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ihoon
김지훈 (b.1985)
2011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사과정 졸업
2013 동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2018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박사과정 졸업
개인전
2010 기억展(서울대학교 우석갤러리)
2012 후라질展 (공아트스페이스)
2013 유중아트센터 신진작가 공모지원 개인展 (유중아트센터)
2013 김지훈展(송와미술관)
2014 김지훈초대전 (한성자동차오토갤러리)
2014 Fragile (갤러리루쏘)
2015 Directional nature (갤러리도스)
2018 후라질맨 (동덕아트갤러리)
2018 후라질맨 (갤러리 피랑)
2인전
2012 형제다방(갤러리 루쏘)
2016 김지훈 정성윤 초대전(갤러리 오스)
그룹전
2008 큐브展 (갤러리 빔)
2008 디자인페스타 (도쿄,오다이바,디자인페스타 갤러리)
2008 경향 미술대전 (경향갤러리)
2009 KCAF 9회 (예술의 전당내 한가람 미술관)
2009 세텍展 (세텍 무역센터갤러리)
2009 작은그림展(갤러리 이즈)
2010 서울대학교 졸업전시회(서울대학교 미술대학)
2010 KCAF 10회 (예술의 전당내 한가람 미술관)
2011 스카우트 展 (갤러리 이마주)
2011 통통展(이노스페이스)
2012 형제다방(갤러리 루쏘)
2012 화풍난만(동덕갤러리)
2012 대학원연합전(중앙대학교 아트센터)
2014 space in & space out (미술세계 갤러리)
2014 20th manif (예술의 전당)
2015 경계없는 대화(서울대학교 미술관)
2015 차가운 진실-보이는 것들의 이면 (조선대학교미술관)
2016 한국적 미의식과 그 표출(조선일보미술관)
2017 요나루키트렁크전(요나루키 파주)
2018 IGNU ROAD(뉴델리, 인도)
2018 한국현대미술작가전(조선일보미술관)
2018 코넥션 (가나아트센터,프린트베이커리)
2018 삼부자전 (유중아트센터)
수상경력
단원미술제, 가송예술상 우수상, 유중아트센터 신진작가상 등
작품소장
동탄 한림대학교병원, 유중아트센터, 울산지방법원, 인천지방검찰청, 오산문화재단 등
레지던시 프로그램
공아트스페이스 베이징, 니브아트센터 뉴델리, 가나아뜰리에 경기도 양주
출강
서울대학교,교원대학교,목원대학교,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수원대학교,성신여자대학교,서원대학교,안양예술고등학교 등
Review
낙원의 이편
이건수 미술 칼럼니스트
방호복을 입은 인물은 작가의 아바타임이 분명하다. 김지훈은 후라질맨(fragileman)이라는 자신의 분신이자 평범한 동시대 군중의 아이콘을 자신의 화폭 안에 장치시킨다. ‘후라질’이란 말 속엔 ‘부서지기 쉬운, 깨지기 쉬운’ 연약한 현대인의 심성을 대변하는 의미와 함께 ‘우라질’이란 우리 고유의 비속어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바로 지금 여기, 작가와 같은 세대의 젊은이들이 절감하고 직감하고 있는 그들의 진공된 현실과 증발된 미래에 대한 소외감과 저항감을 함축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김지훈은 동시대의 불안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기록하고 있다.
오렌지색, 때로는 형광빛 노란색 옷을 입은 김지훈의 아바타들은 이제 어느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았을법한 무표정한, 그러나 시원(始原)적 풍경을 간직한 한강의 고수부지로, 시멘트의 입방체로 기괴하게 남은 시공 중인 건물 속으로 잠입한다. 또 해외로 장소를 옮겨 인도 뉴델리의 출근길 거리와 시장 속을 누빈다. 그리고 마치 수 천 년 전 싯달타가 머물고 득도했을법한 폐허에 가까운 고성과 거대한 보리수 아래까지 도달하는 퍼포먼스의 여정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후라질맨은 그가 입은 눈에 띄는 방호복으로 인해 주변의 풍경과는 언제나 뒤섞이지 못하는 이질감과 낯설음을 과시하는 존재로 남아 있다. 주변의 세계와 하나가 되지 못한 풍경은 온전히 이 우주복과 같은 방호복 때문이다. 자신의 깨지기 쉬운 연약함을 감추고 시선을 비롯한 외부로부터의 모든 공격과 침입을 막기 위해 입는 방호복은 오히려 자신이 세계 보다 미약한 존재임을 웅변하며 자아의 시선 보다 타자의 시선을 강하게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아와 세계(타자)의 분리와 대립은 근대적 합리주의의 오만함에서 비롯되었다. 자아의 발견과 정체성의 확립이 이루어지자 모든 것이 뒤섞여 있던 세계는 나와 너, 내 땅 네 땅, 내 민족 네 민족으로 분리되었다. 하나였던 인간상은 마음과 몸, 이성과 감성으로 해부되었고, 모든 사회적 현상들은 중심과 주변, 정상과 비정상, 감시와 처벌의 구분 논리에 의해 편 가름 되어 그 가운데엔 굵은 스트라이프 무늬의 정지선이 둘러쳐지게 되었다. 후라질맨은 이 구분과 분리의 권력이 시작되는 순간의 풍경을 그 유별난 의상으로 집중하여 포착하게 만든다.
