을 가능케 한다. 궁극적으로 문수만의 작품은 재현이 아니라 시뮬라크르를 향한다. 질 들뢰즈가 [시뮬라크룸과 고대철학]에서 재현 대신에 강조한 것은 시뮬라크르다. 그에 의하면 시뮬라크르는 퇴락한 복제가 아니다. 시뮬라크르는 원본과 복제, 원형과 재생산을 부정하는 긍정적인 힘을 품고 있다. 들뢰즈는 [의미의 논리]에서도, ‘이마주가 모델에 비해 이차적인 존재이기를 그치고, 속임수가 진리를 내세우고, 원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우주, 단지 돌아감과 되돌아옴의 운동 속에서 본래적인 부재가 분산되며 영원한 명멸만이 존재하는 그러한 우주’를 주장한 블랑쇼를 인용하면서, 모든 정초들을 삼켜버리는 시뮬라크르의 성질을 설명한다. 시뮬라크르는 모든 정초들을 삼켜버림으로서 보편적인 와해를 가져오지만, 그것은 부정적 재난이 아니라 긍정적 사건이다. 이 맥락에서 보자면 문수만의 작품은 원본(이라고 가정된)을 모사하는 2차적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미술보다 먼저 전공했던 과학 기술 공학이 ‘시뮬라크라, 즉 원본 없는 복제의 기술적인 바탕’(도나 헤러웨이)이 되고 있는 새로운 실재를 반영하고 있는 것과 같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원본과 복제 등을 가르는 이분법은 뫼비우스 띠처럼 하나의 실재가 된다. 들뢰즈는 [의미의 논리]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긴 포르투나스투스의 주머니의 예를 든다. 그 주머니는 엉뚱하게 꿰매어진 수건들로 만들어져, 그 안과 바깥이 이어져 있다. 그래서 그 주머니는 세계를 감싸고 있는 셈이며, 안의 것이 바깥의 것이 되고 바깥의 것이 안의 것이 되게 만든다. 이러한 이행은 언제나 표면을, 가장자리를 늘임으로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뫼비우스의 띠의 힘에 의해 표면/가장자리의 다른 쪽을 따라간다. 안과 바깥의 연속성은 심층의 모든 층위를 대체한다. 문수만의 작품에서 고요한 중심과 달리 출렁이는 듯한 가장자리는 구조를 변형시키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공간을 가리킨다. 작가는 화면의 옆 공간 역시 화면으로 보며, 바깥의 기운을 안쪽으로 들여오려 애쓴다. 이러한 원형의 가장자리에는 ‘표면으로 거슬러 올라감, 그릇된 심층의 거부, 모든 것이 가장자리에서 발생한다’(들뢰즈)는 깨달음이 있다. ⓒ



6. 


‘몰입을 통한 자유 의지의 표출’


김성호(KIm, Sung_Ho, 미술평론가)


프롤로그

작가 문수만의 이번 개인전은 작가의 이전 작업과 최근 작업의 대표작을 함께 선보임으로써 작가의 조형적 세계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그의 최근작인 〈Cloud〉 연작은 쌀알을 동심원의 형식으로 화면 안에 무수히 증식, 배열한 추상 회화다. 이 작품은 그의 초기작인 ‘나비나 새 형태의 꽃 그림’을 위치시키기 위한 청자 등 한국적 배경에 대한 여러 조형 실험의 결과로부터 기인했던 유물 이미지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즉 청자, 토기 등 한국적 유물의 3차원 형상을 2차원으로 평면화하는 〈Simulacre〉 연작으로부터 유물의 질감을 탐구하는 〈Fractal〉 연작으로 전개되고 이 연작들이 표방하는 원형(圓形)의 이미지를 작은 쌀알 이미지로 집적하는 방식으로 극대화하는 〈Cloud〉 연작이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견 달라 보이는 이 연작들이 지속하는 일관된 조형 의식과 그 미학은 무엇인가?


I. 평면 위에 입체를 눕히기 - 시뮬라크르 연작

화가들은 오래전부터 풍경이나 인물 그리고 입체의 사물을 평면에 담기 위해서 일루전(illusion)을 생성하는 재현(representation)의 언어를 구사해 왔다. 평면 위에 마치 실제의 사물이 있는 것처럼 만드는 눈속임(trompe-l’œil) 기법을 통해 3차원의 실재를 2차원 위에 감쪽같이 재현한 것이다. 따라서 3차원의 실재를 ‘이미지의 환영’으로 복제하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위상을 견지하는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속성이란 본질적으로 평면이다.

그렇다면, 작가 문수만이 〈Simulacre〉 연작에서 선보이는 재현의 방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작가의 언급처럼, “환조를 평면으로 펼쳐낸 전개도처럼 화면 안에 담고자 한 시도”가 된다. 이른바, 지구와 같은 구체(球體)를 “원기둥꼴이나 원뿔 모양으로 싸고, 시점을 지구 중심에 두었다고 가정하여 경위선을 평면에 투영하여 표시하는 지도 투영법”과 같은 전개도법developed projection)의 방식으로 그는 도자기와 같은 사물을 평면화한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 고대의 유물들은 마치 방패와 같은 원형의 이미지로 펼쳐져 평면 위에 왜상(anamorphosis)으로 가시화된다. 지도라는 것이 지구를 평면의 좌표 안에 안착시킨 왜상의 지표(index)이듯이, 그의 〈Simulacre〉 연작은 유물 외형의 이미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원형의 평면 안에 펼쳐낸 왜상의 지표가 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업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허구’의 시뮬라크르의 철학적 개념을 비틀어 품어 안는다. 그것은 다분히 시점(視點)의 문제와 연동된다. 즉 재현의 환영이 표방하는 시뮬라크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하나의 특정 시점에서 투시 원근법으로 만들어낸 마술적 허구’인 반면에, 문수만의 〈Simulacre〉 연작은 지도에서 구현된 전개도법처럼 ‘사물의 중심에 설정한 가상의 시점을 통해서 ’탈(脫)투시 원근법으로 구현한 허구’가 된다. 달리 말해, 일반적인 조형적 시뮬라크르가 ‘투시 원근법을 통해 평면 위에 입체를 세우는 일’인 반면에 문수만의 〈Simulacre〉 연작은 ‘탈투시 원근법을 통해 평면 위에 입체를 눕히는 일’이 된다.

3차원으로부터 2차원으로 변형된 그의 〈Simulacre〉 연작은 마치 둥그런 방패 위에 문양이 그려진 작품처럼 인식된다. 여기서 도자기 문양은 평면 위에 납작하게 드러누운 채 서로의 거리를 잃고 동일한 크기로 편재화된다. 작품 〈F1-4-2 Simulacre(241804)〉을 보자. 중심축을 기점으로 한 몇 개의 동심원도 그러하지만, 그 안에서 방사형으로 포진된 다양한 문양들은 그의 시뮬라크르 연작이 다만 중심축을 지닐 뿐, 어떠한 주인공도 없이 그저 패턴화된 문양처럼 편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어떠한 문양도 어떠한 이미지도 어느 것 하나 주(主)가 되거나 종(終)이 되지 않는 상황을 통해서 민주적으로 재편한 새로운 지표로 등극한 셈이다.


II. 질료의 자기 유사성 - 프랙탈 연작

작가 문수만의 또 다른 작품인 〈Fractal〉 연작은 〈Simulacre〉 연작이 지닌 문양의 반복적 패턴과 같은 이미지를 계승하면서도 물질감을 극대화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러한 두 연작은 〈Gate of Time〉, 〈Finding Flow〉, 〈Coherence〉, 〈Potter's wing〉 등 또 다른 제명의 연작들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작품들은 〈Simulacre〉 연작에서 발견되는 ‘납작한 원형의 평면화’가 지닌 시뮬라크르 속성을 공유하면서도 일정 부분 저부조의 마티에르 속성을 지닌다. 이러한 저부조의 마티에르는 미디엄이 안료와 만나 이룬 물질감이라는 물리적 속성뿐 아니라 다양한 문양이 반복 생산되는 흐릿하거나 또렷한 패턴 이미지들의 시각적 속성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작품 〈F1-1-0 Simulacre(191804)〉에서는 문양들의 주종이 없는 이러한 민주적 편재 양상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기하학적 문양 외에 식물 문양 그리고 저부조의 마티에르가 함께 같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Fractal〉 연작은 〈Simulacre〉 연작의 후속편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프랙탈(Fractal)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차원 분열 도형’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것은 “전체를 부분으로 쪼갰을 때 부분 안에 전체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기하학적 도형”을 지칭하거나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를 지칭한다. 여기에는 부분이 전체의 모습과 닮아있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재귀순환성(Recursiveness)’이라는 속성을 지닌다. 유형상으로는 ‘결정형 프랙탈’과 ‘비결정형 프랙탈’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대개 수학적 규칙이 적용된 ‘자기유사성’이 높은 도형에서 발견되고 후자는 대개 브로콜리, 고사리, 해바라기, 조개껍질, 벌집 등 ‘자기 유사성’이 낮고 ‘재귀순환성’의 속성을 지닌 자연물에서 발견된다. 특히 자연물에서 발견되는 프랙탈 이미지는 질서와 무질서과 교차하는 가운데 드러난다. 자연의 본성이란 무작위성과 복잡성을 기초로 하는 까닭이다.

문수만의 〈Fractal〉 연작에는 이러한 두 속성과 유형이 한데 겹쳐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복, 증식이라는 특징의 프랙탈 도형이나 당초문(唐草紋)과 같은 유기적이지만 대칭적인 식물 문양이 함께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대칭적으로 보이는 저부조의 마티에르가 동심원의 ‘밖/안’을 향해 방사형으로 ‘확산/환원’하면서 전체적으로 대칭적인 프랙탈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그의 〈Fractal〉 연작은 ‘이미지의 자기 유사성’에 국한되는 프랙탈의 한정적 의미를 비틀어 ‘질료의 자기 유사성’ 그리고 ‘자연의 무작위성과 복잡성’의 개념을 덧붙여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아울러 〈Simulacre〉 연작과 〈Fractal〉 연작이 영향을 주고받는 〈Gate of Time〉 연작은 전통 유물의 이미지를 통해서 과거의 시간을 ‘지금, 여기’에 소환한다는 점에서 공간의 개념을 시간으로 확장하기에 이른다. 문수만의 작업이 이미지, 물질, 시간과 공간이 한데 어우러진 작업으로 특징되는 셈이다.


III. 경계를 순환하는 모듈의 민주적 편재 - 클라우드 연작

회화는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의 분석 이래 조각, 건축 등과 함께 근대기 동안 별 의심 없이 공간 예술로 간주되어 왔다. 당시까지만 해도 회화에서의 시간은 역사적 내러티브를 담거나 시간적 상징을 부여하는 도상학적 차원으로 연구되었다. 모든 것이 탈장르를 표방하는 오늘날의 예술 현장에서 우리는 회화를 더 이상 공간 예술로 속박하지 않는다. 키네틱 오브제를 부가하는 방식을 통해서 실제적 움직임(real movement)을 부여하거나 옵티컬한 효과를 노리는 장치나, 영상과 혼성하는 방식을 통해서 가상의 움직임(virtual movement)을 극대화하는 회화는 이미 시간 예술의 영역과 교차한다.

문수만의 회화, 특히 〈Cloud〉 연작은 회화 안에서 ‘쌀알 이미지’인 작은 모듈의 무수한 집적이 이룬 화면을 통해서 어른거리는 환영을 제공하고 그것이 가상의 움직임을 창출하면서 시간성을 견인한다. 하지만 옵티컬 효과를 통해 시간성을 품는 것은 그의 연작에서 본질이 아니다. 그는 쌀알을 모듈로 해서 더디고 고된 노동을 이어가는 창작 과정과 그 결과물인 멀티플 이미지가 품는 순환의 시간성 개념에 더욱 골몰한다. 그는 ‘작은 쌀알’이라는 모듈의 집적을 마치 ‘클라우드의 폴더에서 모듈을 꺼내어 부분으로부터 전체로 구축해 가는 과정’을 수행하듯이, 천천히 이어지는 창작의 시간성에 몸을 싣고 고된 노동을 묵언 수행하듯이 진행해 나간다.

그런데 왜 쌀알인가? 그는 〈Simulacre〉 연작과 〈Fractal〉 연작의 연장선상에서 고구려와 역사와 유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쌀’이란 소재를 발견하고 그것의 조형적 언어와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3차원 유물의 입체 문양을 2차원 평면으로 변환하는 골몰했던 당시의 작업에서 문양 대신 쌀알 이미지로 치환하는 새로운 〈Cloud〉 연작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생존을 이끌어온 오랜 양식이자 한민족의 주식인 쌀! 길쭉한 비대칭 타원형에, 한쪽에 유사한 형상의 작은 쌀눈을 품은 오묘한 형상! 문수만의 〈Cloud〉 연작에서 모듈로 사용된 이러한 쌀알의 형상 자체는, 대칭의 프랙탈 도형이나 비대칭의 당초문과 같은 식물 문양을 함께 등장시켰던 그의 〈Fractal〉 연작을 조형적으로 계승한다.

흥미롭게도, 그의 전체적인 창작 과정은 매우 복잡하지만 캔버스 위에서의 시각화의 방식은 비교적 간결하게 이루어진다. 다양한 조형 실험을 거친 후 정착된 그만의 조형 방식인 셈이다. 그는 새로운 작업을 위해서, 이전의 〈Cloud〉 연작에서 떼어낸 후 디지털 아카이브로 저장한 쌀알의 이미지를 클라우드 폴더에서 가져와 컴퓨터의 그래픽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병렬 배치하는 여러 시뮬레이션 과정을 먼저 거친다. 이후 신작에 대한 구상과 밑그림을 컴퓨터에서 마친 후, 컴퓨터에서 구상한 ‘멀티플-쌀알’의 이미지를 기계 장치로 옮겨 그대로 타공한 시트지를 캔버스에 붙이고 물감을 일시에 바르는 방식을 사용한다. 명상과 수행의 과정으로 이미지의 하나하나를 만들어 가는 티베트 불교의 ‘모래 만다라(Sand-mandala)’의 창작 방식을 디지털 방식으로 체계화하고 순간의 붓질로 변형한 것이지만, 만다라 회화가 지향하는 명상과 수행을 향한 정신 자체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일시에 그려진 회화에 부가되는 다양한 회화 장치를 통해 이러한 정신을 계승하는 까닭이다. 그는 일률적인 모노톤의 동심원에 변화를 주기 위해 물감을 덧바르거나 닦아 내기도 하고 애초부터 전체를 복잡다기한 색상으로 구성하여 한 작품을 위해 여러 장의 타공된 시트지를 수차례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다. 이처럼 일견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 그의 〈Cloud〉 연작에서, 모듈로 사용된 ‘쌀알 이미지’는, 작은 캔버스에 그리거나 커다란 캔버스에 그리거나, 나아가 3폭의 제단화처럼 이어진 멀티플 대형 캔버스에 그리거나, 언제나 쌀의 실물과 유사한 크기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동심원의 중심으로부터 외부로 확장해 나가면서도 쌀알의 크기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경계를 순환하는 모듈의 민주적 편재’를 지속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조형의 형식이 낳은 ‘공정, 평등, 모두’와 같은 민주적 소통의 메시지라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쌀의 한자인 ‘미(米)’의 형상이 지닌 사통팔달(四通八達) 구조와 더불어 그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쌀이 지닌 내적/외적 본성을 왜곡 없이 드러내려고 작가의 조형 실험이 낳은 심층의 메시지로, 이제 ‘순환’의 세계관으로 나아간다.


에필로그 – 몰입이 표출하는 자유 의지

작가 문수만의 〈Cloud〉 연작이 지향하는 ‘순환의 세계관’이란 그가 직접 말하듯이 니체(F. W. Nietzsche)의 철학적 메타포인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의 세계관과 만난다. 이 세계관은 “영원한 시간은 원형(圓形)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일체의 사물이 그대로 무한히 되풀이되며, 그와 같은 인식의 발견도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내용이다. 니체의 이 개념은 마치 문수만의 〈Cloud〉 연작이 지닌 조형 세계에 대한 해설처럼 보인다. 니체에게서 ‘유일한 실재는 생성의 전체로서의 자연이며 생의 유일한 원리는 힘에 대한 의지’이듯이 우리의 삶 속에서 ‘힘에 대한 의지’는 '더 많은 힘을 원하는' 본성으로 되돌아오길 거듭한다. 니체는 이러한 생로병사가 가득한 ‘현실의 삶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고 순간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운명애(Amor Fati)’를 요청한다. 이것은 그의 철학 전반을 차지하는 ‘허무주의 사유’를 극복하는 유일한 긍정적 사유로 가히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라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수만의 작가노트를 살펴보자: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 마치 유체역학에서 공기 저항은 속도에 제곱 비례하는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그만큼 역경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많아지고 몸에 부딪히는 맞바람은 더욱더 매섭게 다가온다.” 반백을 넘은 작가의 이 같은 진술은 종교 대신 예술을 택했던 그의 삶의 어려운 현실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니체가 영원회귀론을 통해서 운명애를 요청했듯이, 작가 문수만은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선택과 그것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통해서 오늘도 운명애를 가슴에 안고 창작에 나선다. 그것은 예술 안에서 몰입을 통해서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작가 문수만의 작업관과 맞물린다. 이러한 차원에서 관객은 일견 이미지로 가득한 것으로 보이는 문수만 작업의 본질이라는 것이 ‘몰입 속 자유 의지가 남긴 여백’임과 동시에 ‘삶의 대한 성찰의 일단’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나의 여러 시리즈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몰입을 통해 자유롭고 싶은 의지의 표출’이다. 몰입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캔버스를 지배하게 만든다. (...) 화면은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부품처럼 가득 차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체보다 여백의 공간을 더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질서 속에 반드시 자유가 존재하며, 그 속에서도 여전히 규칙은 존재함을 의미한다. 질서와 규칙, 공간과 자유에 대한 표현은 화가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들이 반영된 것이다.”




1.

Symbolic Cosmic Echo / 16th Sooman Moon’s Woonbo Art Museum · Woonbo Culture Foundation Invitation Exhibit


Sunyoung Lee / Art Critic


On the very small round canvas, which is too small to hold the world but bigger than old things such as ceramic or a cigarette case, there is symbolic cosmos with the world compressed. Since artworks that express sounds or echoes originated from Emaile Bell are contained, the word ‘compressed renaturation’ can be appropriate. His works that has round structure integrate many things to one, but minute details are not neglected. The artist cautions himself against excessive concentration on minute details, so he sometimes makes the boundary blur. This omission might be Sooman Moon’s way of containing the infinite in the finite. This exhibit mainly features ‘Simulacre’ and ‘Fractal’ series in addition to ‘Cloud’, ‘Coherence’, ‘Bronze Mirror’ and ‘Gate of Time’. In large round canvases of over 2 meter diameter, circles are arranged in other circles, showing a cosmos in another cosmos. Small cosmoses folded and put in another large circle like magic circle sympathize with each other and amplify meanings.


Nature and relics of cultural heritages that he is mostly inspired from are exquisite, and another original source is engineering meticulousness from his initial major. The master craftsman of this era is an artist and engineer, and in the modern arts with conceptualization progressed, the production process is a major element that enables uniqueness of artworks. His new workroom located at a corner of a factory near Seoul seems proper to be the cradle of artworks that destroy the artificial boundaries that divide art, nature, and handicrafts. His works copy the world including old relics and nature, so they are ‘simulacre’, and are related to ‘fractal’ in that the methods of copying harmonize the great universe and a miniature universe. The material ‘mirror’ is related to mechanism that a certain rule or law is infinitely repeated. Sound is spreading far through the medium of air. To the artist who is passing through ‘door of time’, the linear borders that were clear in precedent works look blur. Their edges are blur like ‘clouds’.


The reason that ‘simulacre’ whose definition is ‘replica without original’(Deleuze) becomes the title of main series is that the main series came from the reference of color, texture and patterns of old relics that he prefers such as white porcelain, celadon and grayish-blue-powdered celadon. Art historians might want to trace potters who started new history by applying historical norms whose start and end are connected like a line, but they just find out that few intact relics and fractures are made by unknown potters. However, there can be forms of each era, but they are not the creature of individuals’ uniqueness either. The artist plays theme music through arrangement. The already existing forms and symbols are changed through arrangement. The new arrangement accomplishes not reproduction but creation. There seem a lot of places for the artist to interfere in most of the empty space created while patterns were moved to round canvases otherwise they might have been on the three-dimensional structure. The space will be wider and autonomy will be made out of reference objects.


Round canvases naturally embrace the process of ‘Ewige Wieder-Kunft(eternal recurrence)’ inherent in his work. The work [Simulacre(241804)] with small circles filling a big circle tells the infinity of recurrence process. Nature also recurs infinitely. Flowers that look dead bloom the next year. Butterflies recur. These plants and animals are situated between circles, and in and out of circles as entities that recur every year while participating in the great history of evolution. Of course, imaginary creatures such as dragons and phoenix are included. These imaginary creatures are not created from nothing, but are complex derived from existing animals. For example, the hog snout appearing as a pattern in his works is also the snout of a dragon. The objects that contain the nature and the process of nature during past periods remain as the aspect of religion like Buddhism(or spiritual system) that was intended to reach the order of nature. Some viewers might consider déjà vu to be bad. The artist makes the existing symbolic meanings not too prominent.


A symbol in his works is not returning to one but is having diversity. Just because a thing has appearance of ceramic, it is not necessarily limited in oriental thing. The layered structure that reminds of ‘great chain of being’, the western view of the world before modern era, also reminds us of the sacred order derived from almighty being. However, as shown in [Simulacre(231804)], his recent works remove the clear boundary. In the middle of unknown world where willow trees are growing on the cloud shaped hill and birds are flying among the trees, there is an existence like sun that might enable all the existences on earth to exist. Radiated lights look like leaves of plants. What accepts lights first on earth is the chlorophyll part. As it gets through each stage,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energy is possible, and through this atavicus process, the artworks hung in front of viewers are made possible. What makes the boundary blur in [Simulacre(201804)] and [Simulacre(181804)] is the cosmos that seems to have thick fog or clouds. 


Normally, inaccuracy becomes accurate, but it is opposite in his works. In his works, the more he works the less accurate his artworks become. It is said that the boundary is perfect until 80% is completed. However, he makes accurate forms blur by spraying paints or applying sandpaper. While the previous celadon work is a style that sticks to perfectionism, recent work seems to let it open. It is evolution towards open structure. The artist re-searches the forms that he implanted with the inlaying technique by grinding. The parts that look hazy like a vintage style are not removed but covered. Except [Simulacre(091803)], the only work that consists of squares, the basic structure of the Simulacre series is circle. The round shape reminds of the celestial sphere due to colors similar to celadon or white porcelain. In his works, these circles are situated like numerous bubbles in different sizes and locations. However, these are not accidental but form inevitable chains. Whether lines are definite or not, the symmetrical composition is the general trend.


Arthur Lovejoy restores the previous stage of space that the modern era emptied through atheism in [The Great Chain of Being]. According to Arthur Lovejoy, the world before the modern era had a sole structure that is definite and easy to understand, and it was not only an obvious form but also the most perfect and simple form that all objects consisting of the world can have. The most representative thing is the celestial sphere, a cosmic constituent unit which stars were thought to have on their surfaces. Since Plato, circles have been considered as the symbol of completeness, and this metaphysical principle has reconciled ego and cosmos. This is the same reason that Sooman Moon’s works remind of the mandala form, which is that the world and I are unified. The aspect that things established in good order in the ‘Fractal’ series return to chaos reminds of the situation when mandala was deleted. Tibetan monks build mandala by sprinkling sand with various colors on the floor and demolish it.


For eternal recurrence to be possible, the previous world should be destroyed. The act of Tibetan monks that looks like playing with sand is edified as a cosmic act. Sooman Moon also repeats establishing and dismantling elaborate symbolic cosmos. What is needed for this change to be possible is blank. Blank might make connotative diversity possible. It might be the reason why deleted(or covered) parts are increasing. If the space where birds and butterflies fly is sky, clouds in recent works highlight process rather than structure. Clouds contain objects of various stages including the crystal in them. Sooman Moon’s elaborate symbolic cosmos is systemic, but this system will also appear and disappear. There are clear forms in [Cloud(011707)], in which butterflies are flying in the middle of space composed of multi-layers of circles, because the background is bright, but the space filled with butterflies means the space is broad enough for the butterflies to move around.


The space where fish are in [Cloud(071803)] is the same. To the artist who says ‘art is not dots but lines’, the fixed dots are swollen and become clouds. Works with clouds or that resemble clouds are harmonious but they are not the cosmos that has no movement. The butterflies and fish in the Cloud series show the circulation phenomena like clouds. The ‘Fractal’ series shows strong feelings that can’t be fixed in any forms. The ‘Fractal’ series that has mostly blue colors even though density and colors are different in the center and surroundings seems like waves, which are the combination of forms and processes. The water here spurts like a well rather than flows like a river. This spatial imagination is not flowing by time or by line but spurting. All of these are the conditions for ‘creation rather than reproduction’(Deleuze). The thick texture in the ‘Fractal’ series looks like lava erupting from crater.


He refers to this form as ‘eruption of lava, feeling of spreading’. He devised this idea from the phenomenon that when lava erupts, the center becomes empty and the center sucks other parts. Since nature never let empty space empty, movement by the difference between density and concentration occurs. The Fractal series, which is mostly 1m diameter, has very high degree of intensity of substances and energy. This means the stage of struggles for existing order to be melted and new order to be created. The stages before and after cosmos are chaos. In thinking, the adoption of time enables not only the visible reality but also the condition of the reality’s appearance and disappearance to be seen. The round looking sub appears as a process of boiling in the picture taken very closely. The Fractal series of Sooman Moon visualizes the flow of energy that will cause the change of objects. The Fractal series, which has imagination of movement but has no actual movement, says objects are the substances of solidified energy.


It is a law that penetrates all from the cosmos to machines in factories. In [Critical Mass: How One Thing Leads to Another], Philip Ball defines heat as ‘disorganized movement of atoms that conflict each other’ (Benjamin Thompson) and says it was possible to invent Carnot cycle device that circulates pistons while gases are expanded(heated) or contracted(cooled) by the flow of heat. According to Philip Ball, the field(thermodynamics) that appeared for 19th century engineers to make better engines now turns to provide the most majestic and fundamental explanation. The Fractal series of Sooman Moon shows the whole process of changes like thermodynamics. The thermodynamics penetrates all different kinds and dimensions from creatures to steam engine. Fractal is also a phenomenon that structures are repeated in different dimensions. According to the poetic expression of Philop Ball, Fractal is ‘a map made from frozen historical events’.


The work [Coherence(031707)] is related to another way of energy, the conveyance of sound. This canvas work that has the feeling of bronze is ‘spreading Emaile Bell’. In the middle of the screen is phoenix, and patterns that spread like bell sounds are arranged in a radial shape. The secret of Emaile Bell made in the 13th century is its different cross sections that create two different wavelengths, and big wavelength and small wavelength intervention each other, creating the undulation phenomenon. The echo sound is so mysterious that there have been a lot of assumptions, but the legend that the bell was made from a human who was melted was proved to be wrong. However, people kept pursuing to hear human sound from musical instruments and from instrument sound from human sound. The title ‘coherence’ is related to undulation, and it is a specific brand name of audio device which is one of major interests of the artist. This work that has no sound shows the imagery of waves.