미지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후라질맨의 뒷모습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1818)를 연상시킨다. 동양 산수화에서 거대한 자연의 위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작은 인간의 모습을 통해 자연과의 합일을 지향했던 동양 사상의 은밀한 표현과는 달리 프리드리히의 산수화에는 대자연을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인물의 뒷모습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우리는 그 인물의 시선으로 그의 발아래 펼쳐진 안개 낀 풍경을 바라본다. 풍경이 드러내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숭고함이다. 그것은 경계가 흐릿해진, 나와 너의 차별을 초월한 분리 이전의 공간이다. 그 숭고함 앞에서 인간의 분별심은 힘을 잃게 된다.
이질적,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공간 속을 배회하는 후라질맨은 그 자신 끊임없이 경계와 방지의 공간을 탐색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이 분리주의가 해체되고 경계의 모순이 극복된, 모든 경계심이 사라진 공간을 욕망하고 있다. 그곳은 원죄로 인해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에덴동산이다. 때문에 후라질맨의 제의식 같은 퍼포먼스는 경계와 구별에 의해 난도질당하고 무모한 개발에 상처 입은 공간을 찾아 그 공간의 절대적 순수성, 장소적 의미성을 회복시키려는 재생프로젝트처럼 읽힐 수도 있다.
빨간 방지캡을 머리에 쓴 후라질맨은 곰의 가죽을 뒤집어 쓴 구석기시대의 샤먼 같다. 곰의 가죽을 머리부터 뒤집어씀으로써 곰의 강인함을 흡수하고, 곰으로 변신하여 곰의 영혼과의 소통을 꿈꿨던 선사시대 샤먼처럼 후라질맨은 방지와 경계의 표식 자체가 되어 온갖 상처 받고,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존재들에 대한 위로의 공간을 찾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 선과 악, 순수와 타락의 경계에서 번민하는 부조리한 실존의 목소리를 되뇌어주는 이 시대의 샤먼으로서 후라질맨은 오염된 시대에 대한 경고를 계속하고 있다.
부서지기 쉬웠던 그러나 부서지고 더렵혀진 본질과 그 댓가로 오는 죽음과 절망을 이기게 만든 후라질맨도 있다. 김지훈의 <피에타>에서 후라질맨은 드디어 자신의 방호복을 벗는다. 방호복이 필요 없는 세계로 들어간 것인가. 그의 전설적인 포즈는 슬픔과 죽음의 경계를 다시 보게 만드는 새로운 표식이 된다.
얼굴 없는 행렬
김미향(갤러리도스 관장)
●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급격하게 확장되어 왔으며 그만큼 복잡하게 얽혀있다. 기계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경제적 풍요를 얻었지만 물질과 정신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갈등이 유발되고 있다. 김지훈의 공통된 표현 주제는 인간 즉 우리의 삶이다. 그것은 작가 스스로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사회를 바라볼 때 타인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고, 현실에서의 그들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비인간화로 재촉되는 여러 가지 악순환들은 '무엇을 볼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는 질문들을 더욱 촉구하였고 이는 작가 작업의 근간이 된다.