Douglas Hofstadter defines music as ‘continuity of vibration flying in the air’ and ‘continuity of emotional reaction in the brain’ in [Godel, Escher, Bach]. However, the author says there should be vibration before emotional reaction can occur. The imagery of vibration appears not only in this work that is related to music, but in works of Sooman Moon, which are recursion. According to Douglas Hofstadter, the recursion structure is ‘the structure surrounded by network structure’. The example is a story in another story. Sooman Moon’s works of Fractal arranged in multi-layers of circles in other circles ‘will reach infinite regress by becoming cyclical’(Douglas Hofstadter). Fractal in which cyclical self-cloning is endlessly done and the process that sounds are conveyed are the same shapes. The recursion is ‘based on the fact that same things simultaneously appear on the different layers’(Douglas Hofstadter).


The book title [Godel, Escher, Bach], in which mathematician, artist and musician appear, says that the recursion found in music and art is found in atoms. According to the author, substances consisting of nuclear are protons, neutrons, neutrino, pion and quark, and everything in the world is made from billions of bubbles in bubbles in bubbles. The work [Gate of Time(041803)], in which the flower in the center is situated like the sun, and grass, fish and birds are in the middle earth, gives warm feelings due to its colors. The work [Gate of Time(051803)] paired with [Gate of Time(041803)] gives chilly feelings. While the blue lines are more removed, they seem to disappear to the other side of space-time. Margaret Wertheim says there are not only objects but also space and time were born at the moment of big bang in [The Pearly Gates of Cyberspace: A History of Space from Dante to the Internet]. This concept of space creates cosmological narration. According to [The Pearly Gates of Cyberspace: A History of Space from Dante to the Internet], while big bang created elementary particles such as protons, neutrons and electron, the elements that consist of human flesh and bone such as carbon, nitrogen and oxygen are derived from fixed stars.


In Sooman Moon’s works, all creatures including those that were born afterwards pass through ‘door of time’ as well as space. The big canvas in the shape of a concentric circle expresses the feeling of space that is expanding, and sometimes it gives the feeling of door to pass through space-time. The round shape is connected to not only space but also the imagination about holes(white hole, black hole, circle hole, etc.) that enable time travel. Time in modern cosmology is considered as a different dimension of space. Therefore, this fourth-dimensional compound is expressed as a word of space-time. A mirror-related work, which is exhibited experimentally in this exhibit, is related to the imagination about the movement of dimension. The work [Bronze Mirror Design-Front and Rear View] has the touch of the Fractal series and the patterns in ‘simulacre’ series. The half of the work is left empty. According to the artist, it is ‘a blueprint of a bronze mirror’ with two sides paralleled on one blueprint. The right side is the front side of the mirror, and the left side is the patterns in the back of the mirror.


The artist shows the back and front of the mirror at the same time, which reminds of a sort of threshold that divides this side and that side. The mirror is another door that connects here and there like holes in ‘door of time’, and this imagination appears in odd fairy tales like [Alice in the mirror land]. Thinking about the other side that is invisible is metaphysical thinking, which is infused in viewing works as symbolic cosmos. Sabine Melchior-Bonnet says the figure reflected in the mirror arouses a sense towards different immaterial world that exists over the mirror, and tells people to get over the world that rises to the surface in [History of Mirror]. According to [History of Mirror], the mirror attracts viewers’ eyes to the door through symbols and inference, and to indirect journey that proves another place that is not visible in the middle of visible things. Bonnet takes an example of Plato’s [Timaios], which displays metaphysics of light and reflected image, and says the visible world here is the feature of invisible world and that there is an idea that soul is the reflected image of the sacred.


According to Bonnet, the mirror performs the role of medium in the structure of inference and rank in the tradition of Platonism. The mirror becomes the medium of analogy in Sooman Moon’s symbolic cosmos consisting of chain networks of existence. [History of Mirror] views that the mysterious symmetry in the world of symmetry and correspondence, or paradise of Plato, makes us believe there is equivalent, better, or invisible pair behind our everyday reality. According to him, the dream to go to the other side beyond the mirror is equivalent with the desire to be born in the other side. This shines the hope to harmonize inside and outside, and the attractive hope to live a life of phantom and imagination in the world without the weight of reality and pressure of guilty. However, it is not easy to travel from this side of the mirror to the other side of the mirror. Alice that passes through the mirror doesn’t live smoothly but starts the journey of adventure. The journey from this side of the mirror to the other side of the mirror appears as a maze whose exit is hard to be found.


Sooman Moon’s works that consist of complicated lines are compared with mandala, which symbolizes maze. In the maze, which might be the road to the truth, time becomes an important variable. Old relics that Sooman Moon is inspired by have traces that time left. Lines that are gradually blurred or that are originally blurred in his works imply that there is road instead of showing that there is something at the end of the road. During the process of refining buried roads, new roads are found. In the work that has at least ten layers, roads are not only made but also found. A delicate work [Klopfen(031803)] is as elaborate as other works, but close-carved patterns are not well visible. A symbolic work, in which time-space in limited area is densely filled with roads, is mysterious, but it doesn’t have a decisive meaning like the center that is left empty implies. There is only a road that stretches endlessly. In [The Limits of Interpretation], Umberto Eco sees mystical semiosis in the fused relation that mutually combines the microcosm and the macrocosm. According to Eco, the knowledge of mystery can compare things that are above with things that are below, and vice versa.


The cosmos means that everything is different and is recognized as a tremendous glass room reflected by other things. As Michel Foucault says in [Words and Things], analogous thought is infinite. Therefore, modern science rejected analogous thought. The scientific observation is elliptical orbit, but the analogous thought that sticks to perfection sticks to elliptical orbit. However, science, which is human study, can’t escape from the analogous thought, and art is more like it. In the maze of interaction, the ultimate meaning doesn’t exist. Echo says that the mystical secret is empty secret. The world in the mystical though is covered by wire nets, but the function of communication in this sign is omitted. That’s because the sign is not transparent. The opaqueness of the sign was highlighted even when modern art rejected the reproductionism. Sooman Moon’s works that have increased parts that are erased imply the opaqueness of the sign. This is not the fixed harmony but the result of cosmos that is fluctuating. The meaning and purpose of artistic work can be ambiguous as the meaning and purpose of life are. However, modern philosophy that is represented as the late structuralism intends to say that big meaning is instilled in this situation of drift. ⓒ


2.

A Parade of Nature and Civilization that passes The Gate of Time

Sunyoung Lee(Art critic)


Round circle that surrounds the invisible core, this way, Sooman Moon’s work has several circles in that circle, we can see movement in the static condition. The circle where the ends meet is Jeongjungdong(靜中動). Such circle structure, consistently applied to every work exhibited establishes the equal background to create difference. Power is generated in the context that coincidence is inevitability. Likewise, disorder exists in order. We may add lightness in heaviness, if we include butterfly that he paints so well. This way, Sooman Moon’s works create a dynamic stage where such conflicting values push and pull each other. There’s only center within round works,

make difference among the works. The works that infinitely return in repetition and difference pass [The gate of time] just like the title of a displayed work. His works that include a complicated work process are based on temporality, however that temporality is revealed more in the first exhibit work in 2018. That grows old together with us.


[The gate of time] series, which has the image of bronze mirror relic, implies the rear of the mirror, that is, temporality as well as a space. Mirror fixates a human being to the request of imagination, however, the point of minding the other side instead of the surface of the mirror is to distribute the self to the axis of time. Generally, relics are excavated in the historic site, and the process of corrosion is delayed since they are stored in a museum. Temporality is intervened with variables a lot. The artist, also, went through quite a few trials and errors on determination whether of stopping this process getting old. According to him, some of his works were spoiled. Even it was easier to finish neatly as previous works. That belongs to the process to open a finished process. That is to apply coincidence to an inevitable context. In this exhibition, more processes were added to imply temporality, including scratched or corroded shape, or the shapes buried or coincidentally revealed. Just as vintage jeans require more handwork than normal jeans.


Accordingly, Sooman Moon’s works secure the aspect of an object that is exquisite and atmospheric like old cultural asset. The point where the artist is attracted is not a mere modern art that cannot distinguish one’s own will and freedom. However, his works that has the simulacre attribute is in the middle of modernity. It can’t be said that there are quite a few works of the theme of simulacre, nevertheless, there are few works that are accompanied with exquisiteness to be persuasive. If a work considers the value of cultural asset, isn’t it time to make perfect things more perfect. Those works that pursued beauty completed in a moment are entering into the stage of continuity. Other circles in a circle, here, [The gate of time] with dense spokes in between, looks like the sun. That revolves around the orbit of eternal recurrence that existed before human being and will exist after human history. Such event in spatial level repeats also on the earth. The works with flowers spread in the space among the circles remind of the plants as the intuitive model of eternal recurrence on the earth. Botanists say, bare trees in the winter remind human kind of resurrection, as they rebloom in the next year, though they seem to be dead during the winter.


In Sooman Moon’s works, flowers have organic forms, however they are arranged symmetrically in pairs. That repeats inner rhythm of the nature. For him, the nature is not just the appearance but a process, and such process has a rhythm. Every life with a living heart intuitively has preference to rhythm. The artist imitated the motion of life, instead of repetition of mechanical pattern. Relation among works is also rhythmical. Just like the wheels displayed on the wall of the exhibition hall, round shapes have illusions that seem to move without actual movement. Those works with different diameters that maintain equal density and intensity form a virtual perspective on the wall of the exhibition hall. For example, small things seem far away, while big things seem close. They seem to move left and right. And between the front view and the rear view. They not only revolve on their position, also, move left and right, front and rear. As the planet revolves the stars while rotating, movement is synchronic in several dimensions. Here, space becomes temporalized.


His works have lots of layers, in this exhibition, they carve the layers of overripe time just like excavated relics. Some of them came up from the bottom, it can be expressed as the stratum of time. They do not merely disappear behind time and space. Because new flesh appears as old bark disappears. The relation among the layers up and down of the works essentially give latent motion to the painting work in acryl on the canvas. Some rise and some sink. Round shape has a sense of order, however the lines that continue while they look like being discontinued are the factors that disrupt sense of order. Straight shapes become dusts. Entropy(degree of disorder) increases. [Klopfen], which includes the meaning, a work made by beating, repeats circles in circles including 8 circles symmetrically arranged in the central layer, the outer circle, the biggest circle, operates a power to disrupt stability inside the world of circles. In work [Simulacre(041708)], such power occupies the whole.


Work [FRACTAL(081612)] feels like raging waves. Work [Simulacre(041708)] scarcely soothes the rough background surface where gold patterns rage, however nobody knows what would happen to the lines of the patterns. In the work [Simulacre(061709)], the space of a crane flying among the circles is not flat. The representative work of this exhibition, [To Father(021609)], shows that human history is not different from the nature. This exhibit work, which enhanced the sense of relic, implies that the universal human history including the theme of power or death is eventually similar to the nature. Modern romanticists perceived that the ruins for which they went crazy was the history of naturalization. Today, ultramodern technology intends to write a new history by rearranging the design of the nature. Human regulation imitates the rules of the nature. The nature does not appear as the nature itself. Nature does not appear as itself, but is mediated by culture. Art is in the climax of culture. So far, reenactment event is sometimes held in the historic site in Suwon Hwaseong.


Somewhere there’s the model—however, how the unknown potters of the previous period would work based on which ‘original’—but Sooman Moon’s works that were created by transformation little by little have the attribute of ceremony(儀禮) just like the painting of King Jeongjo’s parade. Ceremony is not a mere old custom or irrationality. The society itself has the attribute of ceremony. Ceremonial thing in the art is decoration. Modern art, ‘tradition of newness’ also, is impossible without the previous custom. Sooman Moon’s works, that enjoy amusement through variation, also have a connection to decoration. However, mechanical repetition as decoration or fixed technique is a bit different. However, perfect technique in the original decoration and ‘alluring aspect’(Jean Baudrier) accordingly are still remaining. His works, which contain huge energy both mentally and physically, cause surprise to the general audience. Ceremony repeats the initial model, however, the first one is ambiguous. Repetition without the original informs that his works have the attribute of simulacre, not the copy.


Round structure without beginning and end is considered as a proper image of simulacre. Round structure that surrounds the layer of time evades the finite composition. Disturbance of materials frequently occur in the process of imitation. ‘Simulacre that disassembles dual section of original/copy’ (Gilles Deleuze) abandons virtuality. Sooman Moon’s works are like ceramics as pictures, while they are like metals when they look like ceramics. In this exhibition, some of his works have the sense of celadon, while they are white porcelain. For example, let’s watch his butterflies that he paints so nice. His butterflies, very real even when he paints without watching the actual ones, are creepy rather than beautiful when we carefully look into them. When it becomes too delicate, it’s like a fantasy instead of reality. Maybe it can be said a fantastic illusion, since it’s not a butterfly but a picture of butterfly. Variation of material or technique is also definite. In his work [To Father(021609)], the original is a painting, however the images that the artist restored in digital are expressed in dual inlaid work. That technique is usually applied to potteries, however he made is with the bronze color paint that shines in a dark background.


The artist reproduces the metallic surface with the paint. Final texture that appears through the layered work process after being coated with gold color is revealed with metallicity. This work reproduced the parade of King Jeongjo who visited the tomb of his father, Prince Sado, who tragically died, as the original, in the structure of circles. He rearranged the spectacular structure in width and height 15meters with a circle. He intended to contain the spectacular and monumental work in the type of a bowl. If the original created by Kim Hongdo and painters is open to the left and the right since it’s linear, Sooman Moon’s work preserves the sense of huge parade which included as many as 1,800 persons and 800 military horses, while pursing the parade circularly. To make the linear structure round, intervals among the objects were adjusted. Soldiers were arranged more densely on the outer circle. Just like a telescopic view of a history. Round frame that pulls a distant space ahead zooms in time.


The artist’s interest in [King Jeongjo’s parade to Hwaseong Neunghaeng] was influenced by the monumental restoration art work [Monarchs’ parade] which the artist was deeply inspired in Dresden. The realized that such a treasure of Europe can also exist in Korea. White porcelain or celadon, some people consider them as dead tradition or stale cliché, inspire him. [Cloud] series spread the pattern of celadon on the circle. The work [Cloud(051709)] with flying cranes overlaps infinity with the sky where the birds fly. However, clear sky is not the one that puts on the layers of time. The title, cloud, began from Unbo Kim Gichang’s cigarette box, who enjoyed smoking, however an aspect was emphasized, which cannot be patterned differently from the first handicraft. Human being cannot define the movement of smoke particles or the outskirts of the cloud. The spokes of the work [Cloud(041708)], which looks like the wheels of time, are in organic lines as plants, not straight lines.