지금까지의 전시에서 보여주었던 '취급주의(fragile)'라는 작가의 일관된 키워드는 이번 전시에서도 다른 형상으로 드러난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한 과학의 발달은 그에 수반되는 부작용 때문에 오히려 인간에게 불안을 가중시켰다. 방호복은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안전한 도피처를 상징한다. 작가는 본래 가지고 있던 자아가 새로운 환경이나 사회와 충돌하며 겪게 되는 주체성의 상실과 이를 통해 동반되는 보이지 않는 불안에 집중하고 있다.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취약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방호복 안에 자신을 숨기고 시대의 흐름에 묻혀가는 연약한 자아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폐쇄된 차가운 보호막 뒤에 숨겨져 모호하게 표현된 얼굴 없는 인물의 모습에서는 그 어떠한 표정도 읽을 수 없다. 등을 돌리고 있거나 짓눌린 듯 웅크리고 있는 인물의 형상에서는 인간이 만든 환경으로부터 스스로 소외되고 그러면서도 또 다시 그러한 환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부조리를 암시하고 있다. 기술과 매체의 발달은 쉽고 빈번한 타인과의 교류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소통의 부재를 더 증폭시키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허공을 응시하는 듯 교차되지 않는 인물 간의 시선처리는 진정한 유대관계를 느낄 수 없는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대변한다.
화면 안의 인물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 안에 놓여있다.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경계와 주의를 의미하는 시각적 기호나 화살표의 등장은 보이지 않는 방향성을 제시하며 화면 속 인물의 움직임을 유도한다. 의도된 연출은 무작정 그들의 생활방식을 쫓거나,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나와 동일한 목적과 기호를 가진 집단을 형성하기를 원하는 우매한 군중심리를 보여준다. 본인의 주체와는 상관없이 결국 누군가의 뒤를 밟고 서있는 모습은 우리의 현실 안에서 결코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또한 어지럽게 시각적 기호가 반복되는 미로와 같은 공간이나 장소가 불분명한 공간의 표현은 인물들이 가진 불안한 심리를 더욱 부각시킨다. 불확실함이 주는 묘한 불안감은 우리가 현대사회의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 속에서 느끼는 정체성의 혼돈과도 연관된다. 이처럼 사회의 보이지 않는 힘에 종속되어 인간의 자아를 상실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이면은 작가에게 끊임없는 물음을 제공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이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작가는 문명의 발달 속에서 주체가 되어야 할 인간이 전체 구조에 종속되어 그 주체를 상실하고 분열되는 세태를 예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자신 스스로를 '취급주의'해야 하는 현실의 부정적인 측면을 다양한 연출과 오브제를 통해 일종의 텍스트로 읽혀지길 의도한다. 특히 나약한 인간의 방어기제로 등장하는 부자연스러운 방호복은 진정한 인간관계의 단절과 더불어 주체성의 상실에 대해 풍자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 안에 공허하면서 무력해보이기까지 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인간의 가치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김지훈은 인간이 가진 불안과 고독 그리고 소외와 같은 실존적인 문제를 건드리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으며, 이번 전시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 김미향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을 살아가는 어느 청년의 단상
윤상훈(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디렉터)
● I. 시대정신이라 함은 한 시대의 사회, 경제, 정치, 문화적 형태 등과 관련하여 보편적으로 목격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 혹은 이념을 일컫는다. 볼테르는 시대정신을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피력하였고, 헤겔은 '민족정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며 동시에 과거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러나 이것은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함께 진보한다는 특징이 있다. 정신이 진보하지 못하고 멈추어 있다면 그것은 그 시기에 종결되는 일회성의 산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시대의 보편성에 대한 상대주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예술에 있어서의 시대정신의 역할은 독보적이며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시대에 따른 예술적 정신의 흐름이나 전개가 곧 '미술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의 변화는 긴 호흡을 가지고 아주 조금씩 변모하는 것이 일반적일 수 있으나 때로는 해당 지역이나 국가의 역사적 중요한 사건이나 상황과 함께 급변하는 양상을 띄기도 한다. ● 우리나라의 경우 후자와 닮아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시대를 반영한 현대미술의 흐름을 정리해보고자 할 때 80년대 민중미술의 태동과 폭발적인 파급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위 1세대 민중미술이라 함은 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부터 비롯된 정치적 사회운동과 그 궤를 나란히 하고 있다. 