Sooman Moon’s works are antique, simultaneously, remind of chaos of modern science, complexity, and fractal theory. As the narration inherent in such theories went beyond the classical science based on strict causal theory, some part was overlapped with artistic narration that pursued diversity, which seemed to be related to the artist’s academic background as an engineer. The artist’s inborn language cannot be ignored, whatever he performs, henceforth. His ‘Cloud’ has a very stable composition in symmetry. However, stability is not eternal, but a momentary fixation. That is not a static balance in the strict geometry, but a metaphor of the balance inherent in the nature. James Klick says, in [Chaos theory; Order in disorder], the shapes treated by classical geometry are line segment, flat surface, circle, sphere, triangle, and cone, which intensively abstracted the reality and strongly inspired platonic philosophy of harmony.


Artists discovered ideal beauty from the figures, and the astronomers who insisted on geocentric theory established cosmology using them. However, it was revealed that the figures were abstracted in a wrong way to understand that complexity. Science determined the importance of oval, instead of geometrically perfect circle, and the earth was not the center of the universe, nor flat. However, Sooman Moon evaluated the idea, ‘the earth is flat’, is pure in some way. James Klick said, new geometry reflects rough and tough universe, which is not round and smooth. That is the geometry that has lots of holes, in hollows, cut, twisted, and mutually entangled. Geometry in Sooman Moon’s ‘Clouds’ belongs to tough geometry that such theory implies. We distinguish cumulocirrus from cirrus clouds, however the cloud is not fixed for a moment. The image of cloud or fog often appeared during the dynamic period. Imagine William Turner’s pictures which drove Michel Serna Gille Deleuze, who extremely refused all fixed and static things.


If the sky of Sooman Moon’s work is a space, the clouds or the birds (or insects) floating there imply time, instead of space. The philosopher Deleuze views time from chaos. Deleuze defines chaos, in his [What is philosophy], as infinite speed of every shape that faintly rises and soon scatters every direction, not disorder or nothing(無). According to Deleuze, chaos includes every available particle, which appears without consistency, instructions, and result, then soon disappears. That means a gap as the potential state that draws every possible shape. Sooman Moon, also, intends to draw reality from potentiality. His round works wait for the moment of open, continuing revolution as a dial of a treasure house that contains the secret of nature or art. The speed is slower than technical innovation of information revolution era, but never stops.


[Simulacre] series has a method to be applied both to art and science. The work [Simulacre](071709)], full of linear patterns, models borderless nature. Various borders that compose the work [Simulacre](061709)] become faint from the outside. Sooman Moon’s works are physically hard, however the implication of them is fluid. That is the image of hot liquid or gas, not a cold and solid matter. Linear order is rapidly changed by the energy. Energy drives linear order into chaos. The sky and the cloud swirl. How would time flow in such space? Scientific philosopher, Michel Serr, distinguished his theory of chaos from the classical linear theory in his [Explanation]. Michel Serr, who emphasizes that time flows complexly, which is complicated and unexpected, points out that the weather and time originate from the same word ‘temps’. Just like the warm current, Sooman Moon’s big and fluid whirl shows small whirls therein. The same in fractal series.


Sooman Moon’s works, where static harmony and dynamic continuity are combined, have a system, however they are not stiffly structured. His system is systematic only in respect that ‘Every system is bound energy’ (Michel Serr). Due to such fineness, the work [Simulacre](081709], which looks like a firm shield, has dynamics the whirls of vines between the area of large circle (great universe) and small circle (micro cosmos) like whirls that we do not know the beginning and the end. Also, it reminds of ‘complexly entangles relationship in human life dimension and network world’, according to the artist’s words. Michel Serr says, in [Hermes], a whirl is rhythmic and directivity simultaneously. According to him, the whirl that runs away revolving in circle becomes a metaphor of a situation. Serr says, nothing is formed without this essential whirl, and anything cannot exist in reality without this. Time comes in such chaos. However, chaos in Sooman Moon’s work has an invisible pattern.


The artist posted a point-blank title, ‘fractal’ onto this series, just like ‘Simulacre’. The work [FRACTAL(081612)], where dynamic power that rushes to the center from the edge is revealed to the rough surface, reminds of the sea which continues changeable movement of the surface with burning lava from deep inside or inexhaustible energy. That came from the rough surface(bark of Maehwa) of a bowl. Tradition becomes a source of infinite inspiration for the artist, along with the nature, here, variation of dimensions occurs when the artist creates the pattern of pottery, which he refers to, into a painting. A blank space is made as three-dimensional substance goes to flat, he follows the natural rule in the way of filling the space. ‘Fractal’, a Latin word meaning ‘broken state’ is the inner principle of the work that expresses the appearance that breaks up passing the gate of time. In [Klopfen] series, meaning ‘made by beating’, also, the space that repeats scales and the circles in circle repeat similarity. Fractal shape, regularity in irregularity latently lies in the cigarette smoke, cloud, and warm current.


Philip Bole said, in [The society from the viewpoint of physics – events that continue in the critical mass], the reason why the phenomenon of endless repetition where the structure in big scale becomes smaller scales, that is, fractal, drew attention of physicians during the early 1980s is because such patterns were similar to the organic shape of the nature. Leaves repeat the branches of a tree. Because the branches fill the allowed space with very high efficiency. Fractal level is the mathematics that expresses the efficiency to fill the space. According to Philip Bole, the representative characteristic of fractal is similarity of shape or form, nevertheless magnification is different. James Glick said, in [Chaos theory; order in disorder], research on irregular pattern of the nature and infinitely complex shape has an intellectual cross point, which is self-similarity. Sooman Moon’s works, which have self-similarity(類似), or self-likeness(相似), the substance that fills a circle or circle in circle is this fractal curve.


Sooman Moon’s work, has such complex and organizational structure hidden therein, as the fractal theory implies. Fractal, which implies self-similarity, is symmetrical. Of course, symmetry that James Glick pays attention to is, symmetry between large scale and small scale, not left and right or up and down. Sooman Moon’s works also have difference among the scales. For example, the world of circles in circle in work [cloud(051709)]. Same in the relation among the works. The cloud also is fractal like the arrangement in the tree or mountain chain, and snowflakes. All these shapes are ‘materialization of dynamics in physical form’, which ‘means return, that is, the pattern in pattern’ (James Glick). Above all, they show ‘a paradoxical result, an infinite road in a finite space’ (James Glick). That’s the aim of the art—‘Art intends to create limitedness that restores limitlessness’(Deleuze)--. Also, that is the aim of religion that human beings with limited life long for limitlessness.


The ambiguous dimension in Sooman Moon’s works also has a common ground with fractal theory. Yoshimasa Yoshinaka takes examples in [Science and philosophy, two mirrors], such as ‘the coastline of the rias coast in the natural world, the shape of trees, winding river, and straightly continued mountain’ that Mandelbrodt paid attention in 1975. The writer says, the fractal dimension of the landscape of the mountains on earth is about 2.1. That is above flat surface, however below three dimensional level. In other words, that’s above two-dimension below three-dimension. There’s such ambiguous dimension also in Sooman Moon’s works. He paints three-dimension like pottery into ‘painting’, and he creates them precisely, however they are not flat as picture. The thickness of his works is thick, which is treated formatively, and some works begin from the edge. The frame of his works is not transparent. There’s material opacity. System is disrupted by energy, and the energy forms another system. In Sooman Moon’s works, which fill the space with diverged time just like fractal figures, ‘gate of time’ is not only one. Here, time that includes history flows long with ‘complex diversity’(Michel Serr). ⓒ


3.

The Place of Existence for Creation

Sunyoung Lee (art critic)


It is a fundamental narrative of the modern era that universal division of labor increased both productivity and isolation of humans. Some proposed an alternative in the form of revolution or reform, but the dualistic nature of progress or development is an ongoing paradox that is still affecting us. The only way to overcome the fragmented reality as a result of extreme division of labor in our daily lives is through leisure. However, consumption to fill one’s leisure supports isolated labor. Can art propose an alternative to this vicious cycle, or to those who are dismissed even by the vicious cycle? Unlike divided labor, art is a holistic activity that requires not only one’s imagination but also the dream, subconscious, and every drop of sweat. Although art can be a pain to some, it can also be a source of joy to others. Art as a holistic activity causes ‘Finding Flow,’ which was a theme for the recent solo exhibition of Moon, Sooman in Daegu.

After spending his 30s as a successful venture entrepreneur, he became an artist in his 40s, and, for that reason, he must have stronger faith in art and rely on it more than anyone else. However, the Korean art scene does not share his vision, although he seems likely to continue his work regardless of such ‘objective’ vision. The art scene, in which multiple biennales are held each year, only reflects fragmented works in a fragmented way and, as a result, fail to convey the messages of art as a whole. The pictures of artworks printed on monthly magazines do not reveal the essence of the artworks and there are only limited explanations. They are simply filled with unfinished paintings and articles. Products that were created within their own fields cannot be fully enjoyed. And such fragmentalism continues, probably because of the power behind it. Unfortunately, it is reckless for artists to pour everything into their works as it is becoming more and more obvious that power is what you need in order to make mediocre works stand out. Everywhere you go, they only talk about money and connection.

If, in a fashion show, you see only grotesque clothes that nobody would be able to understand, you will need to question the power that enables these clothes to be put on the stage, even if nobody will buy or wear them, rather than simply blaming the incomprehensible nature of fashion. Thanks to those who arbitrarily display biased information, art is becoming more and more exclusive. Moon, Sooman’s works, regardless of their scales, show highly concentrated density and strength in style, and it seems to be part of the artist’s strategy as someone who is far from the power that supports absurdity. Each of his round paintings is complete on their own, and this enables his works to travel around the world without any ‘hidden’ power behind them or even the artist himself. His upcoming solo exhibition ‘陶工の翼(Poter’s wing)’, which is to be held at Gallery Kitanozaka (北野坂) in Kobe, Japan, in October, shows his works in which different elements were placed according to his own rules.

With delicate elements such as flowers, butterfly, and even void and cracks placed by using exterior materials that are generally applied to ships, his paintings are paradoxical in that, to open them, you need to close them. Only the perfect can be ‘together.’ Different pieces of his paintings share a similar image according to the series, as if they were cut off the same stem. While a stem is diachronic, a section is synchronic. A section in a stem satisfies both self-sufficiency and continuity. They have the past and the future and also enjoys the fulfilled present. They exist and disappear at the same time. This method enables containing the whole in parts, rather than leaving the parts as separate entities. The audience can restructure continuity from such discontinuity. In one painting, you see a flower fully blossoming, in another, you just see a butterfly, and, in others, you see just void and cracks. The plate-like round canvas contains a void.

The round frame serves as a symbol suitable for conveying the sense of nothingness or infinity. It maximizes the nature of art, revealing infinity with finiteness. In the [陶工, the poter] series, the artist shows changes in stains or brightness, for the audience who may resist (or fear) blank. [Filing empty-2], which reveals a celadon void filled with cracks, reminds us of some divine act to create various shapes of topography by flicking a surface. [調香, make a perfume] series and [脈, vein], for which Moon won an award in Japan, shows the flow of force such as with fragrance and sound that dissipates from the center. When these energies become materialized, they would turn into a mountain or valley, just like in his paintings. All solid things such as mountains and valleys must have been a type of energy at one time. It is also a network of energy, like the pulse of butterfly, that is omnipresent in his other series. In Moon’s paintings, such pulse is sometimes realized in fine forms like cracks. 

Fine cracks, which are affected by temperature and pressure, imply disconnection of what was once connected. The thick pulses seem disconnected in his paintings but are connected underneath. The [Finding Flow] series is comparable to mandala, as it arranges flowers on the celadon background and sometimes fill the space between the center and outer edge of the paintings with complex patterns, through which the viewers get lost and gain enlightenment. The round canvas is still but conveys movement. However, the center is as quiet as the hub of a wheel. Sometimes, like in [調香-04], a tornado is lying beneath the paintings, producing and absorbing everything. The center plays an important role in his paintings that are small yet infinite. Jean Salem, in his book Ancient Atomism, introduces the philosopher Epicurus who viewed the space as being infinite. His these that ‘there is an infinite number of worlds’ also applies to Moon’s works at the center of which lies potential movement.

According to the ancient atomism, when the cosmos was created, tornadoes of different kinds of atoms fell out of it. Atomists believed that the cosmos consists of atoms and void. The number of atoms and size of void are also infinite. To them, the cosmos is ‘overall infinite and the subsets of it, i.e., atoms and void, are also infinite’(Lucretius). In such infinite cosmos, atoms make up the world by various combinations and arrangements. The [Finding Flow] series, which contains plant shapes, show potential movements like spokes. In a painting of the [陶工の翼] series, plants are arranged like spokes. The center of a wheel does not move. This center is something that ‘moves while not moving’ (Aristotle). In this context, the butterfly, which is at the center of the [陶工の翼] series is not fixed. It is a center of the movement for ‘eternal return (Nietzsche)’ along the circumference, and this center changes gradually through repetition and difference.

Butterflies must coevolve with humans, reacting subtly to the ecosystem. The [陶工の翼] series features atavistic butterflies, which are a trademark of Moon. From the early days as an artist, he has used butterflies as an icon that shows diversity of the nature. The butterflies in his paintings maintain a consistent form and, thereby, maximize small differences. It is a way of maximizing diversity through one. When you see the butterflies, each of them placed on a single canvas, it is like the butterflies change the pattern with each flap of their wings. And this movement perhaps changes the time and space to which they belong. The flapping wings cause a subtle wavelength and sends the ‘butterfly effect’ to a time and place that is far away. The strong pulse and fine cracks shown in other paintings of his are visual representation of such wavelength. The artist simulates diversity of the nature. Although there are pictures of butterflies above his worktable on which various tools including a magnifying glass are placed, he no longer looks at butterflies or the pictures of them when painting.

The paintings of Moon Suman are precise but not representative. Representation cannot convey such diversity and amusement shown in his paintings. The fine downy hair you can observe through a magnifying glass gives a strange effect, but it is the butterflies’ wings that are at the center of the diverse look. Instead of being fixated on a particular image of butterflies, he imitates the process through which a butterfly is born and goes through metamorphosis. The brush strokes create certain waves, and, when the fine details are added, the pattern of the butterfly is crystallized. This means, coincidence plays a role in the process of painting a butterfly and a background for it. In Moon’s paintings, butterflies are more like fantasy. And that is why they are so clear. As a referent, butterflies are a key to entering into the fantasy world. The white background often found in his early works, which reminds us of collection boxes, transformed into pottery with cracks or corroded bronze. The surfaces with fine cracks or corrosion give the artificial background a natural feel. 

What does not change is the shape that represents the characteristics of a butterfly and presence of a shadow, which gives the illusion that the butterfly is real. The symbol of beauty and diversity that used to bed confined in a white rectangle now settled on the color and shape of infinity. However,. Butterflies, which the artist can now paint without reference, are his alter ego that takes the central place in his paintings, representing finiteness within infinity. The colors and patterns of butterflies are also infinite. The artist shows infinity within infinity. The small size does not weaken the infinity. Moon’s works maintain consistent strength and density regardless of the size. All of the round canvases in this exhibition have a symbolic effect on their own, unlike neutral, rectangular canvases. His paintings have a sound within silence, like movement within stillness. Both the square canvases in his early days and the more recent round ones are perhaps like the CD he once made for ‘fun’ as a music aficionado.

His handmade CD, which you can imagine seeing in a record store, is a product of simulation without reference, just like his paintings. Both the round and square canvases were used only for unique cases as an icon, rather as a general frame, throughout the history of art. Music discs turn time into space and material while providing mesmerizing experience to music lovers. Round and square frames have symmetrical stability and represent perfection. In the history of art or alchemy, we often see circles encasing a square or symbols representing a perfect human being. Our desire for perfection may be attributed to various sources, such as religion and technology, but, fundamentally, it is related to aesthetic experience. Even dictators were immersed in such aesthetic experience. It provokes the desire for material possession and, that is why, CDs are still available even when digital music became the norm.

In Moon’s paintings, the round disks and square frames that contain the disks symbolize the perfect time and space that spurs qualitative leap of the time and space that is otherwise meaningless. The images on a circle or square create unique synesthetic experience based on image and music. The round frame is a multi-layered symbol of the sky, spirit, and ego. While the butterfly is the artist’s alter ego, it represents another ego within his ego. It pursues perfection, like idea. Siobhan Roberts suggested, in the book [King of Infinite Space], which centers around the life of a geometrician, Plato is the successor of Pythagoras who believed that all things are generated from numbers. Plato, who said ‘God always applies the principles of geometry,’ noted circle, sphere, square, and cube as ideal geometrical forms. They were believed to exist on a higher level of the world, apart from the physical reality.

The circle and square frames in Moon’s paintings represent logical rigor and absolute purity. The butterflies combine imitation and original idea, and the images carved on the ceramic or bronze ware and the round frame surrounding them are all symbolic. Ernst Cassirer, in [Concept symbol format in the structure of the humanities], suggested we are not surrounded by the nature, but, rather, that we are living in the cultural world constructed by our perception and this cultural world is a system of various symbolic forms consisting of certain rules of creation. When we view Moon’s paintings based on the concept of symbols defined by Cassirer, sensual objects, including both the nature (butterfly, sky) and the artificial (ceramic ware, bronze ware) obtain spiritual and universal nature and the spiritual advances toward the sensual world through symbols. It is the symbols that bridge the nature, which has been destroyed in the modern era, and art. In Moon’s paintings, technology is also included in this bridge.

However, regardless of his past history, Moon is now a painter who paints with oil or acrylic paints on a canvas. Artists deal with infinity in different ways than philosophers or scientists do. The philosophers Deleuze and Guattari, in their book ‘What is Philosophy?,’ argued art is also reasoning process like philosophy and science, but through emotion and perception. According to them, between science and philosophy and art are networks woven with infinite correspondences. Each concept is at the center of vibration, in their relationship to other concepts. For that reason, the whole resonates, rather than occurring in a series or being consistent with one another, just like Moon who attempts to create resonance through visible/invisible pulses and the cracks he makes on the canvas surface. Deleuze and Guattari viewed the uniqueness of art lies in restoring infinity through finiteness. Art has different methods than philosophy or science. According to these philosophers, philosophy attempts to save infinity by applying consistency to infinity. And science, by contrast, gives up on infinity in order to obtain instructional relationships.

However, art attempts to create finiteness that restores infinity. In Moon’s paintings, we find the ‘composition that returns infinity’ conceptualize by Deleuze and Guattari, as shown in the surface of the round canvas and butterfly and the relationship network of various patterns that are arranged in strange ways. In his paintings, space is dense with different patterns and subtle stains, but the void (negative space) is essential. It places distance from the possibility of turning the artwork into a finite formal system under the name of perfection. Here, movement takes place not only between visually similar frames and icons, but also between multi-layered symbols. The symbols are not fixed but fluid and resonant. And it is typified by the concept and shape of ‘pulse.’ The pulse unfolds on the ego and the sky, that is, the round canvas. Here, the clear symbol is the idea of correspondence between the microcosm and macrocosm.

Correspondence is not a chaos of categories but an alternative reasoning of humans who became distant from the nature. At this time when the position of humans became more unsettled than ever, we need to look toward the analogical reasoning. It is also often found in mythology and in Eastern philosophy. In Moon’s paintings, correspondence unfolds through reasoning on infinity. Quoting Cusanus, Cassirer sets two forms of relative infinity that opposes the god, in ‘The Individual and the Cosmos in Renaissance Philosophy.’ One is revealed through the cosmos and the other in human mind. In the former, infinity is realized by the fact that the space expands endlessly without spacial limits. Moon’s round canvases in which actual or potential concentric circles are found show correspondence between microcosm and macrocosm like in The Individual and the Cosmos in Renaissance Philosophy.

According to this book, during Renaissance, humans were thought to both surround and be surrounded by the cosmos and ego by the world. In a time of incomplete fragments, holistic thinking is necessary more than anything else. Science and technology that improves productivity through extreme division of labor, which is the most predominant means of domination, diminishes humans. They are irrelevant to humanism, in both positive and negative ways. To be sure, the hierarchical cosmos of Renaissance is only possible on a symbolic level in this time, after the scientific revolution. And the symbolic cosmos emphasizes creation as much as existence. According to The Individual and the Cosmos in Renaissance Philosophy, there are two distinctive narrative means, i.e., one for the field of existence and the other for creation. According to Cassirer, strict knowledge exists only in relation to the permanent, i.e., things that are always identical to themselves and eternally consistent.

On the other hand, the things that are limited in time and change in different moments cannot be grasped by knowledge. Moon’s paintings, which leave a large negative space to accept changes, promote not only a place of existence but also creation. The round canvas contains blue sky and changeable reality. Jean Salem, in Acient Atomism, introduced atomists who argued movement would be impossible if everything is full. According to him, atomists believed, without void, there is no movement and that the void is the cause of movement. Here, creation does not mean making something out of nothing but forming something from debris of the previous world. The simulation of particles that are created and disappear in Moon’s paintings emphasizes creation. And the simulated creation is in contrast to representation and production. His works take the Korean or Eastern background and form, but are at the meeting point between Eastern and Western philosophy in that they surround the ego with the nature. ⓒ




生成のための存在の場所

イ・ソンヨン(李仙英, 美術評論家)


普遍化された分業が、生産力と共に人間の疎外を増大させたという逆説は、近代に対する批判の中心を成す叙事である。これについて、あるものは革命、またあるものは改革という選択肢を提案してきたが、進歩または発展の両面性は、依然として我々の足枷となっている現在進行形の矛盾である。極端な分業によって破片化した状況を克服する日常的な方法は、せいぜい労働以外の時間の余暇を通じてのみ見い出される。このような悪循環、または悪循環にさえも進入できていないか、脱落した猶予を与えられた人生に、芸術は代案を提示す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分業化した労働とは異なり、芸術は個人の想像はもちろん、夢と無意識、粉骨砕身の努力を要求する総体的な活動であるためである。果てしない芸術的プロセスは、あるものにとっては苦難になるが、またあるものにとっては楽しめるものともなり得る。総体的活動としての芸術は、最近大邱で開催されたムン・スマン個展のテーマである「没入」(Finding Flow)を紡ぎ出した。

成功したベンチャー起業家としての30代に別れを告げ、40代から美術を始めた彼は、誰よりも芸術の力を信じ依存していたのである。しかし、ムン・スマンが一歩遅れて所属した韓国の美術界は、そのようなビジョンを持っていた訳ではない。もちろん、彼はそのような「客観的」ビジョンとは関係なく作業を継続できる人物に見えるが、である。ビエンナーレだけでも一年に何度も同時多発的に開催されるほど、制度的に肥大化した美術界も、破片化した作品を破片的に反映するだけである。美術に対するメッセージには、全体が含まれていない。毎月発刊される雑誌に収録された作品の写真は、作品の全貌を見せられず、これに対する説明も十分ではない。中途半端な作品、未完成の文章で埋め尽くされている。それぞれの領域で生産されたものは、完全に享有されていない。このような破片性が継続する理由があるとすれば、それは背後にある権力のためだろう。不幸にも、作家が作品にすべてを注ぐことは、無謀な出血行為であり、不十分な作業の結果物を引き立たせるために必要なものは、目には見えない権力であることが明らかになっている。どこに行っても、金と人脈の話ばかりである。

ファッションショーでは、誰にも理解できない異様な衣装ばかりが登場した場合、観客は、ファッションの難解さをとがめるのではなく、誰も見ず、買って着ることもないのだから、勝手にすればよいという形式の舞台を可能にした裏の権力を見極めなければならない。偏向した情報を恣意的に並べる発信者のおかげで、美術はますます少数者のものとなっている。ムン・スマンの作業は、作品の規模に関係なく、密度と強度が高く凝集したスタイルであるが、それは理不尽を自然化する権力とは遠いところにある作家の“戦略ならぬ戦略”と思われる。コインがどこからかコロコロと転がってきたような丸い作品群は、その一つ一つが充実している。断片として充満した作品は、作家自分をはじめ、いかなる「背後の」権力もなく世界を闊歩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するだろう。今年10月、神戸のGALLERY 北野坂で開催される個展「陶工の翼」で展示される作品は、作家のゲーム原則に基づいて作られた断片にさまざまな要素を含ませている。

花や蝶、さらには虚空や亀裂のような繊細な素材を、船に塗る外装材で堅固に仕上げた彼の作品は、閉じておくことで開かれるという逆説がある。完璧なものだけが「共生」できる。それぞれの断片は、一つの茎を切り落とした断面のように、シリーズごとに同様の相を持つ。茎が通時的であれば、断面は共時的である。ある茎の断面のような形状は、自足性と連続性を同時に満たす。それらは、過去と未来を持ちながらも、満たされた現在を享有している。それらは、存在しながらも生滅している。切り取った短編のような作品は、最大限に含蓄された瞬間を盛り込むことで、空間芸術が時間を処理する別の方法である。そのような方法は、部分を部分として放置することなく、部分の中に全体を盛り込むことを可能にする。観客は、このような不連続性の中で連続性を再構成す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ある作品は、花が溢れんばかりに広がっており、ある作品には蝶が一匹ずついたり、ある作品には虚空に何もなく亀裂だけがある。皿にも似た丸いキャンバスは、虚空が込められている。

端と端がつながった丸い枠は、無、または無限を込めるのに適した象徴的形式である。それは、無限を盛り込む有限としての性状や、芸術の属性を最大化する。「陶工」シリーズで、作家は、空白に対する抵抗(たまは恐怖)を持つ観客のために、染みや明度に変化を与えている。亀裂に満ちた青磁色の虚空を表現した作品 [Filling empty-2]は、万物が由来するある表面を弾いてさまざまな地形を作りだす神的行為を想起させる。[調香]シリーズと、[脈]は、中心から外部に広がっていく香りや音のような力の流れを示している。そのようなエネルギーが物質化すると、作品の表現のように山や谷のような姿になるだろう。山や谷をはじめ、「すべての固体は、いつかはエネルギー」(ミシェル・セル)だったはずである。それはまた、他のシリーズで表現される蝶の脈のように、生命体にも偏在するエネルギーの網である。ムン・スマンの作品で、脈は、クラックのような微細な方法で具現されることもある。

温度と圧力の影響を受ける微細な亀裂は、つながっていたものからの断絶を暗示する。断絶は、連結を暗示する。彼の作品で、断絶されたように見える太い脈は、その下で相互につながっている。[Finding Flow] シリーズは、様々な青磁色のベースに花の形状を配置し、時には中心と外郭の間の空間を、複雑な模様で埋め尽くし、迷路での彷徨を通じて悟りを得る曼荼羅のようである。円形のキャンバスは、停止した中での動きを内包している。しかし、スポークの中心のように、中央は静かである。時には、[調香-04]のように、作品の中心にすべてのものが生まれたり、吸い込まれる渦巻きが潜在している。小さいながらも無限の空間を盛り込んだような作品において、空(から)の中心は大きな役割を持つ。ジャン・サレム(Jean Salem)は、『古代原子論』で、宇宙を無限と見た哲学者エピクロス(Epikuros)を紹介している。「渦巻きから生まれる世界の数は無限である」と言ったエピクロスのテーゼは、空の中心に潜在的な動きがあるムン・スマンの作品にも適用される。