시위에 사용되는 걸개그림이나 벽화, 바닥화의 형태로 시작된 민중미술의 조짐은 당시의 젊은 예술가들의 자발적 모임을 통해 미술계를 넘어 사회 전반의 독립적인 아이콘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1세대 민중미술은 그것의 뜨거운 출발과는 달리 예술적 명맥을 유지하지 못한 채 현실참여의 한 형태 정도로 축소포장 되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는 당시의 민중미술이 그것의 기본 틀을 미술에 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혁을 위한 정치적 노선의 연장선에 두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당시의 예술가들은 현실에 참여하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을 뿐 그것의 결과물을 자신의 감성과 결합시켜 예술의 입장으로써 독창적 발전을 꾀하기엔 너무도 긴박한 나날을 보냈을 것임이 틀림없다. ● 지지부진 하던 민중미술의 조류는 80년대 말이 되어서 2세대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때에는 작가뿐 만 아니라 탄탄한 비평가나 이론가들도 이 흐름에 동참하게 된다. 이 즈음에는 태동기처럼 단순히 정치적 활동에만 동참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흐름에 예술적 관점을 삽입시켜 극소수의 지식인들만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이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양적, 질적인 확장을 꾀하였다. 여전히 목소리를 표출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일반 미술에 비추어 볼 때 직접적이고 격정적이었으나 1세대에 비해서는 다분히 미학적 접근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2세대 민중미술의 경우에도 역시 그것의 기반은 예술이 아닌 정치적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 이었다. 1세대 민중미술의 출발점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서 기인했다면 2세대는 '민중은 곧 노동자'라는 일종의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사회 평등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노동운동은 결국 학생운동과 결합되었고 이후 어떤 그룹은 '진정한 민중미술이란 곧 노동계급의 문화이다.'라고 가치를 산정하기도 했고, 또 다른 그룹은 자본주의의 모순에 반기를 들며 사회주의로의 변화를 소리 높이기도 했다. 결국 예술가들의 극단적 자기 주장은 대중과의 소통 부재로 생긴 온도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다시 한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1세대와 2세대의 민중미술과 비슷한 형식을 차용한 소그룹들의 활동이 종종 목격되기도 하나 당대 미술계의 큰 흐름에 영입되기엔 그들의 목소리는 작은 편이다.
김지훈_fragile the fragile_부분
II. 2000년대에 들어 서면서 우리 삶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대한민국은 독보적인 IT 기술력과 정보화를 기반으로 세계 속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이후 사회는 잉여 된 자본을 담보로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시대는 386세대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을 보수집단으로, 기성세대로 탈바꿈 시켰다. 사회 보다는 나 자신이 우선시 되는 만연한 개인주의적 현실 속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부폐한 사회에 대해 광장에 모여 항거하기 보다는 인터넷 토론방을 이용하고, 실체가 보이지 않는 거대 담론이나 정치적 상황을 운운하기 보다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더 고민하며 '미래' 보다는 '내일'을 걱정하게 되었다. 이 즈음에 성인이 되어 독립된 사고를 하게 된 세대들의 머릿속에 광주는 이제 비엔날레의 도시일 뿐이고, 금남로는 광주에서 제일 큰 교차로 일뿐이다. ● 본인은 민중미술의 정의를 정치적 미술운동의 특정 맥락으로 보지 않고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시대정신을 반영한 예술사조로 보고자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민중미술은 결국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의 대중이 시대의 특정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는 방식의 하나로 풀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관적 입장에서 민중미술을 정의 내려 보았을 때 지금 시대의 민중미술이라 함은 무엇을 예로 들 수 있을까? 산업화에 대한 기대, 민주화에 대한 열망, 노동자 계급과 지배층 간의 간극 축소, 집단 보다는 개인의 가치가 우선시 되는 사회를 거쳐 2012년 대한민국에서 대중의 보편적 정서는 과연 무엇이 지배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민심을 예술가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읽어 내려가고 있을까. ● 기술과 자본에 의해 정의되는 사회, 서구문화에 대한 무절제한 수용, 그리고 그로 인해 상실되어가는 인간성 결핍을 우려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종용하는 목소리들은 근래에 들어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꽤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다. 이들은 이러한 폐단이 자본가와 정치가, 그리고 미디어 등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1%의 권력자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해 99%의 대중을 세뇌하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들은 미처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모든 것들을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정리해 보자면 민중미술의 태동기부터 이미 사회 특권층은 존재해 왔으며 1세대에는 정치를 이용하여 자신의 안위를 유지하려 했고, 2세대에서는 경제력을 근간으로 하여 우리를 억압하였다. 