古代原子論者によると、一つの世界(cosmos)が形成される時、あらゆる種類の原子の渦巻きが宇宙から離れて出現した。原子論者たちは、宇宙が物体と虚空で構成されていると考えた。物体の数や虚空の大きさもまた無限である。原子論者にとって、宇宙は、「全体的に無限であり、その部分集合である物質と巨大な虚空もやはり無限である」(ルクレティウス(Lucretius)。この無限の宇宙の中で、あらゆる種類の結合と配置のおかげで、原子はこの世界を造成する。植物の形状がある[Finding Flow]シリーズでは、まるでスポークのような潜在的な動きを見出すことができる。[陶工の翼]シリーズでは、植物がスポーク状に配置された作品もある。スポークの中心には動きがない。この中心は、「不動の動者」(アリストテレス)になる。このような脈絡から見ると、[陶工の翼]シリーズの中心にある蝶は、固定されているとは言えない。それは、円周に沿って「永遠に回帰する」(ニーチェ)動きの中心であり、この中心は繰り返しと差の運動を経て少しずつ変化する。

生態系で微妙に反応する蝶も、やはり人間と共に共進化する。隔世遺伝的な蝶がいる[陶工の翼]シリーズは、ムン・スマンが得意とする蝶描画が発揮されたシリーズである。作業初期から始まった蝶という図は、自然がどれほど多彩なものであるかを示すものである。作品の中の蝶は、同様な形を維持することで、細部の違いを最大化している。これは、一つを通じて多様性を最大化する方式である。丸いキャンバス上に蝶が一匹ずついるものを一度に見ていると、蝶が羽ばたきをするたびに柄が変わるようである。そして、その羽ばたきは、 自分が属している時空間さえも変化させるものである。蝶の羽ばたきは、微妙な波長を起こしながら、遥か遠くにある時空間にまで「バタフライ・エフェクト」を伝達す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彼の他の作品で、力強い脈や微細なクラックはそのような余波を形状化したものである。作家は、自然の多様さをシミュレーションしている。拡大鏡をはじめ、様々な器具が置いてある作業台の上に蝶の写真が貼られているが、もはや彼は、蝶や蝶の写真を見ながら描いてはいない。

ムン・スマンの作品は、精巧ではあるが再現ではない。再現では、そのような多様性と遊戯は不可能である。拡大鏡で見ると、緻密に描かれた綿毛も奇異な感じを与えるが、多様さの印象を主導するのは、蝶の羽の部分である。彼は、特定の蝶をイメージとして固着させているわけではなく、蝶が発生し、変態する際に行われる過程を模倣している。筆はある波を生み、その後に細筆が加わり、蝶の模様として結晶化される。蝶という対象はもちろん、それが位置する背景を作る過程で偶然的な要素が作用する。彼の作品では、蝶は幻想に近い。幻想だからこそ、これほど鮮明になれる。蝶という指示対象は、幻想の世界に入るための端緒である。初期の作業で、収集箱を思わせる白いベースは、亀裂が入った陶磁器や腐食した青銅のような色と枠に変化している。微細な亀裂や腐食した金属のような表面演出は、人為的な背景も時間によって変化する自然のような姿を与える。

変わらないのは、蝶の特性を最もよく表している形と、実物と見紛うほどの影の存在である。白い四角形の中に閉じ込められていた美しさと多様性の象徴は、無限を象徴する色と形の上に安着している。しかし、変わらずコレクションのように中心に存在している。実物を見ずに描けるほど没入していた素材である蝶は、自分の分身であり、この分身は無限の中の有限を象徴するベースの中央に位置している。蝶の羽の模様も無限である。作家は、無限の中に無限を織り込む。規模が小さくても、このような無限性が弱まることはない。ムン・スマンの作品の特徴は、規模に関係なく、強度と密度が維持されるという点である。この展示のすべての円形キャンバスは、以前の四角いキャンバスのようにイメージを盛り込む中性的なベースではなく、それ自体が象徴的な効果を発揮している。彼の作品の中には、停止の中で動きがあるように、沈黙の中に音が内在する。初期には、蝶が位置していた正方形のキャンバスや、現在の丸いキャンバスは、音楽愛好家の彼は「遊びで」作ってみたCDの形を模倣している可能性がある。

商標を付ければ販売も可能と思われる彼の手作りCDは、彼の絵のように、元のない複製(シミュレーション)の産物である。円形はもちろん、正方形のキャンバスは、美術史的に聖像のような独特な場合に活用されており、絵としては普遍的ではないフレームである。音楽が流れている間、音楽愛好家を恍惚とさせてきた音楽ディスクは、時間を空間化、物質化する。対称的な安定感を確保している円形または正方形の枠は、完璧さのイメージである。美術史や錬金術の伝統的なイメージで、正方形を包む円や、円の中の正方形の中に完璧な人間を象徴する図像がしばしば発見される。完璧さに対する感覚は、その起源が宗教や技術など、多くの種類があると思われるが、基本的には審美的な体験である。独裁者さえも、そのような審美的な体験に陥ることがある。それは、物神的な所有欲を刺激し、音源が普遍化された時代にも、消えない媒体として残っている。

ムン・スマンの作品で、円型のディスクとそのディスクが入っている正方形のフレームは、無意味な時空間を質的に飛躍させる完璧な時空間の象徴である。円型や正方形の上に刻まれたイメージは、音楽とシナジー効果を起こし、独特な共感覚的体験を呼び起こす。丸い枠は、多彩な青磁色を抱く天空であり、精神、そして自我という重層的象徴である。蝶が自分の分身であれば、自我の中のもう一つの自我とも言える。それは、イデアのような完璧さを目指している。シヴォーン・ロバーツは、ある幾何学者の生涯を書いた著書『無限 空間の王』で、万物を数と見なしたピタゴラスの後継者をプラトンと見ている。「神はいつも、幾何学の原理を適用する」と言ったプラトンは、イデア的な幾何学形状として、円、球、正方形、立方体などを挙げた。これらは現実には存在せず、物理的世界とは独立した、これらが属すより高い世界に存在していると信じられてきた。

ムン・スマンの作品で、円や正方形のフレームは、イデアのように論理的な厳密さや絶対的な純粋さを指向している。模写と創案が複合された蝶、そして陶磁器や青銅器に刻まれた模様のようなイメージ、そしてこれを包んでいる円形の枠は象徴的である。エルンスト・カッシーラー(Ernst Cassirer)は、『人文学構造における象徴形式の概念』で、我々は自然に囲まれているのではなく、我々の認識によって構成された文化の世界に生きており、この文化世界は、一定の生成法則で構成された、様々な象徴形式の体系であると述べている。カッシーラーが定義した象徴の概念に基づいて彼の作品を見ると、自然(蝶、蒼空)や人工(陶磁器、青銅器)のような感覚的なものは、象徴を通じて、精神的かつ普遍的なものを獲得し、精神的なものは、再び象徴を通じて感覚的な世界へと進む。象徴を通じて、近代以降、バラバラに千切れた自然と芸術が再会する。ムン・スマンの作品では、技術もこのような出会いに含まれる。

しかし、過去にどのような履歴があったとしても、彼は、現在はキャンバスの上に油絵やアクリルで作業する画家である。芸術が無限を扱う方式は、哲学や科学とは異なる。哲学者ドゥルーズとガタリは、『哲学とは何か』で、科学や哲学に劣らず芸術も思惟するが、それは情緒や知覚を通じた思惟と見ている。著者らによると、科学・哲学と芸術の間には、無限の相応で編み上げられた織網が、構図の間に位置している。各概念は、他の概念との関係において、振動の中心を成している。そのため、全体は互いに接続したり一致するのではなく、共鳴する。ムン・スマンが、様々な可能性を込めたキャンバスの表面を打って亀裂を作り、見える/見えない脈を通じて共鳴を図っているように。ドゥルーズとガタリは、芸術の固有さを、有限を経て無限を取り戻すことと見た。芸術の方式は、哲学や科学とは違う。著者らによると、哲学は無限に一貫性を与えることで、無限を救おうとする。逆に、科学は指示関係を得るために無限を放棄する。

しかし、芸術は無限を復元させる有限を創造しようとする。ムン・スマンの作品で、ドゥルーズとガタリが概念化している「無限を取り戻してくれる構成」は、無限大に向かって開かれている表面から見つけることができる。丸いキャンバスの表面と蝶の表面、そして変形を図るかのように奇妙に配置されたあらゆる模様の関係網がそうである。彼の作品で、空間は、見えそうで見えない染みから、隙間なく敷き詰められた模様まで、様々な密度を持っているが、何もない空間(虚空)は必須である。それは、変形を準備しながら、完璧さという美しい名の下で、作品を有限な形式体系に還元することができる機能性に距離を置いている。ここで、運動は、似たような視覚像を持つ枠と図像の間だけではなく、重層的な象徴の間でも起こる。ここで象徴は、固定されたものではなく、流動しながら共鳴する。「脈」という概念と形状がその例である。その脈が展開される場は自我であり、空(そら)である円形のキャンバスである。ここに、鮮明な象徴は、小宇宙と大宇宙の相応という思惟である。

相応は、範疇の混沌ではなく、自然から疎遠になった人間の代案的な思惟である。人間の位置・価値が、かつてなく揺さぶられているこの時代に、参考すべきものが相応という古来からの類比的(analogy)思惟である。神学で普遍的な類比的思惟は、東洋思想にも違和感のない概念である。 ムン・スマンの作品で、これらの相応は、無限に対する思惟を媒介として展開される。エルンスト・カッシーラーは、『ルネサンス哲学における個体と宇宙』でも、クサーヌスを引用しながら、神に対抗する二つの形態の相対的な無限さを設定している。そのうちの一つは、宇宙を通じて現われ、もう一つは人間の精神から現われる。前者では、宇宙が如何なる空間的限界もなく、無限の広さに拡張されているという事実を通じて、絶対的な無限性が具現される。時間とそれの無限な継続に関する覚り、その継続を停止させ、思惟を通じて確認可能な計量に還元させる覚りもまた然りである。同心円、または同心円が潜在しているムン・スマンの丸いキャンバスは、『ルネサンス哲学における個体と宇宙』のように、小宇宙と大宇宙の間で相応を成す。

『ルネサンス哲学における個体と宇宙』によると、ルネサンス時代に、人間は宇宙に対して、そして自我は世界に対して囲まれると同時に囲む存在だと考えていた。ルネサンスの人間は、神と無限の宇宙に包み、包まれる関係をとっているのである。充満な断片ではなく、不完全な破片の時代に何より必要なものは、ルネサンス時代の全人的な思考である。現代において最も支配的な方式、すなわち、極端な分業を通じて生産力を高める科学技術は、人間そのものを抹消していく。肯定的な意味でも、そうでなくても、科学技術はヒューマニズムとは無関係である。もちろん、近代の科学革命を経験したこの時代に、ルネサンス式の階層的な宇宙は、象徴的な意味としてのみ有効である。この象徴的宇宙は、存在と同じくらい生成を重視している。『ルネサンス哲学における個体と宇宙』によると、哲学には互いに厳格に区分されている二つの叙述の手段、つまり存在の領域のためのものであり、もう一つは生成の領域のためのものがある。カッシーラーによると、常に存在するもの、すなわち、常に自分自身と同じであり、恒久的に不変なものについてのみ厳密な知識が可能である。

一方、生成するもの、つまり、時間的に制限されており、その瞬間瞬間に変化するものについては、知識によるそのような把握が不可能である。変化を受け入れるために、広く残しておいたムン・スマンの作品の空間は、存在の場だけではなく、生成を促す。青磁色の空(そら)が込められた丸いキャンバスは、空という変化に富んだ実在が込められている。 ジャン・サレムは、『古代原子論』で、もしすべてが隙間なく満たされていた場合、運動は不可能だと述べた原子論者たちを紹介している。彼によると、原子論者たちは、虚空がなければ運動は生じ得ず、虚空が運動の原因と考えた。ここで、生成は、無からの創造ではなく、以前の世界の残骸から来るものである。ムン・スマンの作品で、生まれる粒子と消える粒子が共に流動するようなアンティークな陶磁器や青銅器の表面に対するシミュレーションは、生成を強調している。シミュレーション/生成は、再現/生産と対照を成す。彼の作品は、韓国的、または東洋的なベースと形状をとるが、自然を自分の中に包括しているという点で、東洋と西洋の思惟が出会う地点に存在する。ⓒ


4.

「文水萬個展・胡蝶之夢」をみて


画廊内には、日本の京都や奈良の街並み、人物などを取材したペン画や水彩画の作品とともに、文のライフワークである蝶の姿態を借りた時間のはかなさや、生命の不思議さが、円形のキャンバスに塗り込められている。

とりわけ<永遠の回帰・米>の3点の連作には、文水萬の人生哲学が表現されている。

無数の米粒が何十何百という流動的な円を構成している。

あたかもエンドレスのように。

東洋人にとっての主食たる米は、大地がもたらしてくれる生命の糧でもある。

そして、黒、赤、青の各々の色彩に寄る円形状の作品は、韓国の歴史や風土、人問を象徴するだけでなく、とどまることのない 時間や計り切れない空間をも感じさせてくれる。

こういった色を限り、円に拘った表現の作品群に文水萬の真摯な制作姿勢が,時空間への追求として具現されているといっていいだろう。ⓒ


2019.2.27


(元・伊丹市立美術館館長)
BBプラザ美術館顧問

坂上義太郎


5.

Events happening at the edges of the surface

Seon-young Lee (Art Critic)


The round canvases that are bigger than the average adult height let people have the enjoyment of ‘Finding Flow (Mihaly Csikszentmihalyi)’ that the artist also feels when immersed in his work. Immersion involves falling deeply into something beyond emotionless confronting. It must be a step of the qualitative change that allows the division between one’s subject and object to be disappeared, which can be defined as the best gift as an artistic result. The achievement is only possible through deep concentration. Religion or psychoactive drugs can also allow the same effect but there is distinction that a newly created sensible object becomes a medium in art. In the immersive artwork, there are whole processes unlike fragmented labors, art unlike everyday culture, Jouissance unlike pleasure and infection unlike superficial communication. The stronger the density, the bigger the infectivity. Also, limitation of given time and space can be overcome. Soo-man Moon’s painting fundamentally accomplishes it in scale but his small works also bring out the similar effect from their density.

 

Although the small paintings can be captured at a glance, details let audience stay longer in front of them. If one puts one’s emotion on the butterfly, often appearing in the artist’s paintings in actual size, round or rectangular surfaces would be approached more extensively. The accomplishment is also felt in the big works from the early stage of the processes. One can think that the artist’s big painting as a celadon or white porcelain plate when seeing from a photo but it is actually an extension of a small plate into the height of a person while maintaining the density of patterns rather than just an extension. In the result, his paintings go beyond decorative feelings of ceramics. As one of the charming elements of ceramics comes in front, a new esthetic level is opened. Sometimes the blue sky and the flying crane on ceramics spread beyond the limitation of ceramics on surfaces. They are also illusions and imaginations but their scale offers a new experience.


The primal reason that they can offer a new experience is on the maintenance of the reference’s density on the works and the technique of extension during the process. Immersive artworks generally puts importance on overall installation rather than a specific target but in Moon’s case, the artist focuses on individual pieces. In other words, immersive artworks that aim for theatrical effects call visibility following all other senses while Moon folds all of them into his works as seen in the painting Combining Smells (調香). Of course, his individual paintings gather in an exhibition space and bring effects together but each of them is also immersive, which tells how they allow one to have esthetic experiences from each painting while having an objective distance and to fall into the different world. In the artist’s paintings, offering a psychological trip that aimlessly wanders within encountered objects, the dichotomy that conflicts a final result and process is collapsed.


In the artist’s studio, sixteen round canvases from the diameter of 36.5cm to 210cm are piled as a kind of a set. It seems like a Russian matryoshka doll, a set of wooden dolls of decreasing size placed one inside another. This way not only allows easy transportation and storage but also expresses the view of the world that there are spaces inside a space. Macrocosm and microcosm here are in the corresponding relation and reflect each other while forming infinite affiliation. However, until his process is opened, audiences are hard to believe that the artist’s paintings are done on canvases because round or oval forms remind surfaces of objects such as celadon, white porcelain and metal crafts. As a result, his exhibition often confronts a helpless situation from audiences who see and try to touch and tap the paintings. How his paintings enable the scale that ceramics or metal crafts cannot realize locates the artist’s works in a vague place, which is neither a craft nor painting.


Although the artist’s references are national treasures such as Cheongja Sanggam Unhangmun Maebyeong (celadon vase with inlaid crane and cloud design) of the Koryo Dynasty and the results are elegant as well, Moon’s painting come as a strange object that cannot be easily defined as what general contemporary art does. This ambiguity has driven contemporary art to a corner but also become its identity at the same time. In Moon’s paintings, the paradox that involves the ending of contradicting matters to one point seems to be presented in round canvases that rotates around. The ceramic references are three-dimensional but how the artist spreads this into a two-dimensional form creates a change. New patterns are sometimes added when various painted or carved patterns on ceramics are rearranged in order to fit in a round shape of a canvas. The artist creates forms that are needed between connections of images and they exist as they have always been. Also, as seen in the work With Mother that referred to the Korean artist in the 18th century Hong-do Kim’s painting, Hwaseong Haenggung Hangchado (procession to a temporary palace), some variations involving that wide spaces are cut or narrow spaces are extended are done.


The artist has help from a computer for this complicated re-editing process. Since he has majored in the design of a machine in the department of mechanical engineering before studying art, art and science naturally blend together to the artist. He is not repulsed by machines, which can come to an artist who falls only in art. There are diverse tools such as reading glasses to represent small images and cutting machine for a sheet to detailedly represent rearranged images during the process along with canvases and paints in his studio. His technical capability will be greatly beneficial to his future work that attempts to extend into three-dimensions beyond two-dimensions. It has been possible to change a three-dimensional object into a two dimensional object from the inlaying technique. The process of more than sixty layers of paints from the background to the patterns and the final varnish cover makes the surface of his paintings not like painting but porcelain. Covering layers of paints again and again reveals lines created from exquisite patterns to small cracks as one layer. 


The new paintings for the exhibition, held at Suseong Artpia in Daegu, do not only contain celadon as a reference but also present the inlaying technique with a feel of bronze. There are some paintings without a butterfly that always sits on the surface of celadon and paintings having no patterns but cracks like white porcelain. The paintings like white porcelain that have no specific things to look at seem to have pushed all the images out of frames of round canvases. The very fine cracks spreading like a spider web on them have not relied on coincidences such as timing like in the ordinary way but surprisingly appear from the artist’s intention. After the artist’s sincere experiments on materials and conditions, cracks are unrestrictedly split into wide, narrow and double cracks. The artist makes paints minutely permeate the gaps between those cracks and sharpen them, which finally becomes a sort of ‘inlaid cracks’. The cracks that look like fine patterns are neither individually painted nor neglected.

 

The paintings with inlaid cracks instead of representations remind the paintings of empty canvases, followed at the end of Modernism. The paintings have the surface of celadon mark with the representation of their delicate colors that determine celadon as a masterpiece. From the ‘dark blue color seen in a cabbage leaf that pops from the cold weather during the kimchi-making season’ to the ‘milky bluish green with green’, the variation of a blue color that the artist expresses or puts in his mind is infinite. According to him, the color of celadon has all the colors like red, black, blue and etc. but just ratio is different. A crane and dragon fly on the color that he delicately created. A butterfly joins in some paintings. A butterfly has represented in his early paintings as a trick. It was painted on a rectangle canvas and this canvas became a collection box, which implies that individual butterflies were carefully collected, spread with pins so that patterns on wings can be easily seen, and titled with scientific names each in a white box of a canvas. Shadows were even depicted as well.

 

Soo-man Moon’s early paintings tell that the technique of representing relies on the process of understanding, dominating and possessing. However, the artist in the recent paintings erases the pins that hold butterflies and lets them fly on the celadon-like surface. Butterflies are not just there to be represented anymore to the artist who had overcome a high-risk surgery. Butterflies are also the main agent to Soo-man Moon. As he even signs his name on a wing of a butterfly, a butterfly represents his alter ego. In order to depict a butterfly detailedly, the artist has to stay at one place and keep one position. Butterflies flying on the celadon-like surface now dream to be freer than the physical condition but the change is only a background and the density is kept same. Butterflies are in their actual size unlike other images and stay one by one on each canvas. They are not there to be shown but wings to fly are emphasized and even drops shadows. The background and butterflies are same illusions but they are different dimensions of illusions coexisting together.


Insects, painted with flowers in the Western still life painting, refer to an allegory of the transience of life but butterflies flying in the oriental background remind Chuang-tzu’s Butterfly Dream. The artist becomes a butterfly and enjoys the skill of the potters who created celadon and white porcelain. Audiences can also become butterflies and look around the paintings. A butterfly that metamorphoses into several states and grows as a final being with beautiful patterns realizes the difference and repetition of how modernism’s principle is not newness for newness but opens potentials inherent in its seed one by one. It had been a rule that the culture and art before modernism carried out according to the law of nature. Butterflies fly on the surface symbolizing infiniteness beyond a rectangular frame that is also a collection box, and look over. His bronze-inlaid-paintings, titled as Coherence, Finding Flow and etc., have the surface of bronze that is carved with symmetrical patterns.


The feeling of the old objects is there with bluish rust and blackish spots like rusty bronze ware and as it goes to the edge, the surface becomes rougher. The other group of paintings is the series having the surface of celadon without a butterfly. This Combining Smells (調香) series reminding a pupil of eyes as if it embodies the universe is delicately created like a perfumer makes perfume, and attempts to correspond to other senses. The gradation, getting darker as it goes to the edge, gives volume like ‘circle lens’ does. The paintings, having a butterfly on the celadon-like surface and titled as Poter’s Wing, are the series containing not only the exquisite butterfly, appeared in the early paintings, but also the moth from the Korean traditional painting of grass and insects in the background of the celadon-like surface as a sky. If his early paintings found a microcosm in the exquisite recreation of a butterfly, the butterfly, blended with the round surface of celadon, would mean the universe in the universe. However, whether it is a butterfly or the artist, the form is so perfect that it may seem vain. Thus, the artist sometimes leaves ‘humane qualities’ in his paintings.

 

There are also rectangular canvases that the four corners are trimmed to be round like a smartphone along with round canvases in the exhibition. The representations of images referring to the Korean traditional painting of grass and insects by Shin Sa-im-dang and the painting of Hangchado (procession to a palace) by Hong-do Kim are rearranged for the composition in the round and rectangular canvases. Also, the big painting, connected by ten rectangular panels, is included but still the round canvases are the one that gives a unique feeling in his exhibition. The circular shape is added into the rectangular paintings or the rectangular frames are transformed into the circular shape and this roundness creates the more cohesive and self-sufficient microcosm than the rectangular frames do. As also seen in the painting Combining Smells (調香), the round form reminds the expanding universe after the first explosion or the eyes looking at that universe. A. Yaffee in his book Symbolism in the Visual Arts tells that a circle is comparable with the allegory of the spirit (Plato) from the fact that a circle symbolizes the wholeness of a spirit of every aspect. A circularly continuing line of a circle is finite and infinite, and static and dynamic at the same time. As a result, a circle, embracing this double-sidedness, has been symbolizing perfectness across the ages and in all countries of the world.


The boundary of a circle sometimes divides the world into two parts, a sacred place and a not sacred place, and becomes a model of constructing an ego, home, temple, fort, city and etc. Images relating to this circle appear behind a saint as halo or in a mandala in religion. Soo-man Moon’s frequently used round canvas is another symbol containing the other meaningful symbol. It is realized in the earthly life but it is a way of art that constructs the alternative world by defeating the boundary within it. Art is a sacred base that one can play as much as one wants within it, unlike other fields. Sacredness drags while pushing, becomes helpful while falling one into danger and even gives eternal life. Mircea Eliade in his book Traité d' histoire des religions explains his concept of the sacredness in a circular space. According to him, this space attempts to repeat the primal sense of the saint who consecrated the space by isolating from the surrounding earthly spaces. Since the center of the universe has been projected in the center of a circle, the artist’s paintings are the repetition of the creation of the world and the reproduction of the universe at the same time.


Eliade explains that the realization of a circle is an endless desire of a human being and nostalgia over a sacred space or a transcendental place appearing as a paradise. It must be a man’s will that always wants to live in the center of the world, the reality and sacredness, in other words, a will that wants to regain a god’s condition beyond a man’s through a natural method. Eliade also explains about the outside and the inside through the dichotomy of sacredness and mundaneness in his book Images et symboles. According to him, uncharted or unformed territory starts when going beyond this closed world with boundaries. There are a space like the universe on one side and uncharted territory on the other side with unfamiliar existences like a devil, lemurs and the angel of death out of this familiar space. The destruction of established order, the extinction of the original image, is regression to the confusion, the original state before the occurrence of the universe. Eliade says that all the human beings ultimately aim for the overall reality, the center that gives sacredness to them and the center of them even if it may happen in the unconscious state. 


Therefore, the desire to be in the center of the world where the communication with the celestial world is possible in the middle of all the existences is deeply rooted in a man’s heart. This desire explains the reasons that the center of the world is excessively used. The nostalgia of a paradise always means the desire to be in the center of the world, the middle of all the reality without difficulties. Eliade sees that the first purpose of this shamanistic will comes from the wall standing between two different spaces. Meanwhile, although the circular form of Soo-man Moon has the traditional symbol of a circle, there is a difference that it heads to the outside rather than the center while giving rough forms as it goes to the edge. This must look the outside beyond the pleasure of the scared space in the center. This open attitude allows the artist who uses the traditional medium for his practice to break the abstruseness of symbolism. The symbolism has one center and this center disturbs the free play as the modern debaters of deconstruction have insisted.


First, the round canvas appears as an ideal medium to realize a complete model for the center. And although Soo-man Moon effectively expresses the symbol of a circle that can be also considered as an eye or ego, he does hold on to it. This is because the symbolism does not also go beyond the idea of ‘representationalism’ when it becomes the center. Not only phenomena but also ideas are represented. This ‘representationalism’ is locked in the dichotomy of a subject and object. Also, the “expression”, marking when appearing as a subject rather than an object, is not that different. There are elements of creation and transformation as much as representation in Soo-man Moon’s paintings and the artist seems to develop elements of creation and transformation more in the future practice. Even though the references of his paintings are the national treasures that have a great amount of information, they go through diverse stages in the process of transformation. The realization of the appearance of ceramics in the unrealistic size, the active editing of a space and the creation of connection for differences of dimensions, the arrangement of images, and the foreground of the images that sits on the background such as cracks are a few examples that Soo-man Moon shows.


When defining his painting as a symbolic practice, it is not only a connection of the sensible and spiritual matters, in other words, a medium to fix the outside objects but also a symbol that becomes a medium to see the outside world through that connection as Ernst Cassirer says in his book Begriff der symbolischen Formim Aufbau der Geisteswissenschaften. In that sense, art is symbolic as language, myth, technology and science do. Let’s think about the meanings of the artist’s various images, created from the references of the inlaid celadon, as an example. There may be mythical narratives by the archeologists, historians or art historians who read art more with objective eyes in those images but a creator does specifically exist in myths. Also, ceramists who created the universe into symbolic objects in the history are left anonymous. Jacques Derrida says that the most interesting part in the research of the anthropologist Levi-Straussian comes in on the declared renunciation of all kinds of reference in the context of one center, one subject, one privileged reference, one origin or the absolute source in his book L'Ecriture et la différence.


Thus, there is no unification or absolute source of myths. The cradle and source of myths cannot be captured and realized all the time. Derrida emphasizes that the discussion about the structure of myths that does not put importance on the center can neither have an absolute subject nor center itself. The unification of myths is just tendentious and projective. According to Derrida, the unification of myths is just an imaginative phenomenon, occurred from the effort to interpret. The absence of the center here means absence of the subject, in other words, the artist. In Derrida’s point of view, we cannot define the center and completely generalize because a sign, standing for the center, is added as an extra. After all, the center is empty. When the center is disbanded, the idea that it is a reflection of a round form becomes disappeared. Then, the artist must have been so sincere to his references that are argued as the originals in order not to reflect but to transform. It is like equality is based in order to determine differences.