이제 그들은 정치, 경제뿐 만 아니라 사회기술과 언론, 심지어는 문화를 이용해서도 대중 위에 군림한다. ● 일찍이 기 드보르는 1960년대에 이미 이러한 조짐들을 곳곳에서 목격했고 훗날 이것이 전세계를 지배하는 커다란 권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그가 말한 '스펙타클의 사회'는 실체가 없어 눈으로 확인하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의하면 스펙타클은 하나의 이미지가 될 정도로 축적된 자본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것의 위력은 자본의 음영이 드리워지는 사회 전반의 모든 영역에 걸쳐 발휘된다. 자본이 지배하는 모든 사회에서 인간의 삶은 스펙타클이라는 거대한 축적물로 귀결된다. 스펙타클은 특정 대상이나 독립된 이미지이기 보다는 사회의 이미지들에 의해 조작되어 형성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이다. 그것은 이미 관념적 이미지의 범주를 넘어섰고, 정치, 미디어, 문화, 철학을 지배한다. 동시에 개인의 사회활동과 대인관계는 물론 삶의 목표와 세계관까지도 설정해 준다. 이것은 한낱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바꾸거나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삶을 다 할 때까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다. 기 드보르가 언급한 실낱 같은 희망이라고는 그저 현실이 특정 세력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은 큰 향상을 가져 올 것이라는 정도의 주장이다. ● 당대의 젊은 예술가들은 바로 이 지점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인지하고 그것을 가감 없이 화면에 풀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이들은 작품을 통해 거창한 주제를 내비치지도 않고 크게 비판하지도 않으며 특별한 대안을 모색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기 드보르의 요구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삶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끔 기회를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젊은 세대들의 방식이 어쩌면 선배 예술가들의 사회적 참여도에 비해 다소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존의 민중미술이 소수의 지식인에 의해 절대 다수의 대중을 일방적으로만 이끌었던 탓에 결국 무력화 되었던 것을 상기해 보면 이들의 완곡한 표현방식은 사실 훨씬 합리적으로 보여진다. 이것을 본인은 또 다른, 혹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민중미술의 한 갈래로 보고자 한다.
김지훈_'a' made by 'b'_장지에 먹과 채색_91×72.7cm_2012
김지훈_Stand_장지에 먹, 채색_160×490cm_2012
III. 김지훈이 전시의 제목으로 정한 『FRAGILE [후라질]』은 그 대상을 인간으로 지정하고 있으며, 그가말하는 인간이라 함은, 부서지기 쉽고, 취약하고 허술하면서, 동시에 섬세함을 동반한 마치 유리잔과도 같이 위태롭고 연약한 존재임을 관객에게 암시하고 있다. 또한 FRAGILE과 발음이 비슷한 '후라질'이라는 한글 표기도 덧붙였는데 이것은 어떤 일이나 형국이 뜻한 바대로 진행되지 않아 속으로 안타까워할 때 내뱉는 감탄사로서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불안함과 안쓰러움을 반어법으로 위트있게 인용한 것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두 가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한가지는 인간에 대한 취급주의, 다시 말해 인간존중에 대한 원론적인 물음이고 다른 한가지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어떤 허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가지 모두 현대 산업사회가 떠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이야기 하고 있으나 전자의 경우에는 조금 더 개인적인 입장에서 풀어낸 것이고 후자는 한층 확장된 시각으로 전체를 바라보며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 그의 신작들은 전작과는 다소 다른 맥락으로 보여지지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결국 작가가 시종 천착하고 있는 주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작인 사탕 시리즈에서는 그의 차분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는 사탕이 입안에서 녹아 사라지는 형태가 마치 사람이 과거의 기억을 서서히 잊어가는 방식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과거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듯, 녹아가는 사탕의 구석구석을 폴라로이드 필름이 담고 있다. 어떤 부분은 이미 녹아 사라져 버린 곳도 있고 다른 부분은 처음 그날의 기억처럼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사탕 사진도 있다. 작가는 잊혀져 가는 과거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련한 향수를 단순히 개인의 기억력의 영역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이것을 추억이나 기억의 지탱을 방해하는 어떤 사회적 개입의 일부로 본다.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어느 한 대기업의 광고 카피처럼 기술의 과도한 발전은 평생 구속되어 있고만 싶었던 우리의 어떤 기억들 마저도 그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버렸다.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현란한 지금 이 순간만을 반영하고 희미한 과거를 끄집어내지는 못한다. 