Soo-man Moon’s paintings that subtly change in every exhibition are still in the process of evolution. He visualizes symmetry on each painting like in a mandala but his main efforts are concentrated not on the center but also around the edge or on the surface. Gradation is used to strength the density of the edge in some paintings. The artist sees the roughness on the edge unlike the center as a ceramic’s level. He compares this part with the part of the Japanese warrior’s sword in which the natural cut is left like gushed lava. It seems to deliver its wavelength not only to the edge of his canvas but also the outside. Moreover, it asks this question beyond detailed depiction. Can the essence of a matter be seen through externals? The paintings on canvases depict the surface of ceramics but there is a distinction in a quality. As clearly seen in the work’s side and back, the artist rather focuses on the surrounding and the surface than the center. The binary idea of ‘essence and appearance or an original form and reproduction (Gilles Deleuze)’ is converged as one dimension.


This kind of a dimension allows to be immersed. Soo-man Moon’s practice ultimately heads to simulacra rather than reproduction. What Gilles Deleuze emphasizes in his book The Simulacrum and Ancient Philosophy is simulacra instead of reproduction. According to him, simulacra are not dilapidated reproduction but embody the positive energy that denies an original and duplication, and an original form and reproduction. Deleuze also explains the nature of simulacra that eat all the beginning by citing Blanchot’s words about ‘the universe where images cease to be the secondary existence compared to a model, a deceit claims truth and an original form does not exist anymore or the universe where the eternal glimmering only exists after the original absences are dispersed in a cycle of going back and coming back’. Although simulacra bring the universal collapse by eating all the beginning, it is not a negative disaster but a positive event. In this context, Soo-man Moon’s painting is not reproduction of the work, assumed as the original. It is like the engineering technology of science (what his major was before studying art) reflects a new existence based on ‘simulacra, in other words, the technique of reproduction without any original (Donna Haraway)’.


The dichotomy that divides the past and present, the east and the west, an original and reproduction, and etc. becomes one existence like a Mobius strip. Deleuze suggests Fortunatus’s pocket, looking like a Mobius strip, as an example in his book Logique du sens. This pocket was made with several roughly sewed towels so the inside and the outside were connected as one. Thus, this pocket was like embodying the universe. The inside becomes the outside and the outside becomes the inside. This changeover is always achieved by extending the edge so we become to follow the other side of the edge from the power of a Mobius strip. The continuity of the inside and outside substitutes all the levels. The rough edges that even seem to be rolling unlike the quiet center in Soo-man Moon’s paintings point out the time and space in which the events of changing the structure of the edge happen. The artist also considers the side space of the surface as a surface and attempts to bring the outer energy into the center. In this edges of round canvases, the understandings of ‘the ideas that rises against the surface and declines the wrong layers, and how everything begins from the edges (Deleuze)’ are realized. ⓒ


6.


‘Expression of free will through immersion’


KIm, Sung_Ho, Art Critic


Prologue

Painter Sooman Moon's private exhibition makes you see his formative world at a glance as he shows his recent and past representative works together. A 〈Cloud〉 series, his recent work, is an abstract painting which multiplied and arranged a lot of grains of rice in concentric circular form. The work was from relic images from the results of several formative experiments of Korean backgrounds including celadon to place butterfly or bird-shaped pictures of flowers, his early works. In other words, a 〈Simulacre〉 series which makes third-dimensional shapes of Korean relics including celadon and earthenware the flatness of two dimensions was changed to a 〈Fractal〉 series to search for the texture of relics and then a series of 〈Cloud〉 which maximizes the round images that they claim to advocate to be the method to stack them as images of small grains of rice got to appear. What are uniform formative awareness and aesthetics that these serieses which look different from one another continue?


I. Laying three-dimensional structures on the flat - A <Simulacre> Series

Painters have had language of representation which creates illusion to paint scenes, persons, and three-dimensional things on the flat for a long time. The three-dimensional existence has been reproduced perfectly on two dimensions through trompe-l’œil that objects are painted their normal size in a very realistic way. Therefore, simulacre's attribute which sticks to status of fakes which are more realistic than the genuine articles after the thee dimensional existence is copied to be 'an illusion of images' is fundamentally the flat.

Then, what is a method of representation shown in the 〈Simulacre〉 series by Painter Sooman Moon? That is "an attempt to put Vollplastik in a screen like a planar figure to be spread on the flat" as the painter mentioned. He makes things like pottery the flatness with a developed projection like a map projection to cover a sphere (球體) like the earth with a cylindrical or conical shape, assume that a point of sight is the center of the earth, and project and indicate the lines of longitude and latitude onto the flat. Therefore, ancient relics become visible to be anamorphosis on the flat being spread as the circular images like shields in his work. As maps are the anamorphic indices that the earth were set in flat coordinates, his 〈Simulacre〉 series become the anamorphic indices that external images of relics were spread in the circular flat to make you see it at a glance.

In that sense, his work twists and embraces Simulacre's philosophical concept of 'fakes which are more realistic than the genuine articles'. That is very closely connected with an issue of points of sight (視點). In other words, simulacre that illusions of representation claims to advocate is essentially 'magical fiction made by perspective at a particular point of sight,' while Sooman Moon's 〈Simulacre〉 series becomes 'friction realized with a method out of perspective (脫) through an imaginary point of sight made in the center of things.' In other words, general formative simulacre builds three-dimensional structures on the flat by perspective, while, Sooman Moon's 〈Simulacre〉 series lays them on the flat through the method out of perspective.'

His 〈Simulacre〉 series which was changed from three dimension to two dimensions is recognized as the works that patterns were drawn on circular shields. Here, ceramic patterns are localized to be the same size without any distance being laid flat on the flat. Let's look at his work, 〈F1-4-2 Simulacre(241804)〉. Various patterns are radially spread in several concentric circles with the central axis as the center in radial shape. They can be found that his 〈Simulacre〉 series just has the central axis and does not have any main characters and patterned patterns are just maldistributed. In other words, all the patterns and images become a new index which were democratically reorganized in the situation that they do not have the relation between master (主) and servant (終).


II. Material's self-similarity - 〈Fractal〉 series

A 〈Fractal〉 series, Painter Sooman Moon's another work, is differentiated from others in that it takes over images like repetitive patterns from the 〈Simulacre〉 series and maximizes matterness.

These two serieses affect and are done by another ones including 〈Gate of Time〉, 〈Finding Flow〉, 〈Coherence〉, and 〈Potter's wing〉. These works share Simulacre's attributes of 'the flatness of flat circles' found from the 〈Simulacre〉 series and partially have a relief's attribute of matiere. The relief's matiere is effectively revealed through visual attributes of vague or clear pattern images that various patterns are repetitively produced as well as physical ones of matterness made as media meet colors. This aspect of democratical maldistribution of the patterns without any relation between master and servant is more specifically revealed in his work, 〈F1-1-0 Simulacre(191804)〉. It's because plant patterns harmonize with the relief's matiere together with geometrical ones. The 〈Fractal〉series deserves to be a follow-up to the 〈Simulacre〉 series at this level.

By the way, what is Fractal? This means a so-called shape made up of parts that are the same shape as itself. 'When a whole is split into parts, the whole shape is included in each part, which is a geometrical shape.' Or it is 'the small structure which is constantly repeated in a similar form with the whole shape.' Here, the part has attributes of 'self-similarity' and 'recursiveness.' The former is generally found from figures with high self-similarity that mathematical rules are applied. And the latter is generally done from natural objects with low 'self-similarity' and attributes of 'recursiveness' such as brocoli, bracken, sunflowers, shells, and beehives. Especially, fractal images found from natural objects are revealed while order and disorder cross. It's because original nature is based on randomness and complexity.

These two attributes and types overlap each other in Sooman Moon's 〈Fractal〉 series. It's because plant patterns which are organic like fractal shapes featuring repetition and multiplication or arabesque patterns (唐草紋), but symmetrical are used together. Furthermore, the relief's matiere which looks asymmetrical also creates symmetrical images in general as it is radically 'spread/returned' towards the outside/inside of concentric circles. His 〈Fractal〉 series is work to twist and expand the limited meaning of fractals limited to 'self-similarity of images' by adding 'self-similarity of matterness' and 'natural randomness and complexity' to it at that level.

In addition, a 〈Gate of Time〉 series which affected and were done by the 〈Simulacre〉 series and the 〈Fractal〉 series expands the space concept into time in that images of traditional relics bring the past to the present and this place. Sooman Moon's work features images, material, time, and space which are in harmony.


III. Democratical maldistribution of modules which circulate boundaries - <Cloud> series

Paintings have been regarded as space art without question during the modern period with sculpture and architecture under Gotthold Ephraim Lessing's analysis. Time in paintings were then studied at the iconographical level to include historical narratives or give temporal symbols. We do not does not restrict paintings as space art in the art scene of the present time that everything claims to advocate decategrization. Paintings which give practical real movement through ways to add kinetic objets or maximize virtual movement through devices to create optical effects or methods to mix them with videos already intersect with the realm of temporal art.

Sooman Moon's paintings, especially his 〈Cloud〉 series drives temporality by providing illusions and creating their virtual movement through the screen made by a lot of small modules (images of grains of rice) accumulated in the paintings. But, temporality through the optical effects is not essence in his series. He is immersed in the concept of circulating temporality in the creative process of continuing slow and hard labor by making grains of rice modules and the multiple images, the outcome. He arranges the process to accumulate the modules called 'small grains of rice' as if he practices asceticism in the process to take modules out of a cloud folder and build parts to be a whole and mediate silently in hard labor by putting himself in creative temporality which is slowly connected.

By the way, why is grains of rice? He found a material of 'rice' in the process to investigate Goguryeo, history, and relics in an extension of the 〈Simulacre〉 series and the 〈Fractal〉 series and got to be interested in its formative language and meanings. When he was immersed in changing three-dimensional patterns of relics to the flatness of two dimensions, he got to begin a new 〈Cloud〉 series that patterns are replaced by images of grains of rice.

Rice is long food which has led human existence and the Korean people's staple food! It's a profound and mysterious shape which is a long and asymmetric oval and has an embryo bud similar with itself on one side! The shape itself of the grain of rice used as a module in Sooman Moon's 〈Cloud〉 series formatively takes over his 〈Fractal〉 series which showed symmetric fractals or plant patterns like asymmetric arabesque patterns together.

Interestingly, his creative process is very complicate in general, but his visualization method is comparatively simple. It's his own unique formative method settled after various formative experiments. For his new work, images of grains of rice which had been saved in a digital archive after separating them from the previous 〈Cloud〉 series were brought from a cloud folder and went through several simulation processes to arrange them in parallel in various ways by utilizing a computer graphic program. After that, ideas and rough sketches of new works are done on the computer, images of 'multiple-grains of rice' designed on the computer were moved to a mechanical device, the sheets punched as they were were attached to a canvas, and paints were applied at once. The creative method of 'Sand-mandala' in Tibetan Buddhism to make each image as a process of meditation and asceticism was systemized by a digital method and was changed to use instant brush strokes. But they are not different to the spirit of mandala paintings to aim at meditation and asceticism. He reapplies or wipes paints to change uniform concentric circles of the monotone and uses several punched sheets numerous times for a work by composing complicate colors on the whole from the start.

There is one thing to think of here. In his 〈Cloud〉 series which looks simple at first glance, but actually went through the complicated process, the images of grains of rice used as the module always appear as the images of the similar size with actual rice on small or large canvases, and even the multiple large canvases connected like three-fold altarpieces. They extend to the outside from the center of the concentric circle, while the identical grain size of rice is kept and 'democratical maldistribution' of the module which circulates boundaries continues. In a way, they can be a message of democratic communication like 'justice, equality, and everybody.' That actively reveals the message with the structure of running all directions (四通八達) that a shape of 米, the Chinese character of rice, has. As a result, this moves towards the deep message created by the painter's formative experiments to reveal internal/external nature of rice without distortion and now, a world view of 'circulation.'


Epilogue – Free will expressed by immersion

'The world view of circulation' that Painter Sooman Moon's 〈Cloud〉 series aims at meets F. W. Nietzsche's world view of Ewige Wieder-Kunft, his philosophical metaphor, as he told you in person. The world view says that "endless time forms a circular shape (圓形), all the things are infinitely repeated as they are in it, and the discovery of awareness like that is also infinitely done." This concept of Nietzsche seems to explain Sooman Moon's formative world in the 〈Cloud〉 series. As Nietzsche's sole existence is nature as the entire creation and the only principle of life is a will to power, 'the will to power' in life continues to return to nature which wants more power. Nietzsche requests Amor Fati that you have to love your real life filled with birth, old age, sickness, and death without conditions and live every moment faithfully. This can be evaluated as 'Dionysian Yes' as his only positive reason to overcome 'his nihilistic reason' which accounts for his whole philosophy.

In this sense, Let's check Sooman Moon's notes.: "They say time flies. The older you get, the faster speed of life is like air resistance which is proportional to the square root of the speed in hydromechanics. There are more accidents in hardship and the crosswind which is against your body nips pretty harder." These words of the painters who are more than 50 years old make you get a sense of the difficult realities in his life that he chose art instead of a religion.

But, Painter Sooman Moon created his works keeping Amor Fati in mind today through his choice as an artist and Dionysian Yes about it as Nietzsche requested it through Ewige Wieder-Kunft. That interlocks with his view of work to try to enjoy freedom through immersion in art. You need to remember that nature of Sooman Moon's work which seems to be filled with images at first glance is 'a space left by a free will in immersion' and at the same time, a glimpse of introspection on life at this level.


“The main theme of my several series is ‘expression of a will to be free through immersion.’ Immersion makes me dominate canvases with unlimited imagination. (...) Screens are filled with patterns like machine parts which mesh and turn. But taking a close look, you can find that spaces are more important than individuals. In other words, it means that freedom must exist in order and there are still rules in it. Expression of order, rules, spaces, and freedom reflects the paitner's ideas of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