그것들은 과거와의 기억을 차단할 뿐 아니라 현재의 순간도 막아선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변과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결국 그것은 실체가 아닌 디지털 기술에 투영된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김지훈은 이러한 잉여 된 자본과 기술력이 사용자의 편의에만 치우치는 바람에 결국은 인간에 대한 기만과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이들에게 '인간에 대한 주의'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결국 작가가 초기작부터 말하고자 했던 키워드는 '인간'인데, 개인의 문제로 출발했던 작품들이 근래에 와서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고 이것이 결국 작가 혼자만이 느끼고 있던 문제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김지훈_Do not enter_장지에 먹, 채색_130×160cm_2012
김지훈_Where_장지에 먹, 채색_91×72.7cm_2012
IV. 좀 더 본격적으로 김지훈의 작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가 이미지를 구성해 내는 방식은 나무조각으로 이루어 진 간판의 형태를 차용하고 있다. 간판이라는 것의 목적은 자신의 상점이나 영업소의 존재를 행인에게 드러내기 위해서 통상적으로 가게의 출입구에 세워두거나 입구에 부착하는 형태로 제작된다. 그러나 김지훈의 작품에 등장하는 간판은 일반적으로 길거리에서 목격되는 형태의 간판이라기보다는 대형 건물의 옥상이나 도로변에 큰 규모로 설치되는 옥외간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행인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제작된 소형 간판과는 달리 이러한 대형 간판의 경우 자신의 기업에서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나 혹은 자신이 속한 단체를 가장 핵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함축적인 문장이 인쇄되어 있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특정 집단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큰 가치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주입시키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면 되겠다. 일반적으로 이런 대형 간판의 경우 눈이나 비, 바람 등에 직접적으로 노출이 되기 때문에 상당히 견고하게 제작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지훈의 작품에 등장하는 간판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듯 위태롭고 조악한 나무조각들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김지훈의 작품에 등장하는 나무조각으로 이루어진 간판의 역할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번 전● 시의 출품작 중 상대적으로 초기에 제작된 작품 「Fragile the oriental painting」을 살펴봐야 한다. 이 작품은 당대의 동양화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 동양화 작가로서 갖는 암담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진경산수화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겸재의 작품을 화면의 뒤 쪽에 그대로 모사해 놓고 전면에는 영문으로 된 '취급주의' 간판을 세웠다. 섬세하게 세필로 정성껏 그려진 진경산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간판과 그 간판의 상단에 게양되어 있는 미국의 성조기는 묘한 긴장감을 표출한다. 관객의 시선을 어지럽히는 정리되지 않은 공사현장은 선택을 머뭇거리는 작가의 복잡한 심경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실제로 동양화나 한국화 전공 학생들을 마주하다 보면 그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효율적으로 풀어내느냐, 혹은 어떤 방식으로 화단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가 따위의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문방사우라는 한정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어떻게 현대적인 동양화 작품을 만들어 내는가가 가장 큰 관건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동양화가들은 전통과 현대성을 사이에 두고 고민을 해왔고, 그사이 세계 미술계의 흐름은 몇 번이나 뒤바뀌었다. 우리의 선배들은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한 채 힘겨워하고 있고, 후배들은 이것을 바라보며 '동양화의 위기'라 말한다. ● 자신과 가장 근접한 지점에서 출발한 불안과 우려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좀 더 확대 재생산된다. 출품작 중 가장 대작에 속하는 「Fragile the fragile」에는 바로 이렇게 확대된 작가의 관심사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10미터가 넘는 'Fragile' 이라는 대형 간판에는 작가가 지켜야만 한다고 판단한 7가지의 가치를 대입하여 제시하는데, 이를 테면 Frog (자연), Religion (종교), America (국가), Gold (경제), Icecream (동심), Love (사랑), Earth (지구) 등을 각각의 스펠링에 맞추어 이미지를 삽입한 형태가 그것이다. 이것은 마치 회화문자나 픽토그램의 형태로 구현되어 있는데, 일반 대중이 빠르고 정확히 읽고 의미를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그것의 기본 명제에 충실하고 있다. ● 「Fragile the oriental painting」과 「Fragile the fragile」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나 판단에서 비롯된 작품들이라고 한다면 「Stand」의 경우에는 좀 더 사회적 현상에 주목한 결과물이다. 코카콜라와 맥도널드로 대변되는 식음료 부터, 독일의 고급 자동차,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라 자부하는 자유의 여신상과 성조기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대국이 만들어 낸 가치들은 매우 거대하다. 이것들은 모두 소비자를 위하는 척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것의 이면에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가 적용되어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발생한 글로벌리즘의 결과물들은 이젠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 아주 좁은 틈새까지도 침범해 있는데, 예를 들면, 영어 지상주의와 한글 경시 풍조, 서양식 인스턴트 식품 위주의 식생활, 그리고 명품에 대한 무조건적 선호 등은 그야말로 문화사대주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풍토를 비판하고자 그것들이 허상뿐인 존재임을 암시하며 거대한 간판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표현해 직접적으로 본인의 심경을 토로한다. 촘스키의 표현처럼 식민지 시대의 주체에게 역사란 한낱 낡고, 고리타분하고, 희미한 것이다. 지배자였던 자들은 오직 영광스러운 미래를 향하여만 행진한다. 하지만 곤봉을 맞은 사람들은 반드시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과거의 역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역사가 다시 되풀이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지훈_at night_장지에 먹, 채색_130×160cm_2012
V. 마지막으로 「The Art」라는 작품을 보자. 이 작품은 사실 다른 전시작들에 비해 크기도 작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다소 명확하게 드러나는 탓에 막상 전시장에 걸린 뒤에는 관객들에게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은 이 작은 작품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 작품은 전시를 준비하며 거의 마지막에 완성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 다음 전시에 선보일 작품들에 어느 정도의 방향성을 제시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The Art」의 언급이 앞으로 작가가 새로운 각도에서 자신의 생각을 확장시킬 여지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콕 찍어 제프 쿤스의 작품세계만을 예술의 기준점에 부합하는가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마도 굳이 The라는 정관사를 붙여 총체적인 의미로서의 '예술'을 지시 하는 것일 테다. 이 작품을 부연 설명하기 위해서는 서두에 언급했던 '시대정신의 변화는 긴 호흡을 가지고 아주 조금씩 변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라는 문장을 다시 한번 가지고 와야 하겠다. 왜냐하면 최근 십 수년 사이에 이러한 시대 정신과 관련한 일반논리가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정신'에 근거한 예술이 아닌 '시장'과 '미디어'의 논리에 근거하여 전 세계 미술계가 폭발적으로 변화하였고 그것의 거품이 꺼지고 난 후의 세계 미술계는 참혹했다. 혹자들은 실도 있었지만 분명 득이 더 많았다고들 스스로를 다독인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당대의 미술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제프 쿤스나 데미언 허스트 같은 작가를 역설적이게도 어느 평론가는 사후에 가장 먼저 잊혀질 작가 1, 2위로 선정하기도 했다지만 예술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과 흐름이 깨져버린 미술계가 다시 치유하기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 개인의 소소한 기억에서 출발한 김지훈의 작품은 동양화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고 거대한 자본 안에서 살아가는 작은 인간으로써 지켜야만 할 것들을 찾아보고, 나아가 후기 식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되짚어 보며 그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그리곤 마지막에 다시 예술가 본연의 위치로 돌아와 '과연 이 시대의 예술이라 함은 무엇인가'를 반문해 본다. 김지훈은 인간 고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들에 저항한다. 김지훈이 저항하는 것들은 거대한 자본이기도 하고, 고유의 인간관계를 훼방하는 기형적 문화구조나 SNS이기도 하다. 그는 걸러지지 않은 서구 문명에 저항하기도 하고, 강력한 국가나 그 국가가 배설한 사회적 산물에 저항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강력한 권력에 의해 규정 내려진 예술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어 보기도 한다. ● 이러한 혼돈의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이 시대의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반문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도 경의를 표한다. 이것들이 바로 우리가 김지훈의 행보를 주목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들이다. ● "19세기 이후에도 전 세계에서는 언제나 문화적인 저항이 있었고, 민족주의자들의 민족 정체성 주장이 있었으며, 또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공동 목적을 가진 여러 집단의 등장이 있었다. 물론 서구의 제국주의는 활동적인 서구의 침입자와 게으르고 비활동적인 토착민을 싸움 붙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지 저항은 있어왔고, 대부분의 경우 그 저항은 결국 승리했다." (『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W. 사이드) ■ 윤상훈